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저널 =엄재희 기자]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이 취임 하루 만에 공영방송 이사를 선임한 가운데, 방송문화진흥회와 KBS 새 이사진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사회 전 분야가 빨갱이로 물들었다"고 발언한 극우 인사가 있는가 하면, 과거 후배 기자와 PD를 내쫓고 진행자들을 하차시킨 언론탄압 주역들도 복귀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6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공영방송 부적격 이사 선임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방문진과 KBS 새 이사를 검증한 자료를 발표했다. 이들은 이번 공영방송 이사들이 '극우' '반노조' '언론탄압'이라는 유사점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 방문진, 2012 MBC 파업 탄압 주역 복귀...공안검사 출신도 배치
언론노조 MBC본부에 따르면, 윤길용 방문진 이사(방심위 방송자문특위위원)는 2012년 MBC 공정방송 파업 당시 최승호와 한학수 PD 등 6명을 부당전보하고 <PD수첩>을 무력화시키는 등 김재철 사장 시절 노조·언론탄압에 앞장선 인물로 꼽힌다. 지난 7월 18일 국회에서 열린 '가짜뉴스백서 출판기념회'에선 "현재 민주노총 언론 노조원들은 홍위병이 아니라 '킬링필드'의 크메르루주에 가깝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노조에 대한 적대적인 인식을 드러냈다. 이우용 이사(전 춘천 MBC 사장)는 이명박 정권 당시 MBC 블랙리스트에서 지목된 방송인 김미화 씨와 김종배 시사평론가의 라디오 하차를 주도했다. 이 때문에 2011년 MBC PD협회에서 처음으로 제명됐다. 퇴사 이후에는 보수 성향 단체인 자유민주시민연대에서 미디어 담당으로 활동했다.
공안검사 출신 2명도 이름을 올렸다. 인천지검 공안부장 출신인 허익범 이사(변호사)는 2018년 자유한국당 추천으로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 특검으로 활동했고, 윤석열 정부에서 공수처 수사자문단장을 맡았다. 역시 공안검사 출신인 임무영 이사(변호사)는 퇴직 후 전광훈 목사 집회에 참가하는 등 극우 활동을 해왔다. 지난 2020년 1월 광화문에서 열린 '문재인 퇴진 국민대회'에선 "검찰에서 퇴직한 가장 큰 이유는 우리나라가 적화통일이 될까 걱정됐기때문"이라며 "사회 전 분야가 이미 빨갛게 물들었다"고 발언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극단적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지난 7월 SNS에서 "지하철을 엎드려 다니면서 적선을 요청하는 사람은 대체로 다리를 고무로 감싸고 있다"며 "전문용어로 '인어공주'라 한다"고 적었다. 이진숙 방통위원장이 지난 2021년 종군기자 이력에 의혹을 제기한 이들을 대상으로 제기한 명예훼손 사건에서 법률대리인을 맡았던 사실도 드러나 이해충돌 논란도 불거지고 있다.
김동률 이사(서강대 기술전문대학원 교수)는 칼럼 등을 통해 공영방송 민영화를 주장해 왔고 친정부 성향을 보였다. 그는 지난 2022년 4월 서울신문 기고글에서 "지나치게 많은 관변 언론은 정리되는 게 맞다"며 "KBS1, EBS 정도만 공영언론으로 존재해도 한국인은 아무런 불편함 없이 살 수 있다"고 썼다. 또 2023년 2월 한 인터넷 매체 기고글에서는 "김 여사는 커리어우먼으로 윤 대통령보다도 훨씬 적극적이고 다양한 사회적인 삶을 살아왔다"며 "조신하게 칩거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행여 지나치지 않을까"라고 주장했다. 손정미 이사는(TV조선 시청자 위원) 조선일보 출신이다.
이호찬 언론노조 MBC본부장은 "이번 방문진 이사 구성안을 보면, MBC를 장악하고, 공안검사를 이용해 노조를 탄압한 뒤 MBC를 극우 유튜브 수준으로 전락시키고 민영화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 KBS, '박민 사장 교체' 서기석 이사장 연임...'표적정치 심의' 방심위원도
KBS 이사에 임명된 7명 중 2명은 현 이사가 연임했다. 서기석 이사(현 KBS 이사장)는지난해 남영진 전 이사장 해임 후 보궐 이사로 취임했고 김의철 전 사장 해임, 박민 사장 임명을 주도했다. 통상 보궐이사가 아니면 연임하지 않는 관례를 깨고 권순범 이사도 연임에 성공했다.
동아일보 기자 출신 허엽 이사(영상물등급위원회 부위원장)는 재직 당시 MB 정권의 공영방송 장악을 옹호하는 칼럼을 다수 작성했다. 2023년부터 바른언론시민행동에서 활동하면서 후쿠시마 오염수 보도와 김만배-신학림 녹취 보도를 가짜뉴스로 지적하고 비판해왔다.
황성욱 이사(전 방심위 상임위원)는 방심위 표적정치 심의 논란의 중심에 있던 인물이다. 대통령 추천 심의위원이었던 그는 류희림 위원장과 단둘이서 선거방송심의위원회 추천을 강행했고 이후 선방심위는 역대 가장 많은 법정 제재를 남발하며 논란을 샀다. 또, 황 이사는 과거 자유한국당 혁신위원과 황교안 당시 당대표 정무특보를 맡았고,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미래한국당 비례대표로 출마하는 등 정치 활동을 해왔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 당시 대리인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류현순 이사(전 한국정책방송원장)는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KBS 부사장이었다. 길환영 전 KBS 사장 시절에 영전했고, <추적 60분> 서울시 간첩 사건 편에 개입해 제작자율성을 침해했다고 비판받는다. 이인철 이사 (변호사)는 2020년 국민의힘 미디어 특위 위원으로 활동했고, 보수 성향 언론단체인 공정언론국민연대 발기인에 이름을 올렸다. 과거 'KBS 헌법파괴 저지 및 수신료 분리징수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수신료 분리징수를 주장해 온 인물이다. 이건 이사(여성신문사 부사장)는 비교적 덜 알려진 인물로 과거 이회창 대통령 후보 정무보좌를 시작으로 새누리당 상근 부대변인 등을 지냈다.
박상현 언론노조 KBS본부장은 "정치적 후견주의를 다시 한번 확인한 이번 KBS 이사선임은 원천 무효"라며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이 왜 필요한지를 보여줬다"고 비판했다.
윤창현 언론노조 위원장은 "인사는 곧 권력이 어떤 일을 하려고 하는지 투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라며 "이 정권은 공영방송을 국민의 공론장이 아니라 극우적 인사를 통해 이념 전쟁터로 만들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