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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 1998년 9월 22일(화)진행 : 이용석·김영호 프로듀서 방송내용 중 ‘이승복 공산당이 싫어요 작문 논란’ 부분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방송을 전후로 해 이 기사가 작문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조선일보와 작문가능성을 제기하는 시민·언론단체 사이에 큰 논란이 일기도 했다. 반세기 동안 반공이데올로기가 지배한 우리 사회에서 자칫 잘못하면 이념논쟁에 휘말릴 수도 있는 민감한 사안을 ‘오보의 진실’을 밝힌다는 신념으로 용기있게 방송한 이 프로그램의 관련 부분을 요약 소개한다. <편집자>(앞부분 생략)이용석 프로듀서 : 이승복 군의 이야기는 30년 전인 68년 한 신문이 현장에서 살아난 형의 말을 인용해 특종보도를 하면서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얼마전까지 초등학교 교과서에 소개됨으로써 …(중략)… 그의 말 한 마디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92년 한 잡지 가을호에 이승복 신화가 조작됐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중략)이용석 프로듀서 : 최근 다시 이승복 군의 공산당이 싫어요가 오보다 아니다라는 논란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그러자 해당 신문은 이에 대해서 …(중략)… 오보가 아니라며 극구 반박하고 나섰습니다. 당시 기자가 승복 군의 형을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형의 이야기를 들은 군인에게 전해들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중략)이용석 프로듀서 : 25년이 지난 92년, 저널리즘지가 당시의 해당 신문기자는 사건 현장의 유일한 목격자인 형을 만난 적도 없다며 의혹을 제기한 것입니다. 의혹을 제기한 김 씨는 그 단서로 형 학권 씨가 당시 집에서는 승권으로 불렸는데 승원으로 잘못 표기가 돼 있고 사진 역시 비행기로 급히 공수한 것처럼 표기가 돼있지만 이승복 군의 집이 아닌 자료사진인 것만 봐도 현장에 기자가 뒤늦게 도착한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중략)… 또 하나 그가 의문을 제기하는 부분은 같은 날짜의 다른 신문기사에는 그런 내용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다른 신문사의 기자들도 그 말을 들었다면 당연히 썼을텐데 아무도 그런 말을 듣지는 못했다는 것입니다. (중략)이용석 프로듀서 : 당시 수십군데를 칼로 찔렸던 학관 씨는 거름더미에 엎드려 있다가 …(중략)… 한참 뒤 공비들이 떠난 후에 아랫마을로 도망쳤다는 것입니다. 학관 씨는 집에서 8백미터 떨어진 반달형으로 생긴 친척집을 거쳐서 헬기로 원주병원으로 후송이 됐는데 그 과정에서 기자는 아무도 만난 적이 없다고 합니다.(중략)이용석 프로듀서 : 그런데 해당 신문의 당시 취재기자는 …(중략)… 학관 씨를 만나지는 못했지만 분명히 현장에서 이야기를 듣고 기사를 썼다는 것입니다.(중략)이용석 프로듀서 : 그렇다면 남은 가능성은 그의 주장과 같이 학관씨의 말을 들은 누군가로부터 간접적으로 전해들었을 경우입니다. 그런데 당시 조간인 해당 신문에 앞서 다른 석간에 일부를 냈던 기자는 그런 말을 들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중략)이용석 프로듀서 : 그래서 저희는 당시 그런 말을 들은 주민이 있는지 탐문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승복군의 아버지가 사건 당일 최초로 피신을 했던 인근가옥의 강환기 씨는 당시에 그런 승복 군의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고 합니다.(중략)이용석 프로듀서 : 그렇다면 …(중략)… 남는 가능성은 딱 하나 학관 씨가 집에서 탈출해서 병원으로 후송되기 전까지 머물렀던 반달형국집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얘기했을 가능성입니다.(중략)이용석 프로듀서 : 그래서 취재팀은 학관 씨의 이야기를 들었다는 학관 씨의 숙모 최 씨를 찾아가봤는데요 그날밤 그런 이야기를 들은 기억은 있다고 합니다.(중략)이용석 프로듀서 : 그러나 기자를 만난 적도 다른 사람에게 말을 한 적도 없다는 것입니다.(중략)이용석 프로듀서 : 다만 승복 군의 입이 찢어져 있어서 시신 수습을 해주며 학관 씨에게 들은 이야기를 넋두리처럼은 했던 것 같다고 합니다.(중략)이용석 프로듀서 : 또 한 사람 당시 용전지서까지 30리길을 달려가 최초로 신고를 했다는 유 씨도 수소문 끝에 찾을 수 있었는데요 이야기는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해당 신문에 기사가 나기 전까지 누구에게도 말한 적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중략)이용석 프로듀서 : 물론 작문 논란이 일고 있는 이 해당 신문의 기사는 기자가 학관 씨의 말을 전해들은 누군가로부터 듣고 썼을 가능성은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도 남는 의문점 중의 하나는 이런 논란이 일기 전인 92년 학관 씨가 저널리즘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는 그날 밤 자신은 경황이 없어서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는 것입니다.(중략)이용석 프로듀서 : 취재팀이 그 당시 녹음내용을 들려주며 왜 현재 자신의 말과 92년 당시의 말이 다른지를 물어봤습니다.이학관(승원)/이승복의 형 : 내 목소리는 맞는 것 같은데… 맞는데, 이게 언제적인지는 몰라도 내가 몸이 많이 아파가지고 얘기를 내가 안 만난다고 말이지 그랬는데 그러다가 얘기를 가가지고 대충 그 얘기를 그냥 싫은 듯이 그냥 마음없이 모르는 것처럼 대화를 한 거 같애요.이용석 프로듀서 : …(앞부분 생략)… 공비들이 총을 들이대면서 어머니에게 밥을 지으라고 했다가 쌀이 없다고 하자 강냉이를 삶으라고 했다는 기사에 대해서 학관 씨는 사실과 다르다고 합니다. 또 아버지 이 씨가 2km 떨어진 향군초소에 신고를 했고 수색대가 이 씨를 앞세우고 집에 다시 돌아왔다는 부분 그리고 퇴비더미에서 신음소리를 듣고 장남 승원 군을 구해냈다는 부분은 사실과 다르다는 것입니다.(중략)이용석 프로듀서 : 취재기자 역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일부 작문이 이루어졌을 가능성을 내비쳤습니다.강인원/당시 C일보 취재기자 : 만들었다기보다도 이게 언론의 보도과정에서 데스크 고유 권한이 있습니다. 어느 기사를… 데스크가 첨삭을 첨가를 하거나 삭제를 하거나 그런 고유 권한이 있어요. 그래서 그 부분에 데스크의 고유 권한에 의해서 수행된 것인지 또는 제 자신이 그런건지 확신은 안서요.(중략)김영호 프로듀서 : 이승복 군의 공산당이 싫어요 이 말이 실제 있었다고 인정하더라도 기자가 그것을 현장취재중에 듣고 썼다고 하기엔 좀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이용석 프로듀서 : 그렇습니다. 그 논란의 첫 번째를 보면 기자가 과연 승복 군의 형을 만났는가 하는 점인데 그 형이 병원으로 후송되고 난 다음에 기자들이 도착했기 때문에 만났을 가능성은 없다라는 점이죠. 두 번째는 기자가 그럼 간접적으로 주민들에게 들었을까 하는 점인데 그 승권 씨한테 들었다고 하는 주민들마저도 그런 얘기를 들은 기억은 나지만 기자한테 정작 얘기한 적은 없다 그런데도 해당 신문사에서는 분명히 주민들한테 듣고 썼다라는 것이고, 다른 신문사 기자들은 전혀 그런 얘기를 못 들었다고 하는 점입니다.(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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