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임명동의제 무력화..."공정보도 토대 무너져"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측, 주요 국장 임명 강행에 언론노조 KBS본부 반발
"임명동의제는 방송 독립 최소한의 장치...퇴행만 반복하는 정권에 참담"

31일 KBS 본관 앞에서 'KBS 편성규약 위반, 단체협약 파기, 임명 동의 없는 5개 국장 임명 규탄 기자회견'이 열렸다. ⓒPD저널

[PD저널=엄재희 기자] "임명동의제는 방송 독립이 무너졌던 시기 그 아픔을 견디면서 퇴행을 막을 최소한의 방파제가 있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만든 제도다. KBS뿐 아니라 MBC·SBS·EBS·YTN 등 방송사와 신문사도 임명동의제를 실시하고 있다."

KBS 사측이 임명동의제 없이 주요 5개 국장 임명을 단행한 가운데, 31일 KBS 본관 앞에서 이를 규탄하기 위해 열린 기자회견에서 윤창현 언론노조 위원장은 "KBS의 임명동의제를 무너뜨리는 것은 대한민국 모든 언론의 공공성을 무너뜨리겠다는 권력의 협박"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임명동의를 거치지 않고 투하되는 박민의 낙하산 실체들을 보면, 그 자들이 과연 KBS의 대국민 신뢰, 보도 독립성과 제작 자율성을 회복할 혜안이 있는 사람들인가”며 "언론노조는 총선 이후 새롭게 구성되는 국회에서 임명동의제 법제화를 위해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KBS는 지난 26일 약 2개월간 공석이었던 5개 주요 국장을 임명했다. 이번 인사로 최재현 통합뉴스룸국장(보도국장), 박진현 시사제작국장, 이상호 라디오제작국장, 최성민 시사교양1국장, 이상헌 시사교양2국장이 임명됐다. 박민 KBS 사장은 지난해 11월 취임 직후 대규모 인사를 단행했지만, 임명동의제 대상인 이 5개 국장 자리는 비워뒀다. KBS 사측과 노조의 단체협약에 따르면, 주요 5개 국장은 언론노조 KBS본부 조합원의 과반 투표와 과반 찬성을 받아야 하는데, 이를 넘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KBS 사측은 임명동의제 폐지를 요구해오다 끝내 단체협약을 무시하고 임명 강행을 택한 것이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박상현 KBS본부 지역부본부장은 과거 '대통령 KBS라디오 주례 연설' 사태에 빗대어 임명동의제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그는 "과거 KBS는 노무현 정부가 대통령 주례 연설을 제안했을 땐 거부할 수 있었지만, 이명박 씨가 대통령이 되자 갑자기 KBS라디오를 타고 매주 아침 전국에 주례 연설이 퍼져나갔다"며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KBS 내부에 조력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방송장악에 맞서 권력의 조력자를 걸러내고 그 사람들이 주요 결정권자가 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임명동의제"라고 강조했다.

KBS 사측은 임명동의제가 사장의 인사권과 경영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연대발언에 나선 고한석 언론노조 YTN 지부장은 "단체협약은 인사권을 존중하는 게 아니라 노동자의 권리와 공정방송을 위해 인사권을 일부 제한하는 것"이라며 "인사권은 헌법 어디에도 없지만, 언론자유와 노동 3권은 헌법에 보장되어 있다. 이 핵심조건이 바로 임명동의제"라고 말했다.

방송사 최초로 임명동의제를 도입한 SBS의 노조 대표도 KBS를 비판했다. 정형택 언론노조 SBS본부장은 "SBS도 3년 전 임명동의제를 후퇴시키려는 사측의 시도가 있었지만, 임명 대상을 국장급으로 낮추자는 것이었는데, 박민 사장은 아예 임명동의제를 없애자고 한다"며 "퇴행만 반복하는 이 정권을 보니 참담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KBS본부는 사측의 임명동의제 무력화에 법적 대응과 함께 조합원을 대상으로 5개 국장 임명동의 투표를 진행할 예정이다.

KBS 사측은 이번 임명동의제 논란에 대해 "임명동의제는 지명된 국장이 노조 조합원의 동의를 얻지 못할 경우 사장은 지명을 철회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는 인사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것"이라며 "현행대로 하면 인사규정에서 정하지 않은 방식으로 직원을 임면하는 것으로 이는 인사규정, 정관, 방송법을 순차적으로 위반하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KBS 내부 설문조사서 97.5% '제작자율성 후퇴'

한편 KBS본부는 전날인 30일 조합원 1,03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박민 사장 취임 50일을 맞아 지난 22일부터 26일까지 진행된 이번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97.5%가 '박민 사장 취임 이후 제작자율성과 독립성'이 후퇴했다고 답했다.(매우 그렇지 않다 78.7%, 그렇지 않은 편이다 18.8%) 또, '수신료 분리고지, 보도시사 프로그램 신뢰도 등의 상황을 볼 때, 현재 KBS 상황을 어떻게 보나'라는 질문에는 응답자의 88.1%가 나빠졌다고 대답했다.(매우 나빠졌다 70.7%, 나빠졌다 17.4%)

가장 심각한 문제를 꼽으라는 질문에는 △수신료 분리 고지 대응 부실(36.0%) △보도시사 프로그램 신뢰 추락(28.4%) △인사 시스템 붕괴(18.7%) △제작 자율성 침해(16.9%) 순으로 답했다.

KBS본부는 "두 달이라는 짧지 않은 이 기간 동안 구성원들이 목도한 낙하산 박 사장의 경영 능력 및 인사는 어디에서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수준이다"며 "만약 이번 설문 조사 결과를 보고도 지금껏 해왔던 대로 막장 인사, 부실 경영을 할 거라면, 자신의 깜냥을 인정하고 그만 그 자리에서 내려오라"고 했다.

언론노조 KBS본부가 조합원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결과
언론노조 KBS본부가 조합원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결과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