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지역방송 누적된 위기...탈출구가 안보인다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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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영방송 위기에 생존 위협 더 높아져…인력유출도 큰 문제
지역 균형 발전 틀안에서 대안 모색 필요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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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저널=엄재희 기자]"비용을 줄일 수 있는 부분은 이미 다 줄여놓아서 더 짜낼 게 없는 상황이에요“

최지호 지역방송협의회 사무국장은 "지역방송이 보도나 프로그램에 집중하기 어렵게 된 지 오래다"며 이렇게 말했다. '지역방송의 위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1995년 케이블TV 등 유료방송이 등장한 이후부터 지역방송의 시청률과 영향력은 하락했고, 종합편성채널이 방송시장에 진입하면서 지역방송 광고매출액은 크게 떨어졌다. 지역MBC의 광고 매출액은 2012년 2,712억원에서 2021년 1,269억원으로 반토막 났고, 9개 지역민방은 같은 기간 1,844억원에서 1,185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윤석열 정부 들어 공영방송의 영향력을 축소하려는 움직임이 일면서 지역방송 입지는 더 줄고 있다. [관련기사: '언론 암흑기' 지역방송 출구도 퇴로도 없다] TV수신료 분리고지 시행령 개정으로 KBS 수신료 수입이 감소하면 KBS의 9개 총국과 9개 지역국은 직격탄이다.  

프로그램 제작할수록 적자 폭 커져  
제작비 부족은 지역방송의 오래된 문제다. 방통위의 '방송산업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지역MBC의 자체 제작비는 2012년 294억원에서 2021년 290억원으로, 지역민방은 2012년 395억원에서 2021년 382억원으로 감소했다. 치솟은 제작비용과 인건비는커녕 물가 상승률도 반영하지 못한 채 10년째 제자리걸음이다.

제작비 부족 탓에 외부 지원 없이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위기를 벗어나려면 양질의 콘텐츠를 제작해야하지만 제작비가 없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것이다. 올해 화제를 모은 MBC경남 <어른 김장하>도 외부 지원 없이는 탄생할 수 없던 다큐멘터리다.

전우석 MBC경남 PD는 "경상남도에는'지역방송발전지원조례'가 있는데, <어른 김장하>는 이 방송발전지원사업에 선정돼 제작할 수 있었다"며 "외부 지원 없이다큐멘터리같은 공익적 프로그램은 만드는 건 사실상 어렵다"고 했다.

한 지역민방 PD도 "광고나 판매, 협찬 수입으로 필수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나면 여윳돈이 없다"며 "정부나 지자체 지원 없이는 새로운 기획을 할 방법이 없다"고 했다.

지역 라디오방송은 자체 제작 프로그램을 하나둘 줄여가고 있다. 대구MBC는 이달 초 자체 제작하던 <시인의 저녁>을 종영하고 대신 MBC <신장식의 뉴스하이킥>을 편성하고 있다. 저녁 시사인문학 프로그램인 <시인의 저녁>을 담당하던 PD가 정년퇴임한 뒤 새로 맡을 인력이 없고 제작비도 감당하기 어려워진 탓이다. 대구MBC의 경우 표준FM과 FM4U 2개 채널의 자체 제작 프로그램 편성 비율은 2020년 21.4%에서 2023년 15.8%까지 줄었다.

윤창준 대구MBC PD는 "연간 1억원이 들어가는 프로그램에 광고가 두 개 붙는다. 지역방송은 제작하면 할수록 적자가 나는 상황이다"라며 "대부분의 지역MBC는 인력과 제작비가 부족해 아나운서가 프로그램 연출을 동시에 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턱없이 부족한 지역방송 지원금
지역방송 상황은 날로 어려워지지만 공적 지원도 기대하기 어렵다. 지역방송에 투입되는 공적 재원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지역방송발전지원 특별법에 따라 2015년부터 3년마다 '지역방송발전지원계획'을 수립하고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라파)를 통해 지역방송을 지원하고 있는데, 올해 배정된 지원금은 45억 3천만원이다. 35개사의 지원 대상에 배분되는 금액은 1억원 남짓이다. 전체 방송통신발전기금 지출의 약 2%에 불과하다. 

지자체가 지역방송을 지원하는 조례를 만들기도 하지만, 현재 경상남도와 인천, 부산 등 일부 광역자치단체만 조례를 제정해 놓았다. 

지역 MBC 네트워크 ⓒMBC
지역 MBC 네트워크 ⓒMBC

인력 유출에 설 자리 사라지는 지역방송
인적 자원 부족도 지역방송의 고민거리 중 하나다. 어렵게 신입사원을 채용해도 일찍 퇴사하거나 수도권 언론사로 이직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한 지역방송 PD는 "방송계는 서울 쏠림 현상이 특히 심하고, 서울에서 방송생활을 해야 확장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 다들 서울로 가려고 한다"며 "예전에는 젊은 예비 방송인들도 지역방송에 관심을 가지고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지역방송에서 일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 듯하다"고 했다. 

방송계 서울 쏠림 현상은 통계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방통위의 '방송산업 지역별 방송매체별 종사자' 통계에 따르면, 2021년 전체 방송종사자 중 77.5%가 서울에 있고, 86.0%가 서울·인천·경기 수도권에 몰려있다. 방송 종사자들이 서울을 선호하는 사이, 지역방송은 인력 수급에 차질을 빚고 있는 것이다.

관심밖으로 밀려난 지역방송은 지역민의 외면이라는 악순환에 빠져든다. 2012년 지역MBC 시청점유율은 16.0에서 2021년 10.4로 해마다 감소했다. 여기에 OTT와 유튜브 등 다매체다채널 시대로 진입하면서 지역방송 시청자 이탈을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박규현 전주MBC PD는 "수도 서울에 집중된 사회와 지역소멸로 지역민들이 지역을 스스로 거부하고 있다"며 "지역PD들은 볼 만한 콘텐츠를 만들려고 노력하지만, 오히려 지역민이 찾지 않는 현실에서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수익사업도 여의치 않아
지역방송은 커피 판매, 골프장 운영, 태양광 사업 등 수익사업에서 돌파구를 찾는다. 대구MBC는 경영난을 겪다 2019년 사옥을 매각했고, 부산 MBC도 2021년 사옥을 팔았다. 방송 외 수익사업에 골몰하고 있는 현실이지만, 공영방송인 지역MBC는 수익사업 다각화에도 애를 먹고 있다.

최지호 지역방송협회 사무국장은 "부족한 수입을 만회하기 위해서 지역방송사는 수익 사업을 계속 발굴하고 있다"며 "그러나 공영방송이 할 수 있는 사업에 한계가 있고, 경제상황이 나빠지면서 수익도 시원치 않다"고 했다.

지역방송에 대한 로드맵 필요
정부의 체계적 지원과 종합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역 언론이 사라지는 '뉴스 사막화' 현상이 확산되면 지역 소멸은 더욱 가속화되고 결국 지역민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 피해가 가기 때문이다. 중앙 언론이 하기 어려운 지역 권력의 감시와 견제도 민주주의에 필수적이다.

복성경 부산민주언론시민연합 대표는 "지역방송이 지역 권력을 견제 하고, 지역 소멸을 막는 데 기여하려면 체계적인 재원 지원 방안부터 있어야 한다"며 "국가 균형발전의 일환으로 지역언론을 활성화하기 위한 고민을 해야 한다."고 했다.

지역방송에 안정적인 공적 재원을 지원하기 위해서 특별기금 조성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한선 호남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현재 지역방송발전지원 특별법은 방송발전기금을 통해 지원하고 있어 한계가 명확하다"며 "지역방송을 위한 독립기금을 조성해 지원금액을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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