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 수난의 역사⑤ 박근혜 정부와 촛불혁명, 그리고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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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의 하수인 노릇한 공영방송...촛불집회선 "언론도 공범"
기자·PD들의 엘리트의식이 언론개혁의 걸림돌

2016년 11월 19일 부산 부산진구 서면 쥬디스태화 앞에서 열린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이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촛불집회 사진공동취재단

“촛불혁명은 우리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었다. 개혁이 좌초하고 다시 적폐세력이 득세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상상하기 싫은 파국이 예상된다. 그들이 강요한 ‘좌우 프레임’과 ‘종북 프레임’을 압도할 ‘평화와 상생’의 패러다임을 세우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할 때다. 다시는, 다시는, 다시는, 다시는, 다시는 적폐세력이 돌아오지 못하도록…”

2017년, 6월항쟁 30년과 언론운동 30년을 정리한 글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이명박·박근혜 시절의 공영방송 유린이 얼마나 끔찍했으면 ‘다시는’이란 말을 다섯 번이나 되풀이했을까. 그로부터 5년 남짓, ‘그들’이 돌아왔다. 그리고 ‘상상하기 싫은 파국’이 펼쳐지고 있다. 그 파국의 끝이 어디일지 가늠조차 하기 어렵다.

공영방송의 수난은 왜 끊이지 않는 걸까? 특히 ‘국가기간 공영방송’ KBS의 독립성은 왜 끊임없이 위협받는 것일까? 이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공영방송 수난의 역사를 살펴보고자 한다.

KBS 시청료거부운동와 6월 항쟁
노태우 정부의 방송구조개편과 방송인의 저항
문민정부·국민의 정부·참여정부와 공영방송
MB정부의 방송장악과 저항
박근혜 정부와 촛불혁명, 그리고 방송
⑥ 에필로그 : 2023년, 방송은 어디로 갈 것인가

[PD저널=이채훈 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전 MBC PD] 2008년, 이명박 대통령 취임을 보며 “이미 황폐해진 땅에서 썩은 꽃이 피어났다”고 개탄한 게 기억난다. 김대중·노무현 집권 10년 동안 자본의 지배는 강화된 반면, 공영방송의 체질 개선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다. 개혁에 소홀했던 공영방송은 수구 정권의 역풍 앞에 무력했다. 이명박·박근혜 집권 기간은 공영방송이 파괴되어 주저앉은 암흑기였다. 정부의 실정을 비판하고 견제할 국민의 목소리는 공영방송에서 찾기 힘들어졌다.

KBS는 이병순-김인규-길환영-조대현-고대영이 정권의 하수인 노릇을 했다. 이명박의 첫 번째 아바타 이병순은 KBS 내의 양심세력들을 지역총국과 비제작부서로 쫓아내고 <미디어포커스>, <생방송 시사투나잇>을 폐지했다. 김인규는 “KBS에서 PD 300명 들어내도 문제없다”고 호언한 뒤 <추적60분>을 보도본부로 강제이관하여 고사시키려 했다. 길환영은 <다큐극장>을 신설하여 박정희 찬양을 일삼다가 2014년 세월호 보도에서 청와대의 눈치를 보며 갈팡질팡하다가 사임했다.

조대현은 일베 기자를 채용하고 이승만 보도 관련 징계성 인사를 강행하여 뉴라이트 이사장에게 충성을 맹세했고 <국민대합창, 나는 대한민국> 프로젝트로 박근혜의 호감을 사려고 했지만 연임에 실패했다. 고대영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보도에서 특종을 고의로 낙종시켰고, 대선보도에서 뚜렷한 편파보도를 일삼아 사원들 88%의 불신임을 받았다. 그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인 2018년 1월 △KBS 신뢰도·영향력 추락 △방송법 위반 인사 남발 △파업 사태 초래 등 8가지 이유로 해임됐지만, 2023년 6월 대법원에서 해임무효판결을 받았다. 강규형 이사의 해임이 적법하지 않았으므로, 그 이후 이사회가 내린 고대영 사장 해임 결정도 무효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KBS를 청와대에 헌납하고 자본에 굴종한 고대영 사장의 임기를 지켜주어야 하는가?”라는 반론은 여전히 유효하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KBS새노조) 조합원들이 2017년 12월 15일 비리이사 해임을 위한 방통위의 빠른 조치를 촉구하며 시작한 240시간의 릴레이 발언을 마무리했다. ⓒPD저널

MBC 상황은 더 심각했다. MBC 노조는 2012년 김재철 퇴진을 요구하며 170일 결연히 파업을 벌였지만 실패했다. 이 과정에서 정영하 위원장과 최승호·강지웅 PD, 박성제·박성호·이용마 기자가 해직됐다. 특히 이용마 기자는 해직 이후 복막암이 생겼고, 투병 생활 끝에 2019년 8월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MBC의 내부 갈등은 ‘한국전쟁의 축소판’과 같았다. MBC 부역자들은 문재인 대통령을 ‘공산주의자’로 매도했던 고영주 이사장의 비호를 받으며 “MBC의 유전자를 바꾸겠다”고 공언했다. 김재철은 파업에 동참한 기자·PD·아나운서 200명을 제작과 관계없는 부서로 유배시킨 뒤 고분고분한 대체인력으로 방송을 사유화했다. 이진숙 당시 MBC 기획홍보본부장은 실제로 MBC 민영화를 추진하려는 행보가 언론에 포착되기도 했다.

2016년 10월부터 2017년 4월까지 이어진 촛불 집회에서 MBC 취재진은 시민들의 욕을 먹으며 쫓겨나는 지경에 이르렀다. MBC 김장겸은 2017년, 사내에서 퇴진을 요구한 김민식 PD를 대기발령하고, ‘탄핵’ 다큐를 제작하던 이정식PD를 유배하고, ‘6월항쟁’ 다큐를 제작하던 김만진 PD를 징계하고, 사내 게시판에 줄줄이 올라오는 퇴진 요구 성명을 삭제하는 등 언론탄압과 방송장악의 희생양 코스프레를 한 채 극우 세력의 지원을 업고 개혁에 저항했다. MBC 경영진의 이러한 행태에 대해 이근행 PD는 “연쇄살인범이 피 뚝뚝 떨어지는 칼을 든 채 피해자의 안방에 앉아 ‘나를 처벌하려는 사람들이 바로 살인자’라고 주장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시기, MBC가 입은 상처는 깊고 아팠다. 구성원 내부의 감정적 앙금은 돌이키기 어렵게 악화됐고, 한창 일할 기자와 PD들을 제작 현장에서 배제한 결과 MBC의 제작 역량은 작지 않은 타격을 입었다. 넷플릭스와 유튜브가 대중화되면서 공영방송의 위상은 상대적으로 더 추락했다. MBC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군소방송으로 전락했다”는 자조의 소리까지 들렸다.

MBC 노조원들이 지난 11월 8일 오전 방송문화진흥회 임시 이사회가 열리는 서울 여의도 율촌빌딩 앞에서 김장겸 사장 해임 촉구 구호를 외치고 있다출처 : PD저널(http://www.pdjournal.com)
MBC 노조원들이 2017년 11월 8일 오전 방송문화진흥회 임시 이사회가 열리는 서울 여의도 율촌빌딩 앞에서 김장겸 사장 해임 촉구 구호를 외치고 있다 ⓒPD저널

2011년 이명박 정부의 특혜 속에 TV조선, 채널A, JTBC, MBN 등 4개의 종편 채널이 탄생함으로써 한국 방송의 지옥도가 완성됐다. 막말, 혐오표현, 가짜뉴스가 TV에서 여과없이 난무하는 세상이 됐다. 2012년 “5.18 당시 북한군이 광주에 나타났다”는 TV조선과 채널A가 생산한 대표적인 가짜뉴스로, 일부 탈북자들과 극우 논객 지만원의 허황된 주장을 여과없이 방송한 사례다. 정당한 표현의 자유는 100% 인정해야 하겠지만, 가짜뉴스와 혐오표현에 대해서는 법적 규제장치 마련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일어났다. 이명박 정부의 민간인 불법사찰과 국정원 댓글공작 속에서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종편 탄생으로 확고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은 박근혜 당선에 큰 몫을 했다. 박근혜 정부의 비호 아래 KBS와 MBC 경영진은 맘껏 방송을 사유화했고, 그 어둠 속에서 세월호 피해자에 대한 모욕과 왜곡, 블랙리스트를 통한 차별과 배제, 그리고 국정농단이 아무 거리낌없이 자행됐다.

이 과정에서 두드러지게 활약한 사람은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그리고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이었다. 최시중은 종편 출범을 주도했고 이동관은 방송, 언론 사찰과 조작을 지휘했다. 특히 이동관은 ‘국정원 문건’을 통해 방송사 간부와 프로그램 진행자 교체, 프로그램 논조 및 수위 통제 등 깨알같이 방송 현안에 간섭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런 인물이 2023년 8월 방송통신위원장으로 돌아온 것은 글자 그대로 ‘방송통신위원회의 죽음’이자 공영방송 파괴의 신호탄에 다름 아니다.

이 시기 공영방송이 제 구실을 했다면 국정농단과 탄핵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촛불혁명은 어떤 의미에서는 언론혁명이라 할 수 있다. 강고한 기득권 카르텔을 깬 것은 언론이었다. 물론 TV조선과 청와대의 갈등에서 첫 균열이 생겼지만 이어진 한겨레와 JTBC의 보도는 언론의 정도를 보여주었다, 손석희가 이끄는 JTBC가 온갖 모략과 협박을 꿋꿋이 버티고 올바른 보도를 한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촛불혁명은 결국 공영방송 KBS와 MBC를 바로 세우는 과제를 남겨둔 채 마무리됐다.

이명박·박근혜 시기의 방송장악은 다른 사회 이슈들과 따로 떨어져서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재벌, 검찰·경찰·국정원, 군부, 대학 등 이 사회 곳곳의 퇴행과 뗄 수 없이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촛불집회에서 “언론도 공범”이라는 구호가 나온 것은, 언론이 이 사회의 모든 문제를 가리고 있기 때문에 적폐가 눈덩이처럼 커졌다는 지적이었다. 촛불이 제기한 과제는 한반도 비핵화, 기후위기 대처, 빈부격차 해소, 비정규직 극소화, 기본소득제 도입 등 상생과 평화의 실현이었다. 그러나 촛불의 등에 올라타서 집권한 문재인 정부는 이 모든 과제를 추진하기에는 턱없이 무기력하고 무능력했다.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자원외교, 원전 비리는 물론 박근혜 정부에서 일어난 세월호 참사의 진상부터 국정농단의 어두운 그늘까지,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파헤치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이들에게 문제의식 자체가 있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2016년 11월 16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언론노조 관계자들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특검 시 관계된 언론사 간부를 포함해 조사할 것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은 공영방송 사장 선임에서 정치권의 입김을 배제할 수 있는 대안으로 제시된 ‘공영방송 장악금지법’을 스스로 무산시켜 버렸다. 사장 임명 시 특별다수제를 도입하기로 한 이 법안은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여야가 모처럼 합의한 대안이었는데 없었던 일이 되고 말핬다. 문 대통령은 고 이용마 기자와의 약속 '공영방송의 독립을 보장하는 입법을 하겠다'를 지키지 않았다. 지금 이대로 편리한데 굳이 고칠 필요를 느끼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180석의 거대여당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모습을 되풀이하자 국민들은 2022년 대선에서 투표로 이들을 심판했다. 야당으로 전락한 민주당은 시민사회단체의 참여를 보장하는 새로운 방송법 개정안을 내밀었는데, ‘방송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꼼수’라는 수구 정당의 반발에 부딛쳐서 결국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어떤 개혁법안을 내밀어도 윤 대통령의 거부권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한 푸념이 그들의 도피처였다.

방송사 구성원들의 역량도 미흡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한국PD연합회는 2017년 가을, ‘촛불혁명과 PD연합회의 미래’를 주제로 좌담회를 개최했는데, 충격적인 발언이 나왔다. 좌담회에 참여한 MBC 오행운 PD는 “지금 대한민국에서 제일 욕을 많이 먹는 집단이 검찰과 방송사다. 두 집단은 도제 시스템에 의해 후배를 양성해 왔고 내부 적폐에 지속적으로 눈감아 왔다는 유사점이 있다”고 했다. 검찰과 PD집단이 비슷하다니! 그는 덧붙였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유명한 PD들도 방송이 안 나갔다는 이유로 작가, 프리랜서들에게 돈 안 주며, ‘이게 회사 방침이자 시스템’이라고만 한다. 이런 문제를 앞장서서 싸워주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 기자·PD들의 엘리트 의식과 집단이기주의가 언론개혁 내부의 걸림돌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자사이기주의는 1990년 KBS 사태부터 2012년 MBC 파업까지 꾸준히 모습을 드러냈다. 1990년, KBS비대위와 MBC노조 집행부는 ‘조합원 정서’를 이유로 연대투쟁에 미온적이었다. MBC노조는 2012년 170일 파업이 엄청난 희생과 수난이었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같은 해 국민일보 노조가 세습 종교권력에 맞서 170일 동안 힘겹게 파업한 사실을 기억하는 MBC 노조원이 몇 명이나 될까? MBC노조는 당시 쌍용차 조합원들과 함께 여의도에서 대한문까지 가두행진을 벌일 예정이었는데, 역시 ‘조합원 정서’를 이유로 행진을 취소했다. MBC노조와 쌍용차노조는 부당한 권력의 횡포에 맞서 싸우는 공동운명체인데도, MBC노조는 엘리트주의를 은근히 앞세우며 연대를 거부한 것이다. 이러한 협소한 시각은 이제 곧 닥쳐올 공영방송 파괴의 폭풍우 앞에서 공영방송 스스로의 발목을 잡는 족쇄로 작용할 위험이 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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