여야 6대0...'무법지대' 류희림 체제 방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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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 추천 위원 6인이 단독으로 주요 의사결정 가능
"류희림 체제가 의결하는 모든 사안은 법적 시비에 휘말릴 것" 비판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뉴시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뉴시스

[PD저널=엄재희 기자]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여권 추천 위원 6인으로 운영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게 됐다. 총 9인으로 구성되는 방심위는 현재 야권 추천 몫 보궐위원 2인의 위촉이 미뤄지고, 윤성옥 위원이 "거수기 역할을 거부한다"며 회의 참석 중단을 선언하면서 여권 추천 위원 6인이 단독으로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됐다. 방심위가 정권에 입맛에 맞지 않는 방송을 손봐주는 검열 기구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은 22일 김유진·옥시찬 위원 후임으로 문재완·이정옥 위원을 위촉했다. 같은 날 열린 전체회의는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방심위 행보를 미리 볼 수 있는 예고편이었다. 이날 객관성 위반으로 올라온 KBS라디오 <주진우 라이브>에 대해 방심위원들은 6인 전원 일치로 법정제재인 '주의'를 의결했다.

해당 방송은 천공의 대통령실 관저 선정 개입 의혹을 다뤘는데, 앞서 야권 추천 위원들은 '의혹 제기에 불과하다'며 문제가 없다고 본 바 있다. 그러나 이날 처음 회의에 참석한 문재완·이정옥 위원은 "다수 의견에 따르겠다"며 '주의' 의견을 냈고, 다른 의견이 나오지 않아 안건 논의는 10분도 안 돼 끝났다. '주의'는 방송사 재승인·재허가 심사에서 감점 사유가 되는 중징계에 해당한다. 

이러한 6인 운영이 절차상 위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방심위 설치법' 등은 심의위원회를 9인으로 구성하고, 보궐위원을 30일 내에 위촉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방심위는 지난해 8월부터 정원 9인을 채우지 못하고 있다. 국회에서 야권 추천 위원 2인에 대한 추천을 했으나 윤 대통령은 임명을 미루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22일 성명을 내고 "류희림 일당만이 남아 의결하는 모든 사안은 최소한 공정성과 독립성도 확보하지 못한 채 법적 시비에 휘말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방심위는 다음 주 'MBC 바이든-날리면' 관련 심의를 예고했다.

총체적 난맥상 보여준 류희림 체제
방심위는 과거에도 정치적 대립으로 난국에 빠졌었지만, 류 위원장 체제는 이전과 다른 차원의 문제를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 8월 위촉된 류 위원장은 '가짜뉴스 심의전담센터' 설립을 두고 직원들과 갈등을 빚었고, 직원 149명이 반대 성명을 내는 집단 반발로 번졌다. 이어 지난해 말 <뉴스타파>와 <MBC> 보도로 '뉴스타파 인용 보도'의 민원을 류 위원장의 가족과 지인을 넣었다는 이른바 '청부민원 의혹'이 제기되면서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류 위원장은 이를 '개인정보 유출'로 규정하고 오히려 제보자 색출과 내부 감찰 등 강경대응에 나서면서 방심위는 심각한 내홍에 휩싸였다.

'청부민원 의혹' 사태에서 방심위가 보여준 행보는 독립 심의기구라는 위상에 걸맞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1월 3일 ‘청부민원 의혹’ 대응을 두고 처음으로 열린 전체회의는 논의를 해보지도 못하고 파행됐다. 류 위원장이 '회의 비공개'를 다수결로 밀어붙인 탓이다. 야권 위원들이 회의 진행 방식에 항의하자 류 위원장은 일방적으로 회의를 중단했다. 이어진 9일 회의에서도 류 위원장은 해명을 요구하는 야권 위원의 발언을 제지했고, 이 과정에서 '욕설' 사태까지 빚어지자 퇴장 후 돌아오지 않았다. 윤성옥 위원은 "방심위에서 벌어지는 일은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며 "발언권 제한과 일방적 회의진행, 회의공개 원칙 위반, 안건상정의 자의적 집행, 다수결의 폭력적 결정 등 독재정권의 축소판"이라고 지적했다.

방심위 사무실에 걸린 '류희림은 사퇴하라' 항의 피켓ⓒ언론노조 방심위 지부
방심위 사무실에 걸린 '류희림은 사퇴하라' 항의 피켓ⓒ언론노조 방심위 지부

'청부민원 의혹' 제기에 야권 위원 해촉
류 위원장은 '청부민원' 관련 논란이 이어지자 '욕설 사태' 등을 이유로 김유진·옥시찬 위원을 해촉건의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이 정연주·이광복·정민영 위원을 해촉해 방심위를 재편한 것과 판박이다. 류 위원장은 '욕설 사태' 3일 후인 1월 12일 해촉건의를 안건으로 긴급 회의를 열었다. '폭력행위'와 '비밀유지의무 위반'이라는 사유가 붙었지만 법률 검토 등의 절차는 생략됐고, 여권 위원 전원 찬성으로 해촉건의안은 의결됐다. 윤 대통령은 이를 5일 만에 재가했다.

해촉 논의 과정에서 당사자의 방어권을 제대로 보장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유진 위원은 안건 의결 직후 연 기자회견에서 “류희림 위원장의 ‘청부민원’ 의혹에 관한 건 등 여러 안건이 있었는데 새롭게 열린 회의에서 그 안건들이 사라지고 저와 옥시찬 위원에 대한 해촉건의 결의안만 통과가 됐다”며 "발언권은 심각하게 제압되는 등 회의 진행 방식에 더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두 위원은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낼 계획이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다. 앞서 정연주 전 위원장이 낸 해촉무효 가처분 소송에서 행정법원이 '각하'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행정법원은 방심위를 민간기구로 보고 대통령의 해촉 결정은 '계약 해지'에 불과해 행정소송의 대상이 아니라고 봤다. 두 위원은 이 선례를 넘을 수 있는 법리를 검토하고 있다.

야권 추천 옥시찬 위원이 12일 서울 양천구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열린 전체회의 도중 잠시 나와 발언하고 있다. 방심위는 이날 김유진, 옥시찬 위원의 해촉 의결, 의결안은 대통령의 재가를 통해 최종 확정된다ⓒ뉴시스
야권 추천 옥시찬 위원이 12일 서울 양천구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열린 전체회의 도중 잠시 나와 발언하고 있다. 방심위는 이날 김유진, 옥시찬 위원의 해촉 의결, 의결안은 대통령의 재가를 통해 최종 확정된다ⓒ뉴시스

정치권이 추천·임명하는 구조적 한계
이같은 방심위의 파행의 원인으로는 여야 정치권 추천에 의존하는 제도적 허점이 꼽힌다. 현재 방심위원 9명은 대통령과 국회의장, 국회가 각각 3명씩 추천하고 대통령이 위촉한다. 그동안 여야 6대3으로 나눠 추천하는 관행이 자리잡았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지난 18일 열린 '방심위 파행운영의 실태와 대안' 토론회에서 "방심위는 출범 이후 정치심의 논란이 계속되었지만 류희림 체제에는 모든 면에서 최악으로 퇴행했다"면서도 "방통위의 법제도적 문제점을 개선하지 않고, 현상의 개선에 머무르거나 도리어 심의위 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운영한 결과 언제든지 정치환경, 다수 세력에 의해 통제기구로 악용될 수 있는 구조적 위험을 내재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심영섭 경희사이버대학교 교수는 "윤 정부 출범 후, 전 정부에서 위촉한 위원을 임의 교체하기 위해서 무리한 해촉을 진행했고, 이후 후속인사를 통해서 정원 9인을 충원하지 않고 있다"며 "위원 추천 권한의 분산과 추천기관에서 인사 검증 완료 후 대통령의 자동위촉, 임기 보장 등과 함께 자율규제 도입을 위한 제도개선, 공정성 등 심의규정 정비, 이해관계자 심의 회피 강화 등을 해야 한다"고 짚었다.

김준희 언론노조 방심위 지부장은 "상식적으로 9인의 위원이 모두 위촉되어야겠지만, 여권추천 위원들의 일방 독주에 들러리가 되는 야권 추천 위원 위축은 큰 의미가 없다고 본다"며 "류 위원장이 자리를 지키는 한 방심위 정상화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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