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고] '언론 암흑기' 지역방송 출구도 퇴로도 없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위기의 공영방송 (3) 김재영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윤석열 정부 들어 미디어 공공성이 다시 위기를 맞았다. TBS 지원 조례 폐지, TV수신료 분리징수, YTN 민영화 추진,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감사원 감사 등 공영방송 전 영역에 빨간불이 켜졌다. PD저널은 공영방송의 위기를 진단하고 대응 전략을 모색하는 '위기의 공영방송' 연속기고를 준비했다. 다음은 김재영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의 기고글이다. <편집자주> 

 1)
공영방송 붕괴와 침묵의 대한민국 (이창현 국민대 교수) 
 2) 尹정부 미디어 정책 1년은 ‘언론장악 프로젝트' (이준형 언론노조 정책위원/언론학 박사)
 3) '언론 암흑기' 지역방송 출구도 퇴로도 없다 (김재영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PD저널=김재영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지역방송은 크고 작은 지역에서 뉴스와 정보를 실어 나르는 대동맥이자 실핏줄이다. 그럼에도 ‘서울 공화국’이라 불릴 만큼 권한과 재원이 중앙에 쏠린 구조 탓에 ‘시장 없는 시장’에서 운신한다. 자본 집약적 산업에 속하나 규모의 경제 실현은 언감생심이다. 방송 인력과 제작비 규모의 제약은 콘텐츠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고, 이는 지역방송 시청자의 외면과 이탈이라는 ‘구조적 악순환’에 갇히게 한다. 투철한 소명의식으로 방송 활동에 임한다 한들 시장 없는 시장 구조에 가로막히기 일쑤다. 이를 타개하기 위한 방편에서 2014년 지역방송발전지원특별법이 힘겹게 제정되어 제도적 ‘공민권’이 부여되었으나 마중물 기능은 턱도 없다. 이로 인해 지역방송 현장은 체념과 냉소주의로 팽배하다. 심지어 지상파 3사의 네트워크 체제에 종속적이기에 ‘내부 식민지’란 굴욕적 표현으로 호명되기도 한다.

수십 년간 지연된 지역방송 활성화는 윤석열 정부 체제에서 활로를 찾을 수 있을까? 없다! 중앙집권적 체제에서 먹이사슬의 가장 끝자리에 놓여 있는 지역방송의 입지 개선은 복잡한 함수방정식을 푸는 일에 가깝다. 거시적으로는 국가균형발전과 자치·분권에 기초한 국가로의 재설계부터 미시적으로는 지역방송사를 위시한 지역 미디어 활성화에까지 이른다. ‘열등재’ 취급받는 지역 미디어를 적정 소비가 필요한 ‘가치재’로 전환해 지역 미디어와 로컬리즘을 일치시켜야 한다. 정책은 고사하고 ‘바이든 날리면’부터 ‘세계 잼버리 파행’까지 바람 잘 날 없이 사건‧사고만 쏟아내는 현 정부를 감안할 때 지역방송 활성화는 요원하다.

대의제 체제에서 선거제도를 둔 취지는 유권자의 의사와 요구를 주기적으로 수렴하고 이를 국정에 반영케 하는 데 있다. 대통령 선거를 거쳐 새 정부가 들어선 지도 한참 지났다. 그럼에도 방송 분야를 포함해 정부가 지향하는 정책 자체가 아예 보이지 않는다. <한겨레>가 현 정부 집권 6개월을 맞은 시점에 사설을 통해 대통령은 무능‧무책임‧무비전 ‘3무’로 일관하며 시간을 허투루 흘려보냈다고 지적했는데 시정은커녕 현재도 무한반복 중이다. 5년짜리 대통령 임기의 10분의 1은 짧지만, 국정 방향을 제시하고 공론을 수렴하는 더 없이 중요한 시기였다. 현 정부가 즐겨 비교하는 전임 문재인 정부조차 인수위 없는 출범이라는 예외적 상황에서도 집권 1년여 뒤 정책공약집을 통해 ‘지역방송 활성화’를 4개 범주의 하나로 제시했다.

한국지역민영방송협회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9개 지역민영방송. 한국지역민영방송협회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주권재민에 기초한 민주주의 실현과 저성장 시대의 새로운 동력 마련은 의당 정부의 역할이다. 3무 기조가 이어지면 각자도생만 남는다. 사회적 약자가 재난에 더 취약하듯 그 여파의 직격탄을 맞는 것은 먹이사슬의 끝자리에 위치한 지역방송 등 지역미디어가 되기 쉽다. 이 마당에 정부는 절차와 공론도 아랑곳하지 않고 검찰이 즐겨 쓰는 시행령 꼼수를 통해 수신료 분리징수를 감행했다. 이건 정부의 정책이 아니라 권력의 폭력이다. 국가기간방송을 무력화함과 동시에 방송, 특히 지역방송 생태계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KBS 본사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예산 규모로 전국에 걸쳐 9개 총국과 9개 지역국을 운영하는 상황에서 수신료 분리징수에 따른 예산 삭감은 KBS를 넘어 지역방송 전반의 게토화를 초래할 뿐이다.

정책이 사라진 자리에는 ‘사법화된 정치과잉’이 똬리를 틀었다. 방송의 공적 책임 제고와 방송·통신의 균형발전을 존립근거로 설립된 대통령 직속 합의제 행정기구인 방송통신위원회에서 벌어지는 작태가 그것이다. 법으로 임기가 보장된, 따라서 위헌‧위법 소지가 다분한 위원장 찍어내기는 달성했다. 동시에 무능‧무책임‧무비전의 3무 현상에 ‘무염치’ 추가는 불가피하게 됐다. 숱한 논란에도 독립성을 존재이유로 하는 방송통신위원회를 집요하게 탈취한 사유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다름 아닌 언론장악의 대명사였던 이동관의 재림을 위해서였다. 국가정보원을 동원한 언론사 운영 개입과 언론인 탄압 등 이명박 정부가 몰두했던 언론장악의 시즌2 예고편 말고는 다른 해석이 어렵다. 가뜩이나 언론에 대한 신뢰 제고가 현안인 우리 사회에서 언론자유와 독립성 등을 관할하는 기관의 수장 후보자로 이동관을 지명한 것은 희대의 코미디이자 비극이며 무염치의 절정이다. 그저 박노해 시인의 시 ‘동그란 길로 가다’의 구절을 되뇌일 뿐이다. “절정의 시간은 짧다. 최악의 시간도 짧다 … 그러니 담대하라 … 어떤 경우에도 인간의 위엄을 잃지 마라.”

ⓒ나눔문화
ⓒ나눔문화

우리나라 지역방송은 애초 독자적 비전이나 전망 아래 기획되지 않았다. 오히려 서울공화국의 보완적이거나 수탈적 대상으로 설립되고 존재해 왔다. 해방 후에도 마찬가지였고, 1980년대에도 지역방송은 정책 대상조차 되지 않았다. 그 환경에서도 이만큼 왔다. 온갖 자원이 총동원되어도 쉽지 않은 지역방송의 입지 개선은 ‘4무’의 현 정부 체제에서는 당분간 무망하게 되었으나 본령을 외면할 수는 없다. 그 어느 때보다 지역방송이 각 권역에서 권력집단을 감시‧비판하는 파수꾼의 본업에 더 매진해야 한다. 지역주민의 미시적 생활세계에까지 밀착하면 국민을 갈라치기하는 권력의 도발도 제어 가능하다. 턱없이 모자란 인력도 주민과의 연대와 협업을 통해 보완 가능하다. 개방형 플랫폼을 매개로 한 지역주민의 내부 자원화 방식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지역방송이 주민의 품으로 향하는 일이자 지역방송의 미래일 수 있다. 우리는 저급하게 가는 그들과 달리 옳은 길로 뚜벅뚜벅 가야 한다. 출구도 퇴로도 없다.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