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지는 여론조사 보도, 불신 깊어지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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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하락세에 '공천 갈등 결과' 단정하는 언론
MBC '총선패널조사', 시사인 '유권자 지형분석' 시도 돋보여

제105주년 3·1절 기념식에 참석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뉴시스
제105주년 3·1절 기념식에 참석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뉴시스

[PD저널=이봉우 미디어인권연구소 뭉클 객원연구원] 여론조사의 계절이 왔다. 총선을 한 달 여 남겨놓은 가운데 난립한 여론조사 회사들이 저마다 총선 여론조사와 자체 조사를 내놓고, 언론은 여러 정치적 해석을 가미해 인용한다. 각 정당도 유불리에 따라 여론조사를 인용하고, 때때로 불신을 표한다. 유권자들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원하는 수치가 나왔을 땐 환호하고, 지지 정당에 불리한 수치가 나오면 투표장에 나갈 마음을 잃기도 한다. 

여론조사 보도는 정보 비대칭에 놓인 유권자를 흔든다. 여론조사 보도를 장악한 것은 수치가 아니라 해석이다. 숫자가 보여주는 여론의 추세, 동향, 변화가 아니라 언론이 원하는 현상의 일부 단면을 부각하기 위해 숫자를 동원하는 모양새다.

일례로 지난 4일 <친명에 열 받은 친문·호남 ‘조국신당’에 모였다…5~10석 전망>(서울경제)와 같은 보도는 조국혁신당이 “최근 비례대표 정당지지도 조사에서 10~22%까지 획득”한 이유가 “더불어민주당의 ‘비명횡사’ 공천 논란으로 민주당을 지지하지만 이재명 대표 체제를 반대하는 유권자들이 ‘조국혁신당’을 대안으로 찾으면서”라 규정하고 있다.

그러면서 조국혁신당이 지지율 10~22%를 나타낸 두 가지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했다. 결론은 “비명 성향의 민주당 의원들 10명만 조국신당에 합류하면...(중략)...원내교섭 단체로 조국신당이 성장하고 목소리가 커지면 민주당이 와해 되고 조국신당 중심의 야권 개편이 진행될 것이라는 시나리오”다.

그런 해석도 가능하겠으나 주관적인 정치 평론에서나 나올 얘기다. 객관적인 여론조사 수치를 근거로 사실처럼 규정할 일이 아니다. 아무리 조국혁신당의 지지율이 예상보다 높다고 해도 ‘이재명 대표에 반대하는 민주당 지지자들의 분열’, 심지어 ‘민주당의 와해’까지 의미하기 위해서는 조국혁신당 지지를 표한 응답자들의 지지 정당 분포, 공천을 전후로 한 지지 정당 변화 추세, 민주당 지지를 표한 응답자들의 민주당 공천 관련 찬반 분포가 근거로 제시되어야 한다. 조국혁신당 창당의 컨벤션 효과도 고려해야 한다. 기사는 물론 여론조사 질문지에서 그런 내용은 없다. 언론이 만들고 싶은 현상에 여론조사 숫자를 이용한 것이다.  

흔히 볼 수 있는 조사 결과 수치 중심의 보도는 좀 더 교묘하다. 지난 6일 <내일 총선이라면? 국힘 33%, 민주 26%…격차 오차범위 밖으로>는 연합뉴스의 정례 여론조사 보도로서 결과 수치만 주로 인용한 사례다. 다만 그 어떤 보도도 오로지 숫자만 쓸 수는 없다. 특수한 변동을 보인 결과에는 짧게라도 설명이 달리기 마련이다. 

이 보도를 포함해 최근 총선 관련 정당 지지율을 전할 때 대부분의 언론은 하락한 민주당 지지율에 초점을 맞추며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간 격차가 오차범위 밖으로 확대됐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고 썼다. 이런 묘사는 오차범위 내 격차에도 우열을 가리는 표현을 썼던  과거의 오류를 바로잡아 상대적으로 개선된 문장이기는 하다. 그렇다고 해도 단편적 정보라는 근본적 한계를 뛰어넘지는 못한다.

유권자들은 여론조사 결과가 시시각각 변하고 너무 많은 보도가 나온다는 걸 알면서도 ‘내일 총선이라면 여당을 지지하는 사람이 민주당을 지지하는 사람보다 오차범위를 벗어날 정도로 많다’는 기사가 단기간 내 쏟아지면 판단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단편적, 단기적 정보를 전체 판세에 대한 확정적 규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의미다. 

좀 더 기자의 시각을 가미한 <민주당 호남 지지율 일주일새 14%p 하락>(조선일보 3.2)처럼 민주당 지지율이 오차범위 밖으로 국민의힘에 뒤진 원인을 덧붙이기도 하는데 역시나 “공천 과정에서 불공정 논란이 확산하면서 전통적 지지층들의 실망이 여론 조사에 반영됐다”는 것이다. 이런 보도들이 반복되면서 정확한 사실도 아닌 ‘민주당 불공정 공천 논란’과 그로 인한 ‘민주당의 지지세 하락’을 언론 이용자들은 어느새 단단한 인과관계로 인식하게 된다.
 
사실 여론조사 보도의 문제점과 대안은 오랫동안 제시되어 왔다. 되도록 단일한 여론조사 회사의 결과 추이를 주목하는 편이 바람직하다. 더 여유가 있다면 조사방법과 응답률, 오차범위, 응답자 분포까지 살펴 신뢰성을 스스로 판단해볼 수 있다. 전통적인 유무선 자동응답 또는 전화면접 조사를 넘어 더 심층적인 조사 방법들이 시도되어야 한다는 지적도 많았다. 

지난 5일 MBC 뉴스데스크 총선패널 조사 결과 리포트 화면 갈무리.
지난 5일 MBC 뉴스데스크 총선패널 조사 결과 리포트 화면 갈무리.

이런 격언을 실천하는 보도들도 있다. MBC는 지난해 말부터 ‘총선패널조사’를 시작했다. 패널조사는 매번 다른 응답자들을 조사하는 통상적 여론조사와 달리 동일한 응답자를 반복, 추적 조사하여 수많은 사람들 중 극히 일부 표본을 추출한 여론조사의 한계를 조금이나마 극복하려는 시도다. 패널조사 역시 정확히 민심을 대변한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응답자가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여론의 변화 추이를 보는 데에는 일반적 조사보다 장점을 지닌다. 지난 5일 공개된 패널조사 4차 결과에서 그러한 특성이 나타나기도 했다.

<[총선패널조사④] '양당 지지세 공고'‥패널조사, 왜 다르지?>는 이 시기 민주당의 지지율이 다른 일반 조사에서는 큰 폭으로 떨어진 데 반해 MBC 패널조사에서는 큰 변화 없이 더불어민주당이 앞서는 결과가 나온 데에 주목했다. 심지어 MBC의 자체 조사에서도 국민의힘의 추월 양상이 나왔지만 패널조사는 달랐다.

이에 MBC는 “패널조사에 참여하겠다는 사람들은 보통 정치에 관심이 많은 고관여층이 많습니다”,“정치 고관여층은 정치에 관심도 많을 뿐더러 대체로 정당에 대한 선호도 확실한 경우도 많은데요, 그러다보니 패널조사에서 일반 여론조사만큼 큰 변화가 잡히지 않는 겁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일반 여론조사를 일대일로 비교하는 것보다는 패널조사 안에서의 변화를 보는 게 중요”하다 부연했는데, 실제로 MBC는 수치상 민주당의 지지율이 국민의힘보다 높았음에도 우열을 가리는 표현을 쓰는 대신 “거대 양당에 대한 지역구 표심은 굳어졌다”고 썼다. 수치를 통해 정당 간 우열을 가리는 유혹을 떨쳐내고 고정된 응답자들을 대상으로 한 장기적 조사에서 객관적으로 확인되는 ‘여론 지형’에 집중한 것이다. 

다른 시도도 있다. 주간지 시사인은 1월 초부터 ‘2024총선 유권자 지형 분석’ 보도를 시작했다. 한국리서치가 보유한 웹조사용 패널 89만명 가운데 지역·성·연령을 고려해 응답을 요청해 답을 받은 2천명에게 총 183개에 이르는 심층 설문을 행한 조사다. 응답자가 고정되어 변수가 줄어들었음은 물론, ‘지지 정당’과 같은 분절된 질문을 확장하여 주요 질문에 특정 응답을 한 집단이 또 어떤 성향과 생각을 지니고 있는지 더 파고들어 물어보는 구성을 취했다.

예를 들어 지난 1월 4일 보도된 <스윙보터가 다 같지 않다 [2024 총선 유권자 지형 분석 ①>은 ‘스윙 보터’, 소위 무당층도 코어 진보‧보수, 중도, 2030남성, ‘스윙 여성’ 등 다양한 성향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스윙 중도보수’의 경우 통념과 달리 ‘윤석열 정부 심판론’에 절반 이상이 동의한다는 특성을 보여줬다. 시사인 조사에 따르면 대부분의 질문에 ‘모른다’는 답을 한 ‘정치 무관심층’은 3%로서 다수 여론조사 보도가 주목하는 ‘판세를 가를 유동층’이 그렇게 많지 않을 수 있다는 점도 엿볼 수 있다.  

MBC, 시사인과 같은 사례는 총선 여론조사를 위해 최소한 3~4개월 전부터 준비를 하고, 많은 변수들 중 응답자라도 고정해 객관성을 키웠다. 그리고 조사 자체보다는 분석에 공을 들여 ‘추세와 변화의 의미’, ‘전반적인 여론 지형’에 집중했다. 이런 조사에서 최근 만연한 여론조사 보도들이 말하는 것처럼 공천이라는 이벤트 하나로 판세가 갑자기 요동치는 드라마틱한 결과는 나오지 않는다. 어느 여론조사가 더 옳다는 문제가 아니다. 정례적으로 나오는 여론조사도 추이를 보기 위해 필요하다. 개별 정례 조사들을 통해 ‘메타 여론조사’를 하는 시도들도 있다. 

문제는 언론이다. 기본적으로 여론조사 보도를 과도하게 내놓는다. 그렇다보니 ‘추세’를 다룰 여유가 없다. 단편적인 숫자들로 극적인 묘사나 특정한 정치적 해석을 가미해 이용자들의 눈을 돌리거나 언론 스스로의 정치적 목적에 이용하는 사례도 많다. 따라서 여론조사에 대한 대중적 불신은 여론조사 자체보다는 여론조사를 이용하는 언론과 정치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도 있다. 유권자 스스로 현명한 여론조사 소비를 위해 더 차분한 여론조사 보도를 직접 찾아볼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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