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저널=김사은 전북원음방송 PD·수필가] 초여름의 산등성이는 고생길이었다. 시 단위 자문위원 자격으로 ‘걷기 탐사’에 나선 길이었다. 주최 측의 간곡한 요청도 있었고 ‘사드락 사드락 마실길을 다니는 심정으로’ 참석한 것이었는데 개회 선언 후 첫 발을 내딛은 뒷산은 90도 각도의 험준한 고갯길이었다. 아차 싶었지만 이미 선발대는 휘리릭 바람처럼 고갯길을 넘어 저만치 앞서가고 있었다. 산허리를 돌아 반대편에서 만나기로 한 터라 뒤로 물러설 수도 없었다. 나는 당시 항암 중이어서 체력 저하와 컨디션 난조의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었다.
[PD저널=김사은 전북원음방송 PD‧수필가] 나는 효심이 얕고 정성이 부족해 효녀가 되지 못한다. 정신노동이 심해 되도록 가사 노동으로부터 자유롭고 싶다. 효도를 하려면 노동력이 증대되어야 하는데, 체력이나 시간이 뒷받침되지 않는다고 변명 일색이다. 남원에 사시는 팔순의 친정 엄마는 뒷마당에 일 년 내 자급자족할 수 있는 먹거리를 기르고 있어 언제나 노동력이 필요하다. 그 노동이 두렵고 힘들어서 발걸음이 무겁기만 하다. 친정 엄마에게 효도하려면 친정에 가서 하루 종일 뒷마당에서 살아야 한다. 무성한 풀을 베거나 철 따라
[PD저널=김사은 전북원음방송 PD·수필가] 여름내 모임에도 참석하지 않고 두문불출하던 P 선배가 가을 초입에 둘째 딸의 결혼 소식을 알려왔다. P 선배는 삼남매를 고루 잘 키워서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중 둘째 딸은 일찌감치 셰프가 되기로 인생의 길을 정하고 호주와 뉴욕에서 공부를 했다. 7~8여 년 전, 동네 커피숍에서 우연히 마주쳤는데 생글생글 웃는 모습이 너무 고왔다. “아휴 어쩜, 이렇게 예쁘게 잘 컸을까?” 덕담을 건넸더니 “그러게요. 제가 부모님을 잘 만나서 복이 많아요”라고, 대답도 이쁘게 하던 아가씨였다.그렇게 두어
[PD저널=김사은 전북원음방송 PD·수필가] 지난여름은, 하루하루 신기록의 연장이었다. 매스컴에서는 매일, 최고기온 극값을 기록하였으며 관측 시작 이래 가장 높은 값이라는 기사가 번갈아가며 메인 페이지를 장식했으니, 어느 날부터인가 ‘최고’, ‘폭염’ 등의 단어의 어감조차 불감증에 이를 정도였다.기사에서는 일제히, 2018년의 더위를 지난 1994년의 그것과 비교하며 폭염일 수가 1994년을 넘어섰다고 난리였다. 기상청은 4월 시작된 올해 폭염의 합계가 2018년 8월 23일 밤 12시까지 31.3일로 집계돼 1994년의 31.1일
[PD저널=김사은 전북원음방송 PD/수필가] 원고 마감 날짜가 닥쳐오는데 며칠째 컴퓨터 빈 화면만 열어 놓고 소득이 없다. 하도 마감을 늦게 해서, 다음 달에는 조금이라도 빨리 보내자고 작심하고 한 달 내내 연마를 하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다. 데드라인이 다가올수록 마음이 급해져서 컴퓨터 모니터에 새 문서를 열어두고 껌벅거리는 커서를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글 한 줄은커녕, 글자 한 자도 타이핑하지 못한 채 빈 화면을 닫는 일이 부지기수였다.결정적으로 '꺼리'가 없었다. 마음은 조급한데 한 줄도 전진하지 못하는 답답하고 안
[PD저널=김사은 전북원음방송 PD/수필가] 여행에 대한 흔한 말 가운데 “여행은 어디로 가느냐보다, 누구와 가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을 경험적으로 가장 신뢰한다. ‘누구’ 덕분에 ‘그곳’이 더욱 의미 있고, ‘누구’ 때문에 ‘그곳’이 지옥이 되기도 한다. ‘어디’는 죄가 없는데, ‘누구’에 따라 천국이 되기도 하고 지옥이 되기도 한다. 나는 대부분 ‘누구’ 덕분에 여행이 즐겁고 행복한 여행을 했다. ‘누구’의 범주에 드는 많은 사람들에게 새삼 감사한다. 그 ‘누구’ 중 하나는 화려해(和麗海)라는 모임이다. 화요일에 만난 아름다운 사
[PD저널=김사은 전북원음방송 PD·수필가] 가까운 친구가 ‘명퇴 발표 났다’며 ‘30년 6개월 교사 끝’이라는 문자를 보내왔다. 친구는 어느 틈엔가 퇴직을 염두에 두고 마음의 준비를 해왔던 것이다. 사범대학 영어교육과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영어교사로 교직을 시작한 친구는 결혼하고 스스로 생계형 교사를 자처하며 맞벌이로 알뜰하게 살아왔다. 2년 터울로 아들, 딸을 낳아 기르는 동안 한 번도 타인의 손을 빌리지 않고 오롯하게 학교생활과 육아, 교육에 집중했다. 집에 TV를 없애고 학원이나 과외 한번 시키지 않은 채 밤낮으로 공들인 덕분
[PD저널=김혜인 기자] 한국PD연합회 전북지부(회장 황윤택)가 주관하는 ‘제17회 전북 PD상’에 KBS전주의 등 총 6편이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지난 2일 전북 전주 오펠리스 웨딩홀에서 열린 ‘17회 전북PD상 시상식'에서 TV정규부문에선 KBS전주 (연출 이휘현‧설장미)가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는 ‘수다’라는 예능적 재미와 시사정보의 적절한 균형으로 지역의 젊은 시청자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2017년 2월 15일 첫 방송한 이 프로그램은 지역 이슈와 관
[PD저널=김사은 전북원음방송 PD/수필가] 첫눈은 예뻤다. 마치 조물주께서 “그래, 내가 맘먹고 한턱 크게 쏜다”라고 인심이라도 쓴 것처럼, 풍성하고 사랑스러웠다. 새초롬한 듯 그러나 조신한 자태로 하늘거리며 내려와 사뿐 내려앉았다. 사람들은 오랜만에 맞이한 풍성한 첫눈을 서설(瑞雪)이라고 좋아했다.새해 들어 눈 소식이 이어졌다. 화요일에 함박눈이 내렸다. 굵고 탐스러운 눈이 목화솜처럼 쌓였다. 함박눈이 내리면 그해 풍년이라고 덕담이 이어졌다. 첫 눈의 감흥을 되새기며 운전대를 잡고 출근했다. 예측한 것처럼 도로는 빙판길이고 속도
[PD저널=김사은 전북원음방송 PD] 2017년 늦은 여름, 전주시 평생학습관에서 근무하는 창의교육지원팀의 김삼현, 김지영 선생이 방송국을 찾아왔다. 전주시 평생학습관에서 진행하는 교육프로그램에 수강생으로 참여하기도 했고, 몇 번 특강의 강사로, 또는 외부행사 진행 등의 인연으로 직원들과 안면이 있는 터라 반갑게 맞이했다. 전주에서 익산까지 출장을 나와서, 두꺼운 수첩을 연신 뒤적이며 어렵게 꺼낸 이야기는 ‘전주에서 50+ 인생학교를 개최하고 싶은데 교장선생님이 되어달라’는 요지였다. 처음 이 얘기를 들었을 때 내 반응은 ‘50+
[PD저널=김사은 전북원음방송 PD] 내 기억에 어린 시절 겨울은 엄마의 뜨개질에서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다. 김장이나 연탄 들여놓기 같은 겨우살이 준비는 어른 들 몫이니 정해진 날 사나흘에 걸쳐 잔심부름이나 하면 아이들로서는 일 년 책임은 면한 듯싶은데, 어른들의 겨울 준비는 시작은 이르고 끝은 없었다. 손재주가 좋은 엄마는 신작로 앞 양품점에서 색색의 실을 사놓고 가족들 겨울옷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남자 몫으로는 주로 조끼를 떴고, 여자용으로 목도리에서부터 모자, 장갑 등 다양한 소품이 대기하고 있었다. 대충 치수를 가늠하고 촘촘
[PD저널=전북원음방송 PD] 휴일에 남편의 직장 선배가 빙모상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남편이 문상을 가야겠다고 채비를 했다. 나도 잘 아는 K 과장은, 남원 출신으로 내 후배 C의 남편이자 나의 중학교 동창 J의 제낭(弟郞)이다.J와 C는 자매인데 J는 중학교 졸업 이후 거의 소식이 끊긴 상태이고, 의료 보건직에 있는 C는 가끔 보건소에서 만난 사이이니 오히려 동창보다 후배와 더 가깝다. 게다가 후배는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어서 가끔 친정어머니를 통해 소식을 들을 수 있었기에 심정적으로는 이웃사촌 못지않다.남편의 직장선배 빙모상은
[PD저널=김사은 전북원음방송 PD] 전북시인협회에서 주최하는 ‘덕진공원 전국 초․중학교 백일장’ 본선 심사위원으로 위촉을 받고 백일장이 열리는 토요일에 덕진공원으로 향했다. 이틀 전까지만 해도 가을비가 오락가락하여 근심이 많았는데, 행사 당일 가을 날씨가 청청淸淸했다. 그전에 내린 가을비는 먼지까지 잠재워서 전화위복이 되었고 참가자들의 시심詩心을 돋우기에 충분했다. 가을까지 버텨 준 연꽃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백일장이 열리는 소나무 숲으로 발길을 옮긴다. 군데군데 백일장에 참가한 학생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다소 긴장된
언제부터인가 TV 시청이 큰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예전에는 집에 돌아오면 어머니가 켜둔 TV를 끄거나 볼륨을 줄이는 게 일과였는데, 요즘엔 퇴근하자마자 TV 앞으로 달려가서 채널을 선정하고 다음 일을 진행하곤 한다. 빨래를 개키거나 물걸레질을 할 때는 굳이 스토리에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토크쇼나 오락프로그램을 틀어두곤 한다. 샤워를 마친 후, 잘 정돈된 거실에서 소파에 왼쪽으로 누워 오른손으로 리모컨을 쥐고는 TV를 저격하듯 한 채널 한 채널 돌리며 탐색을 하는데 이때는 집중할 수 있는 교양 프로나 영화 채널을 오르내린다. 상영 시
[PD저널=구보라 기자] 한국독립PD협회(회장 송규학)가 ‘방송사 불공정 행위 청산과 제도 개혁을 위한 특별위원회’(이하 ‘방불특위’)를 출범하고 본격적인 활동에 나선 가운데 한국PD연합회(회장 오기현)도 성명을 내고 "방불특위의 활동을 적극 지원하고 함께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PD연합회는 9일 늦은 오후 ‘건강한 방송생태계를 위해 지상파 PD들도 함께 나서야 합니다-박환성 PD가 남긴 과제를 생각하는 PD연합회장의 호소문’이라는 제목의 성명을 냈다. 성명에서 “지상파와 독립PD(또는 제작사)의 합리적 관계 설정은, 방송계는
[PD저널=김사은 전북원음방송 PD] 우여곡절 끝에 남프랑스 기차여행 일정이 정해졌다. 여름휴가기간에 자유여행으로 6~8명 정도에서 추진하던 일이 K와 그녀의 언니들 네 자매가 합류하면서 여성만 11명이 되었다. 인솔자로 동행을 부탁한 K사장은 동생처럼 지내는 L선생을 섭외해서 남자 둘이 합류하게 되었으니 우리 일행은 모두 13명이다. 65세의 최고령자를 비롯해 60세 이상이 5명이나 된다. 단체여행 인원으로는 다소 부족하고 자유여행으로는 부담스러운 인원이 되었다. 그러나 한 사람 한 사람 소중한 사연과 인연으로 뭉치게 된 것이리라
필리핀 수빅(Subic)에 거주하는 친구 Y가 한국으로 나온다고 하기에, 날을 잡아 친한 친구들이 모이기로 했다. 필리핀으로 말하자면 섬나라이고, Y가 거주하는 수빅은 자유무역항 경제특별지구이며 휴양지로 각광받는 도시인데, Y는 한국에 오면 바다를 먼저 찾는다. 3년 전에 방문했을 때에도 나를 포함해 여고 친구인 I와 M, Y 등 네 명이 강원도 속초를 여행했었다. 우리는 설악산 울산 바위가 보이는 곳에 숙소를 정하고, 곧장 바닷가로 달려갔다. 설악산과 동해바다의 기운을 동시에 받으려는 심사였던 것 같다. 초봄의 바닷가는, 살을 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