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지대를 줄이는 생각(生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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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큐시트]

책이 진열되어 있는 서점의 모습. ©PD저널
책이 진열되어 있는 서점의 모습. ©PD저널

[PD저널=박재철 CBS PD] 짬이 날 때마다 사옥 지하에 있는 서점을 찾는다. 베스트셀러 매대 위에 진열된 책들을 살펴본다. 눈길을 끄는 제목의 책은 손을 뻗어 목차나 머리말 정도를 일별한다. 

트랜드에 가장 예민한 촉을 가진 이들은 아마도 출판 편집자들이 아닐까. 사람들의 기호를 따라가는 경우도 있지만, 그 기호를 예측하거나 이끌기도 한다. 대중 욕망의 맥을 잡는 데 능한 직종의 전문가들이다. 기획이 필요할 때 그들의 아이디어와 감각을 슬쩍 칼질해 주머니에 넣곤 한다. 

‘사각지대’라는 단어에 사로잡힌 건 책들 사이로 난 통로를 배회하고 있을 때였다. 책표지에 굵게 인쇄된 ‘사각지대’라는 말이 다소 생경하게 다가왔다. 이따금 사용하는 단어인데, 왜 강한 끌림으로 다가왔는지 모를 일이다. ‘안 보이는 곳’, ‘관심이 미치지 않는 영역’ 따위의 의미로 쓰곤 했지만 솔직히 정확한 뜻은 몰랐다. 사전을 찾아보니 사각은 ‘死角’이었다. ‘각도가 없다’. 사물이나 현상은 일정한 각도를 가져야 시야에 들어오기 마련인데 그 각도가 사라졌으니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이치에 닿는 한자 조어였다.

사각지대는 흔히 법적, 사회적 이슈에 얽혀 자주 소환되는 용어다. 빈곤과 실업, 차별과 불평등으로 그늘이 짙게 드리운, 차갑고 서늘한 곳, 사각지대는 공동체의 응달을 표상한다. 넓은 만큼 높은 소외의 목소리를 품고 있다. 하지만 그 소리 역시 음소거다.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장소에 시선을 던지고 귀를 기울이는 것, 방송윤리 지침서는 그 어디쯤 이 의무를 반드시 포함하고 있을 테다. 사각지대는 조명하지 않으면 없는 것으로 쉽게 오인된다. 그러나 주위를 잠시만 둘러봐도 엄존한다. 각도를 살려 보려는 ‘생각’(生角)이 없어서다. 방송제작자로서 진지한 성찰과 반성이 필요한 대목이다.

사각지대와 관련해, 정치는 보다 직접적이다. 자원이든 권위든 정치는 배분의 문제를 다루기 때문이다. 굽은 곳은 펴고, 패인 곳은 메워, 세대 간 계급 간 지역 간 균형과 형평을 이루는 일, 정치는 사회공동체의 사각지대를 줄이는 노력에 다름 아니다. 

누군가의 호의와 배려에 기댈 필요 없이 제도로 사회적 음지를 줄이는 정책을 만들고, 호소하거나 요구하지 않아도 권리로서 모두가 누릴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련의 프로세스, 정치는 최종적으로 ‘입법’을 통해 사회에 변화를 가져온다. 이런 정치의 역할에 대한 국민적 눈높이는 크게 상향됐다. 

불평등한 격차에 따른 갈등 조정의 필요성도 어느 시기보다 강하게 요구된다. 하지만 우리의 정치는 이런 환경과는 대조적으로 다양한 위기 상황에서 통제권을 잃고 가파르게 미끄러져 내려갔고 지금도 계속해 미끄러지고 있다. ‘함량미달’과 ‘자격미달’이란 꼬리표를 단 채.

사각지대를 매개로 ‘방송과 정치’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고 싶어졌다. 방송이 위기 상황에 대한 ‘고발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꺼이 그 상황을 조금이라도 호전시키는 ‘연루자’가 되는 기획, 정치 역시, 사각지대에 보다 높은 관심과 이를 줄이려는 본연의 입법 활동을 해나가도록 추동하는 기획.

우리 사회에서 입법이 시급한 사각지대를 찾아 그 현장을 자세히 취재하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법적 개선에 키를 쥔 관련 상임위 국회의원, 오랫동안 문제의식을 키워온 시민단체,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주민들이 방송에서 직접 만나, 실태를 공유하고 해결점을 찾도록 해야 했다. 

마이크를 들고 현장을 찾는 탐사 다큐멘터리와 구체적 대안 중심의 심층 대담, 그리고 관련 현안이 실제로 입법으로 이어지는지 살펴보는 사후점검 방송 등이 포함되는 기획이어야 했다.무엇보다 이 모든 과정을 함께 고민하고 발로 뛸 동료 제작자들을 찾는 일이 전제되어야 구현될 기획이었다. “가능할까?” ‘사각지대’(死角地帶)를 ‘생각지대’(生角地帶)로 바꾸는 이런저런 상상을 서점 통로에 서서 조용히 해보는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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