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토 위협한 트럼프...멀어지는 평화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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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도 악당도 없는 세상 21]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 8일(현지시간) 플로리다주 팜비치의 마러라고 별장에서 연설하고 있다. 미 공화당 대선 후보를 뽑기 위한 예비 선거에서 압도적 1위를 달리고 있는 그는 이날 네바다주 공화당 코커스에서도 승리했다.©AP/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 8일(현지시간) 플로리다주 팜비치의 마러라고 별장에서 연설하고 있다. 미 공화당 대선 후보를 뽑기 위한 예비 선거에서 압도적 1위를 달리고 있는 그는 이날 네바다주 공화당 코커스에서도 승리했다.©AP/뉴시스

[PD저널=박정욱 MBC PD] 미국 공화당의 유력 대선주자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방위비를 충분히 내지 않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에 대해서는 러시아가 침공하도록 독려하겠다’는 취지로 발언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전세계가 떠들썩하다. 어쩌면 우리는 익숙했던 팍스 아메리카나의 시대에서 대혼란 시대로의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말>에서 "헤겔의 인정투쟁을 역사에 대입하면 계급투쟁을 내세운 사회주의 이념과의 대결에서 상호 인정을 주장한 자유민주주의 이념이 승리했고 이념의 역사는 더이상 발전할 수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 주장에 대해 찬양과 비판이 크게 엇갈렸다. 분명한 것은 21세기 초입의 현실에서 사회주의는 실패했고 자유민주주의가 인류를 행복의 나라로 인도할 것처럼 보였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에 대한 여러 비판들이 쏟아졌다. 자본주의의 폐해가 결국 새로운 이념적 도전을 낳을 것이라는 반박이 여러 갈래로 제기되었다. 후쿠야마는 저서 <인간 이후의 미래(Our Posthuman Future)>에서 유전자 조작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본성을 바꾸고 인류 역사의 근간을 흔들 위협이라며 자신의 진단에 대해 수정을 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날 돌아보면 21세기 정치의 진짜 위협은 세계 혹은 국가 차원의 공론과 대의가 힘을 잃고 그 하위 집단 정체성인 인종, 종족, 계층, 지역 등의 정체성으로 나뉘어 싸운다는 데 있다. 이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질서의 근간을 흔들고 마침내 개개인이 현재의 체제에서 누리는 안정을 깨뜨릴 위험이 있다.

세상을 흔드는 위험 가운데 가장 큰 변화는 미국에서 시작됐다. 전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가 '팍스 아메리카나'의 중심인 미국이 더이상 자기 돈 들여 그 역할을 맡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놀랍게도 이는 미국 내부에서 백인 국가 정체성이 밀려난 데 대한 백인들의 불만으로부터 시작됐다. 백인들은 미국이 원래 자신들의 나라였지만 이주해온 히스패닉, 흑인, 아시아인들에게 밀려나고 있다고 여긴다.

이러한 불만은 대통령 선거에서 백인 노동자 계층이 압도적으로 트럼프를 지지해 당선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트럼프는 이를 '미국 우선주의'의 기반으로 삼는다. 미국의 이익을 최우선시하며 이를 위해서는 전통적인 동맹관계도 중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이익'은 장기적인 이익이 아니며 당장 미국에게 금전적 혜택이 돌아와야 한다는 생각을 바닥에 깔고 있다.

미국은 잉글랜드인의 나라로 출발했다. 잉글랜드 이주민들이 북아메리카로 이주해 정착한 것이 개척의 시발점이 되었고 그들은 모국 잉글랜드를 상대로 독립전쟁을 벌일 때까지 스스로를 잉글랜드인이라고 여겼다. 미국의 1776년 독립선언문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우리는 영국의 형제들에게 주의를 환기시키는 데도 부족함이 없었다. 우리는 영국 의회가 우리에게 부당한 권한을 확대하려 드는 것에 대해 수시로 경고했다...(중략) 우리는 그들의 선천적 정의와 아량에 호소했고 우리의 연결과 소통을 필연적으로 단절시킬 이러한 강탈을 거부해줄 것을 우리 공통의 혈연적 유대를 통해 탄원했다. 그래도 그들은 정의의 소리와 동포의 소리에 귀기울이지 않았다."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에도 미국인들은 영어와 개신교라는 문화적 바탕을 매개로 자신들을 앵글로색슨 공동체로 여겼다. 하지만 19세기 중반 가톨릭계 아일랜드인들이 대거 이주해오면서 변화가 일어났다. 먼저 이주해 정착한 잉글랜드계 미국인들은 아일랜드인들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양자 간에 문화적 충돌이 적지 않게 벌어졌다. 아일랜드인들을 비롯한 비앵글로색슨계 '양키' 이주민들은 주로 북동부에 자리잡았다. 반면 전통적인 앵글로색슨 귀족 문화를 버리지 않은 이들이 노예제를 바탕으로 한 대농장을 운영하며 남부에 자리잡았다. 이는 미국 역사상 가장 커다란 정체성의 충돌을 몰고 왔다. 남북전쟁이 그것이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이르자 남유럽과 동유럽 국가로부터 새로운 이주민들이 미국으로 몰려들었다. 이들은 가톨릭은 물론이고 정교회와 유대교 신자들까지 포함된 낯선 정체성 집단이었다. 뿐만 아니라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로부터 아시아인들도 이 시기 대거 이주를 시작했다. 그러자 무제한적으로 이민을 받아들이던 미국의 백인들은 이민 허용 쿼터제를 만들었다. 기존의 미국 종족 구성 비율을 유지하기 위해서 출신국별로 이민자를 제한하는 제도였다. 

1900년 미국 인구의 60퍼센트였던 앵글로색슨계 혈통이 1920년 40퍼센트로 감소하면서 앵글로색슨은 다수자의 지위를 상실했다. 미국은 앵글로색슨 프로테스탄트 국가에서 유럽 출신 기독교 국가로 정체성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미국인들은 이를 '멜팅팟(melting pot)'이라는 개념으로 이데올로기화했다. 어떤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이주해오든지 간에 미국 사회라는 용광로 안에서 주류 문화에 동화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20세기 후반 라틴아메리카와 동아시아에서 대규모 이주민들이 몰려들면서 미국의 정체성 자체가 바뀌고 있다. 오늘날 멜팅팟은 비판의 대상이다. 흑인과 히스패닉과 아시안들은 저마다 고유의 정체성을 유지한 채 미국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것이지 백인+기독교라는 미국 주류 정체성에 녹아들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샐러드보울(salad bowl)'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등장했다. 알록달록한 여러 종류의 채소를 한 그릇에 담은 샐러드보울처럼 미국 사회도 여러 정체성이 고유의 색깔을 잃지 않고 모여있는 집단이라는 의미이다. 이는 백인 주류 문화가 대표성을 잃었다는 선언과 같다.

문제는 샐러드처럼 그릇 안에서 조화를 이루며 얌전히 담겨 있으면 좋은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인종적·종족적 정체성이 다른 집단 간에 충돌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흑인들에 대한 경찰의 무리한 제압이 무고한 희생자를 낳고 그 결과 흑인 사회의 대규모 시위로 번진 바 있다. 한동안 아시아에서 온 이들에 대해 '묻지마 폭행'이 빈발해 사회적 문제가 된 적도 있다. 

백인들은 자신들이 부당하게 잃어버린 몫을 되찾아야 한다고 여긴다. 그 의지가 '트럼프 현상'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리고 이는 트럼프를 통해 또다시 글로벌한 수준으로 펼쳐진다. 주한미군 철수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미국이 단 1원도 손해 볼 수 없으며 그동안 양보해왔던 미국의 몫을 되찾겠다는 의지를 거리낌없이 드러내고 있다. 백인들의 의식 구조가 글로벌하게 메아리치는 느낌이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왔던 평화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인류는 새로운 혼돈의 시대로 진입하게 될 것인가. 아니면 100년 전의 비극을 돌아보며 새로운 지혜를 도출해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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