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처법 확대 한 달...소규모 영상제작사 '무방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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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영상독립 제작사 90%가 50인 미만...중처법 적용 대상
안전보건 관리체계 구축·안전 매뉴얼 수립 등 조치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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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저널=엄재희 기자] 중대재해처벌법이 지난 1월 27일부터 상시 근로자 수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까지 확대 적용되면서, 중소규모의 방송·영화 제작사들도 새롭게 법 적용 대상에 포함됐다. 

영상제작 현장은 중대재해 안전지대는 아니다. 지난 2022년 드라마 '유세풍' 촬영 이동 중에 발생한 교통사고로 스태프 1명이 사망했고, 2017년엔 드라마 '화유기'의 스태프가 추락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하지만 방송사와 대형 드라마 제작사를 제외하면 대부분 소규모인 영상제작 업계가 안전관리 체계 구축 등 대비에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영상제작사 대부분 중처법 적용 대상...현장 안전은 여전히 '미흡'
한국콘텐츠진흥원의 '방송영상 산업백서'에 따르면, 2021년 말 기준 방송영상독립제작사 732곳 중 671곳(91.7%)이 50인 미만 사업장이다. 프로젝트 단위로 인력을 운영하는 업계 특성상 대다수가 작은 규모로 운영되고 있다. 확대 시행된 중처법은 이러한 소규모 사업장에도 전면 적용된다. 중처법은 사망 등 중대재해 발생 시 안전조치를 소홀히 한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방송과 영화 등 영상제작 현장에선 산업재해가 빈번하게 발생하지만, 안전은 뒷전으로 밀려나 있었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방송과 영화 촬영 현장 10곳의 현장 스태프 10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방송·영화 제작 현장 스태프의 산업안전보건 실태조사(2019년)'에 따르면, 응답자의 23.1%가 촬영 중 사고를 경험했다고 답했으며, 104명 중 32명은 개인보호구를 지급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사고 원인으로 '규모에 비해 안전 관련 인원이 부족하다'를 가장 많이 꼽았다. 

영상제작 업계 종사자들은 업계의 프리랜서 고용과 하도급 관행으로 사고 책임을 서로 회피하는 탓에 촬영 현장 안전은 뒷전으로 밀려났다고 지적해왔다. 안전 관리 의무를 강화한 중처법이 확대 적용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일선 방송 스태프들은 안전관리 측면에서 달라진 점이 없다고 호소한다. 김기영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 지부장은 "대형 드라마 촬영 현장의 경우 이미 50인 이상이었는데도 안전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며 "중처법이 확대 적용되었다고해서 현장에 변화가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중소규모 영상제작사들이 중처법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며 사실상 '무방비' 상태라고 지적한다.

미디어·엔터테인먼트 전문 변호사로 다수의 중소 영상제작사에 컨설팅을 해온 이용해 변호사(YH&CO 법률사무소)는 "영상제작사 상당수가 이 법이 자신에게 적용되는지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경영책임자가 처벌받을 뿐 아니라 작업중지 명령에 따른 제작 중단 손해가 막대한 만큼, 이제라도 안전관리 매뉴얼을 만드는 등 중대재해를 예방하는 준비를 해야 한다"고 전했다.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 지난 1월 26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2년 기자회견에서 중대재해처벌법 개악 시도 중단과 50인 미만 사업장의 적용을 촉구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 지난 1월 26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2년 기자회견에서 중대재해처벌법 개악 시도 중단과 50인 미만 사업장의 적용을 촉구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대형 제작사 가이드라인 마련...안전 관리 전문 인력 채용 '분주'
중처법 입법과 안전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커지면서 대형 제작사들은 일부 개선 노력을 해왔다. SBS가 드라마본부를 분사해 만든 스튜디오S는 지난 2023년 4월 고 이힘찬 PD 사망 사건을 계기로 '드라마 제작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이 가이드라인은 '촬영장 안전수칙' '위험이 따르는 장면 촬영 시 방침' 등을 구체적으로 나열해 놓았다. 위험한 촬영을 할 경우 촬영 일주일 전까지 작업계획서를 안전관리자에게 제출하고 검토받아야 한다. 

KBS와 MBC플러스 등 주요 방송사들은 안전관리를 전담할 안전관리자를 채용하면서 중처법에 대응하는 분위기다. 중처법에 따르면, 상시근로자 300인 이상 사업장의 경우 안전보건 관리자를 직접 선임해야한다. 이전에도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채용해왔으나, 중처법으로 인해 보다 적극적인 공개 채용에 나서고 있다. 채용된 안전관리자는 방송사 내 안전 예방과 점검, 위험성 평가 업무를 담당한다.

안전관리 비용은 제작비와 직결되기 때문에 업계의 고민거리로 남는다. 한국드라마제작협회 관계자는 "글로벌 OTT는 안전 문제에 민감하기 때문에 안전비용을 고려해 제작비를 책정하는 측면이 있고, 촬영이나 세트제작 일정을 조율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다만, 국내 방송사는 제작비가 많지 않아 OTT만큼 하기에는 어려운 실정"이라고 했다. 

해외 사례 살펴보니...방송·영화 등 영상 산업 통합 관리
해외 주요국은 영상제작 업계 종사자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각고의 노력을 하고 있다. 대부분 별도의 기구를 만들어 방송뿐만 아니라 영화, 연극 업계까지 안전 문제를 통합 관리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영화산업 안전보건체계 구축방안 연구'에서 해외 영상산업 안전 관리 실태를 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영국의 경우 사업장 감독·조사 권한을 가진 보건안전청이 '예능산업공동자문위원회(JACE)'를 구성하여 TV·연극·방송·영화 산업을 한데 묶어 관리하고 있다. JACE는 △안전한 군중관리 △조명 안전 △카메라 촬영 안전 △낙하 물체 예방 등 촬영 현장에 맞춘 다양한 안전 매뉴얼을 기반으로 현장에서 안전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를 직접 관리감독 한다.

미국은 주요 방송사와 영화제작사를 회원으로 두고 있는 미국영화텔레비전제작사협회(AMPTP)가 '단체협약서비스 운영지원기금'(CSATF)을 설치하여 안전에 필요한 재원과 인력을 지원하고 있다. 이들은 '안전훈련 프로그램(안전패스)'을 운영하는데, 이 안전패스를 취득해야 영화산업 등에 취업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방송과 영화 등 영상제작 업계는 프로젝트 중심의 단기고용과 계약이 많아 영상제작 종사자들의 안전을 지속적으로 보장하기 어려운 현실에 놓여 있다. 중소 제작사가 개별 대응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만큼, 해외 주요국의 사례처럼 방송과 영화를 아우루는 산업 차원의 안전보건 관리체계  구축 등 대책 마련을 위한 업계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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