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퇴행 부추기는 윤핵관과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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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한동훈 '약속대련' 대행하는 언론 보도
강성희 '강제 퇴장' 논란에선 대통령실 입장 두둔

윤석열 대통령이 23일 오후 충남 서천군 서천수산물특화시장 화재 현장을 찾아 피해 상황을 점검하기 앞서 영접을 위해 기다리고 있던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사진=대통령실 제공)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23일 오후 충남 서천군 서천수산물특화시장 화재 현장을 찾아 피해 상황을 점검하기 앞서 영접을 위해 기다리고 있던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사진=대통령실 제공) ©뉴시스

[PD저널=이봉우 미디어인권연구소 뭉클 객원연구원] 한 주가 멀다하고 정치권에서는 대형 뉴스가 터지고 있다. 쏟아지는 ‘정치 뉴스’ 속에서 발맞춰 퇴행하는 정치와 언론의 기이한 공생 관계가 두드러진다.

최근 가장 뜨거운 ‘정치 뉴스’는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을 향한 대통령실의 사퇴 요구다. 사태의 발단은 21일 쿠키뉴스가 단독으로 보도한  <김경률 공천 사태, 한동훈 책임론 불거져> 기사다. 이 기사는 “대통령실과 밀접한 여권 관계자”라는 신종 ‘윤핵관’을 출처로 “한 비대위원장의 이번 내리꽂기식 김경률 추천으로 당원과 대의원들 사이에 불신이 커지고 있다”, “공정한 공천혁명, 공정한 선거혁명, 공정한 정치혁명을 기대했던 한 비대위원장에게 지지를 보냈던 윤 대통령도 이번 사태에 큰 실망을 한 것으로 안다”는 내용을 전했다.  

기시감이 든다. 2021년 당시 윤석열 대선 후보의 선거대책위원회 파동에서도 ‘윤핵관’을 출처로 ‘전언 정치’를 대행해 준 게 쿠키뉴스였다(<윤석열, 김종인과 한배 안탄다… 최종 ‘결별’ 결론>, <김종인 중도‧이준석 2030 지지율 확장은 어디로? 오히려 ‘초박빙’ 효과 불러와>, <“이준석, 성상납 의혹 당시 朴 전 대통령 팔아 국정농단 한 것”>등).

‘윤핵관’을 ‘대통령과 밀접한 여권관계자’(윤밀관?)로 바꾸고 대통령 눈 밖에 났다는 대상이 한동훈 위원장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아무리 익명 보도가 만연해졌다고 한들 온통 익명으로 덧칠된 보도가 함량 미달이라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 대통령의 당무 개입, 권력 남용 문제를 ‘핵심 관계자’라는 사람이 ‘익명’을 전제로 임금님 하교를 전하듯 불러주고 그걸 또 그대로 공표해주는 모습은 음성적인 ‘권력 카르텔’에 가깝다.

이준석‧김기현 두 전직 대표가 교체될 때와는 달리 이번엔 이틀 만에 화해하는 모습이 나왔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약속대련’을 의심하기도 한다. 총선 승리를 위해 한동훈 위원장의 국민의힘은 대통령과 다른 목소리를 낸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쇼’를 했다는 의미다. 사실 어느 쪽이든 대통령실의 당무 개입과 기형적 당정관계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김건희 씨의 주가조작 연루 의혹과 명품 수수 영상 파문을 거론하기만 해도 예민한 반응을 보이다가 급기야 직할체제로 ‘추대’한 한동훈 위원장마저 압박했다면 심각한 당무 개입이다. 만약 ‘약속대련’이라면 그 자체로 유권자를 기만하는 일이다. 수사도 아닌 ‘사과’ 정도로 ‘김건희 리스크’를 뭉개고 ‘윤석열-한동훈 갈등의 드라마’로 ‘김건희 리스크’를 대체하려는 야합이기도 하다. 

문화일보 1월 22일자 사설.
문화일보 1월 22일자 사설.

흥미로운 것은 언론의 반응이다. 그간 김건희 씨 의혹에 있어 철저히 대통령 입장을 사실처럼 써왔던 언론들도 이번 사태엔 강하게 윤 대통령을 비판하고 나섰다. 지난 22일자 <문화일보> 사설 <金여사 해법 뻔한데 韓 흔드는 尹대통령, 민심 모르나>는 “대통령이 대놓고 비대위원장 사퇴를 요구하는 일은 없었다”며 “윤 대통령은 공천 개입과 직권 남용, 김 여사는 청탁금지법 시비에 더욱 휘말리게 될 것”이라고 대통령을 강력 성토했다. 

동시에 ‘명품 수수 논란’은 “사법적으로는 김 여사가 몰래 카메라를 이용한 정치 공작의 피해자가 맞다. 그러나 정치적으로는 명품 백을 받고도 즉각 돌려주지 않은 데 대한 국민의 의구심이 심각하다”고 지적했고 “정치 공작에 대한 사법 절차를 진행하면서, 당시 상황에 대해 김 여사가 직접 설명·사과하고, 앞으로 그런 오해가 없도록 처신하겠다고 고개 숙이면 된다”고 해법도 제시했다.

모두 한동훈 비대위원장식 해석과 해법이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주장을 앞세워 윤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한 것인데 그간 명품 수수 파문에 있어 ‘몰카 함정 공작의 피해자’라는 대통령 관점을 공유해왔던 탓에 발생하는 모순도 한동훈 위원장과 똑같다. ‘정치공작의 피해자’는 맞지만 ‘돌려주지 않은 건 정치적으로 문제’이므로 ‘사과는 해야 한다’는 모순이다.

한동훈 위원장도 취임 후 1월 17일까지도 ‘정치 공작’이라는 입장이었으나 18일을 기점으로 ‘국민 눈높이’를 강조해왔다. 정치공작의 피해자라면 정치적으로 문제가 될 게 없으며 사과도 안 해도 된다. 대통령 부인이 공식 절차도 없이 사인을 만나 국가 대사를 논하고 고가의 선물을 받고 심지어 고가가 아니면 만나주지 않는 것 자체가 문제니까 정치적으로 혼란이 발생한 것이다.

일부 언론이 비슷한 시점에 비슷한 논리와 모순으로 한동훈 위원장과 한목소리를 내면서 윤 대통령과의 갈등 국면에서도 한 위원장에 힘을 싣는 모습이다. 한쪽에서는 ‘대통령과 밀접한 여권관계자’를 앞세워 ‘대통령의 전언’을 대독하고, 한쪽에서는 그걸 받아 ‘대통령에 맞서는 한동훈 위원장의 일성’을 널리 공표하면서 ‘약속대련’을 언론이 대행하는 기묘한 그림이다. 언론보다는 정치 모사꾼들이 하는 일에 가깝다. 

23일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위원장은 서천특화시장 대형 화재 현장에서 직접 만나 ‘조기 진화’에 나섰다. ‘어깨툭’과 ‘90도 폴더 인사’가 교차됐고 언론은 <화재현장 달려간 尹·韓, 직접대화로 갈등 '조기 진화' 공감대>(연합뉴스) 등의 보도를 쏟아내며 여전히 남아 있는 ‘김건희 의혹 성역화’와 ‘종속적 당정관계’를 덮어두고 ‘갈등 조기 진화’을 띄웠다. 200개 이상의 점포가 불타 생계를 잃은 상인들이 대통령의 직접 지원 약속을 기대했으나 두 사람은 20분만에 떠났고 정부 관계자 누구도 ‘생계비 지원’ 등 실질적 지원을 거론하지 않았다. ‘갈등 조기 해소’라는 정치적 돌파구를 위해 화재 현장이 이용됐다. 언론과 여당, 정부 모두 ‘조기 진화’할 대상을 잘못 찾았다.  

강성희 진보당 의원이 18일 전주 덕진구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에서 열린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자들과 인사하는 동안 경호원들에게 끌려 나가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뉴시스
강성희 진보당 의원이 18일 전주 덕진구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에서 열린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자들과 인사하는 동안 경호원들에게 끌려 나가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뉴시스

반대 쪽에서는 전혀 다른 그림이 펼쳐진다. 1월 18일, 대통령과 악수하며 “국정 기조를 바꾸셔야 합니다”라고 말했다는 이유로 사지가 들려 쫓겨난 강성희 의원에 대해 ‘강 의원이 대통령 손을 잡아 끌고 놓아주지 않으면서 공개 협박했다’는 초현실적 해명과 ‘전과 5범’이라는 비난이 판을 쳤다.

언론도 이에 동조했다. <문화일보>는 사설 <대통령에 ‘의도적 행패’ 의원과 민주당의 무도한 두둔>에서 “강성희 진보당 의원의 행패는 국회의원은 물론 시민의 기본 소양조차 갖추지 못한 행태다. 초등학생도 때와 장소를 가릴 줄 안다”, “이재명 대표에게 사인 받겠다며 접근해 흉기로 목을 찌른 사건이 지난 2일 발생했다. 강 의원이 마음만 먹었으면 더한 일도 저지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썼다.

야당 의원이 국정기조를 비판하기만 해도 ‘대통령을 살인할 사람’으로 규정해버리는데 대통령에 비판적인 수많은 국민들은 대체 뭐라고 보고 있을까? ‘강성희 의원은 폭행 포함 전과 5범’이라는 보도도 횡행하고 있다. 지난 보궐선거 당시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투쟁 과정에서 발생했다는 강 의원 스스로 내놓은 해명은 찾아보기 어렵지만, 이를 차치하더라도 전과가 있으면 대통령을 비판하면 입을 막히고 강제 진압을 당해야 한다는 말일까?

반민주주의를 자인하는 꼴이나 마찬가지인 기적의 논리들을 여당과 언론이 쏟아내면서 공론장을 장악하고 있다. 그 주체들도 윤석열 대선 후보 선대위 파동부터 한동훈 위원장과의 갈등설까지 정국을 주도했던 ‘윤핵관과 언론’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들의 단단한 카르텔은 권력을 끊임없이 갈구하면서 똑같은 방향으로 퇴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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