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계 '공정한 보상' 요구 외면할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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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게임' 이후 커진 '창작자들의 정당한 보상' 목소리
여야 의원들 저작권법 개정안 다수 발의
추가적 보상? 최소한의 성의 보이라는 것

홍익표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장이 지난 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저작권법 개정안 지지 선언회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홍익표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장이 지난 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저작권법 개정안 지지 선언회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PD저널=지원준 한국독립PD협회 정책위원장] 작년 8월 유정주 민주당 의원의 발의를 시작으로, 창작자에 대한 '공정한 보상'을 보장하는 내용의 저작권법 개정안이 차례로 발의됐다. 

유정주·성일종 의원 등이 발의한 저작권법 개정안은 '영상저작물 저작자의 보상권' 조항을 신설해 창작자들의 권리를 제도적으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방송 용어로 표현하자면 재방료를 뜻한다.   

지난 9일에 있었던 해당 저작권법 개정안 지지 선언에 참석했을 때, 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그 이야기부터 시작하려고 한다.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의 요지는 '공정 보상'은 ‘추가적 보상’이며, 창작자들이 추가적인 보상을 자꾸 요구하는 것은 염치없는 짓이라는 것이다. 이야기를 듣는 순간, 언어를 이 지경으로 엉뚱하게 차용해서 현실을 왜곡할 수 있음에, 화가 나기 보다는 신기하고 놀라웠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현재 방송산업에서 추가적 보상을 가장 많이 받고 있는 곳은 KBS 미디어나 SBS 콘텐츠 허브와 같이 원본 콘텐츠의 권리를 양도받아 복사와 판매만으로 수익을 얻고 있는 기업들이다. 해당 기업들이 창작과 전혀 상관없는 복사와 붙여넣기 그리고 배송만으로 짭짤한 추가 수익을 얻고 있다면, 그 수익을 얻게 해준 원천 콘텐츠의 창작자에게 최소한의 성의를 보이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한국 내에서는 어느 누구도 추가 수익에 대한 최소한의 성의 표시를 하는 사람이 없으니, 그것을 법률로 강제하겠다는 것이 이번 저작권법 개정안의 핵심이다. 즉, 이미 추가 수익을 얻고 있는 자에게 최소한의 성의를 표하라는 법안이지, 창작자에게 추가 수익을 주라는 법안이 아니다. 

전 세계적인 흥행 기록을 쓰고 있는 넷플릭스 '오징어게임'
공정한 수익 분배 문제를 수면으로 끌어올린 넷플릭스 '오징어게임'

또 한가지 괴이한 일은, '공정 보상'을 해 주지 않으려고 혈안이 돼 있는 집단들이 <오징어 게임> 창작자들에게 아무런 보상을 해 주지 않는다며 한목소리로 넷플릭스를 비난했다는 점이다.

‘착취를 해도 우리가 한다’는 뒤틀리긴 했지만 어쨌든 민족주의적인 목소리라고 오해하는 독자도 있을 수 있어 이 부분을 확실히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넷플릭스는 기본적으로 미국 기업이고, 미국 기업은 한미 FTA에 의해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한국 정부가 한국 기업들에게 전혀 부과돼 있지 않은 공정 보상의 의무를 넷플릭스에 지우는 순간, 넷플릭스는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고, 한국 정부는 천문학적인 국민 세금을 넷플릭스에 갖다 바쳐야 할 수도 있다.

'공정 보상'을 법제화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오징어 게임> 사례에서 찾을 수 있다. 넷플릭스가 벌어들인 천문학적인 돈의 일부라도 국내로 환수해야 할 것 아닌가? 그러려면 국내 플랫폼들도 창작자들에게 공정보상을 해야 하는 의무가 있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애꿎은 혈세만 빠져 나가게 된다. 

한국은 이미 열 배가 넘는 자본력을 갖춘 창작자들과 대등하게 경쟁하는 우수한 창작자들을 보유한 콘텐츠 강국이다. 게다가 ‘세계 13위의 경제대국’이라는 표현이 많은 사람들에게 착시현상을 일으키는데, 전 세계 GDP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2년 기준으로 1.7%도 안 된다. 저작권료 징수가 확실히 가능한 상위 25위 국가만 놓고 따져도,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2년 기준으로 2%가 채 안 된다.

2% 밖에 안 되는 시장에서 가져갈 수 있는 수익이 많을지, 98%의 시장에서 얻을 수 있는 수익이 많을지는 그리 어려운 계산이 아니다. 생각해 보자. 영화 <기생충>의 해외 상영 수익은 2억 달러를 훌쩍 넘어섰지만, <기생충>의 20배에 달하는 제작비를 쏟아 부은 <반지의 제왕> 3부작은 3편 다 합쳐서 1500만 수준의 관객을 모았다.

<오징어 게임>으로 넷플릭스가 전세계에서 얻은 수익과 <왕좌의 게임>으로 HBO가 한국에서 얻은 수익이 과연 비교가 될까? 이 법안의 반대자들은 어떠한 형태의 민족주의자도 아니며, 국가 경제에 피해가 가건 말건 내 지갑만 지키면 된다는 극한의 집단 이기주의자들일 뿐이다. 

3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한국영화감독조합(DGK)과 유정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주최로 ‘천만영화 감독들 마침내 국회로: 정당한 보상을 논하다’ 정책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PD저널
지난해 8월 3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한국영화감독조합(DGK)과 유정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주최로 ‘천만영화 감독들 마침내 국회로: 정당한 보상을 논하다’ 정책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PD저널

그렇다고 반대론자들에게 국가 경제를 위해 희생하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이 법안은 장기적으로 반대자들에게도 이익이다. 젊은이들에게 방송 콘텐츠 창작이라는 직업이 3D 직종으로 낙인찍힌 상황에서, 방송 콘텐츠 산업기반의 붕괴는 시간 문제다. 그렇다면 지금 외주제작이 차지하는 50%의 분량을 재방이나 철지난 해외 콘텐츠(이 역시 결국 재방)로 매워야 한다. 재방이 50%를 차지하는 방송을 과연 누가 볼 것인가.

수신료로 버티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지금도 TV를 아예 보지 않는 세대가 늘어나는 판국에 싫은 소리 않고 수신료를 낼 시청자가 언제까지 남아 있을까. 콘텐츠 창작 기반이 붕괴하면 방송사도 결국엔 도태될 수밖에 없다. 이 법안은 국내 방송산업을 지속 가능하게 만들어 주는 그야말로 win-win 법안이다. 

'공정 보상' 요구는 독립PD나 영화감독들만 해당 사항이 있는 것도 아니다. 국내 방송사는 업무상 저작물이라는 점을 들어 소속 PD에게 들어올 돈을 법인 통장으로 넣으라고 한다. 그런데 외국의 저작권 관리 기관은 창작자 개인에게 지급되는 돈이므로 법인에게 줄 수 없다고 맞서고 있어 오도 가도 못한 채 묶여 있는 돈이 상당하다고 한다. 지금 한국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공정 보상 금액 중에는 독립PD나 영화 감독들의 몫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공정 보상' 논의를 방송계 전반으로 확대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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