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 수난의 역사⑥ 2023년, 방송은 어디로 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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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차’와 이동관 체제, 그 폭주의 종착점은?
회복 어려운 공영방송 파괴, 우리의 대응책은?

이동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PD저널=엄재희 기자] “촛불혁명은 우리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었다. 개혁이 좌초하고 다시 적폐세력이 득세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상상하기 싫은 파국이 예상된다. 그들이 강요한 ‘좌우 프레임’과 ‘종북 프레임’을 압도할 ‘평화와 상생’의 패러다임을 세우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할 때다. 다시는, 다시는, 다시는, 다시는, 다시는 적폐세력이 돌아오지 못하도록…”

2017년, 6월항쟁 30년과 언론운동 30년을 정리한 글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이명박·박근혜 시절의 공영방송 유린이 얼마나 끔찍했으면 ‘다시는’이란 말을 다섯 번이나 되풀이했을까. 그로부터 5년 남짓, ‘그들’이 돌아왔다. 그리고 ‘상상하기 싫은 파국’이 펼쳐지고 있다. 그 파국의 끝이 어디일지 가늠조차 하기 어렵다. 공영방송의 수난은 왜 끊이지 않는 걸까? 특히 ‘국가기간 공영방송’ KBS의 독립성은 왜 끊임없이 위협받는 것일까? 이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공영방송 수난의 역사를 살펴보고자 한다.

① KBS 시청료거부운동와 6월 항쟁
② 노태우 정부의 방송구조개편과 방송인의 저항
③ 문민정부·국민의 정부·참여정부와 공영방송
④ MB정부의 방송장악과 저항
⑤ 박근혜 정부와 촛불혁명, 그리고 방송
⑥ 에필로그 : 2023년, 방송은 어디로 갈 것인가

[PD저널=이채훈 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전 MBC PD] 작년 가을, 한 고등학생이 그린 캐리커처 <윤석열차>가 검열의 도마에 올랐다. 1년이 지난 지금 상황을 보면 이 캐리커처의 메시지가 전혀 과장이 아니었음을 실감하게 된다. 윤석열 정부의 공영방송 장악 행보는 그야말로 브레이크 풀린 폭주 기관차와 다름아니다. 이 기관차를 멈춰 세울 방법이 안 보이니 사람들은 할 말을 잊은 채 발을 동동 구를 뿐이다.

“언론이 24시간 정부 욕만 한다.” “후쿠시마 오염수 관련 1 더하기 1을 100이라 하는 세력과는 싸울 수밖에 없다.” 대통령의 품격과 거리가 먼 이 발언은 성난 기관차의 엔진 소리처럼 듣는 이를 심란하게 한다. TV수신료 분리고지라는 황당한 조치는 이 기관차가 폭주 끝에 탈선해 버린 게 아닌지 의심케 한다.

이 정부는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대미/대일 종속 외교로 전쟁 위기를 자초한 것도 모자라 낡아빠진 이념 논쟁으로 국민을 분열시킨다. 홍범도 장군 흉상을 육사에서 철거하고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반대의 목소리를 북한 지령에 따른 것으로 매도하는 황당한 일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벌어진다. 시대착오적인 이념논쟁과 마녀사냥은 방송계로 번질 조짐이다. 이동관 방통위원장 지명자의 ‘공산당’ 발언 “우리는 과거 선전, 선동을 굉장히 능수능란하게 하던 공산당 신문이나 방송을 언론이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공영방송 파괴를 합리화하는 이념적 토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제23 전국학생만화공모전 카툰 부문 금상 수상작 '윤석열차'

이동관 방통위원장은 논란이 된 김만배 씨 인터뷰를 “가짜뉴스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기문란 행위”로 규정했고, 인터뷰를 업로드한 독립언론 <뉴스타파>를 겨냥 ‘원스트라이크 아웃’ 제도 도입을 언급했다. 이에 호응하여 방송통신심의위는 인터뷰를 인용 보도한 공영방송 뉴스 약 70건을 ‘긴급 심의’ 안건으로 올려서 제재를 벼르고 있다. 신학림 씨가 위원장으로 재직했던 언론노조를 향해 공격의 화살을 돌리는 건 물론이다. 조선일보 등 수구 언론이 앞장서서 정권의 이데올로그 노릇을 하는 건 예나제나 다름없다.

이제 KBS, MBC 사장 교체가 눈앞에 있다. 이를 위한 사전정지작업으로 방통위는 KBS이사회와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를 물갈이했는데, 이 작업은 정원 5명인 방통위원 중 3명뿐인 김효재 체제에서 여권 위원 2명의 찬성으로 이뤄졌고, 이동관의 제6기 방통위에서 여권 위원 2명의 의결로 마무리될 전망이다. 절차상 하자가 빤히 보이는데도 검찰 정권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사실을 이 법기술자들이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사법부는? 공영방송 파괴에 브레이크를 거는 법적 해결책은 KBS이사회와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에 대한 해임효력정지 가처분 소송뿐이다. 2008년 정연주 사장 해임과 2017년 고대영 사장 해임이 무효라는 대법원 판례를 고려하면 이번에 KBS 김의철, MBC 안형준 사장을 해임할 경우 본안 소송에서 해임무효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를 위한 사전정지작업인 KBS이사장과 방문진 이사장의 교체 자체를 백지화하여 소모적인 논란을 예방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소송을 담당하는 행정법원은 정부의 방침을 추인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가처분 인용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한다. “옳은 건 옳다” 하고 “그른 건 그르다” 하는 추상같은 원칙을 사법부에게 기대할 수 없고, 따라서 모든 판결이 ‘복불복’이란 점은 통탄할 일이다. 이 사회의 상식과 양심의 마지막 보루가 되어야 할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없는 건 강고한 ‘법조 카르텔’ 때문인데, ‘이권 카르텔 해체’를 외치는 이 정부는 ‘법조 카르텔’의 병폐에 대해서 입도 뻥긋하지 않는다.

정치권에도 기대를 걸 수 없긴 마찬가지다. 이태원 참사의 진상규명이든 채 상병 순직의 책임 규명이든 양평 고속도로 특혜 의혹이든 시시비비를 따져야 할 중대한 의혹이 제기되면 여당은 오리발을 내밀면서 여야 정쟁으로 변질시킨다. 진실은 뒷전으로 사라지고 결론 없는 정쟁이 반복되면 국민의 정치 혐오가 증폭된다. 정치 혐오는 낮은 투표율로 귀결되고, 여기서 반사이익을 얻는 건 언제나 거짓을 일삼는 집단이다. 압도적 다수인 야당은 무기력하게 끌려다닐 뿐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8월 2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인사를 나누고 있다.

이런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현실에는 언론의 책임이 크다. 언론은 ‘단 하나’인 진실에 접근하기 위해 ‘한 걸음 더’ 깊이 취재하는 대신, 여야 정쟁을 중계하듯 보도하면서 거짓 세력에게 면죄부를 주곤 한다. 물론 일부 탐사 프로그램과 시사 프로그램에서 진실을 추구하지만, 정보 접근이 어렵기 때문에 의혹 제기 수준에 머물기 십상이다. 이 정부가 공영방송을 장악하면 그나마 존재하는 이런 프로그램들의 숨통을 제일 먼저 끊어버리려 들 것이다. 공영방송에서 진실 추구의 역할을 거세해 버리면 우리 사회의 병리 현상들은 안으로 곪아 터질 것이다.

KBS와 MBC에 애정을 갖고 살리려는 사람이 아니라 적대감을 갖고 파괴하려는 사람이 사장으로 올 거라는 예측은 불길하다. KBS와 MBC 앞에서 극우 유튜버들이 시위를 벌여서 흉흉한 분위기를 연출해 왔다. 지난해, 강승규 시민사회수석은 극우 유튜버와 전화 통화에서 MBC를 ‘매국언론’으로 규정하고 “우파 시민들 총동원하여 시위를 해야 한다”고 부추긴 바 있다. 최근 극우 단체의 활동은 점점 더 극렬해지는 양상이다. 300만 회원을 가진 자유총연맹은 최소 내년 총선까지 극우 유튜버들을 앞세워서 이념 공격을 강화할 조짐이다. 공영방송은 이 공격의 주요 타깃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공영방송 장악에 대한 조직적인 저항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에서 독재에 대항하며 언론민주화를 외치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조직적인 대응이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합법’의 외양을 한 ‘유사 파시즘’을 대중이 인식하고 저항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공영방송 장악은 우선 KBS와 MBC 사장 교체, 주요 시사 프로그램의 기자 · PD · 진행자 물갈이의 순서로 진행될 것이다. 이동관 방통위원장은 ‘단순한 리모델링 수준’이 아니라 ‘근본적인 구조개혁’ 수준으로 공영방송을 뜯어고치겠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KBS 2TV와 MBC 민영화는 물론 방송광고진흥공사 해체까지 밀어붙일 게 예상된다. 이는 광고결합판매에 의존해 온 일부 종교방송과 특수방송의 생존까지 위협할 것이다. 이동관 씨가 말하는 ‘구조개혁’은 “공영방송의 최소한의 역할만 두고 시장에 맡기겠다는” 대통령의 의중과 일치하는 것으로 보인다. KBS와 MBC 뿐 아니라 YTN, TBS도 거센 풍파에 휩싸여 있다. 한전KDN과 한국마사회는 YTN 보유 주식 공동 매각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TBS는 서울시의 지원조례 폐지 및 출연금 삭감을 견뎌내기 위해 스스로 임금을 20% 반납한 채 자구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TBS 구성원들은 ‘고난의 행군’을 연상시키는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아직 뚜렷한 전망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 폭주 기관차를 멈춰 세울 방법은 무엇일까? 언론운동에도 이른바 ‘각자도생’의 원칙이 지배하는 시대다. 무책임, 무관심, 무감각을 개탄하는 소리가 들리지만, 자본의 지배가 일상의 구석까지 스며든 지금, 저마다 생존을 도모하기에 급급하여 전면적인 저항에 나서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보는 게 맞을 듯하다. 그럼에도 방송인들의 저항은 불가피할 것이다. 방송 노조의 파업이 일어난다면 – 그게 바람직할지 아닐지 판단하기 어렵지만 - 내년 총선 직전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어느 경우든 내년 총선이 변곡점이 될 거라는 진단은 설득력이 있다. 공영방송 구성원들은 꿋꿋하게 버텨야 한다. 시민들의 응원은 과거처럼 뜨겁지는 않겠지만, 이 정부의 폭주를 언제까지나 침묵하며 지켜보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 정권은 임기를 채울 수 있을까? 공영방송 장악이 오히려 역풍이 되어 정권의 종말을 앞당기지 않을까? ‘윤석열차’는 대다수 국민이 예기치 못한 곳에서 균열을 일으키며 멈춰 설지도 모른다. 언론이 침묵하면 거리의 돌들이 일어나서 외칠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7월 28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열린 '이동관 대통령 대회협력특별보좌관 방송통신위원장 지명 규탄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방송인들이 공영방송 독립의 깃발을 올린 것은 1987년 6월항쟁 직후였다. 그로부터 36년, PD연합회 또한 공영방송 독립을 위해 작은 목소리를 보태려고 노력해 왔다. 그 사이 정치가 굴곡을 겪어 왔고, 미디어 생태계가 변화해 왔고, 한류의 힘이 용솟음쳤고, 무엇보다 자본의 지배가 꾸준히 강화돼 왔다. 지금 이 사회는 침몰하는 배 위에서 출구가 안 보이는 싸움에 휘말려 있는 모양새다. 전례 없는 공영방송 파괴, 그 종착역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이 정부의 뜻이 전부 관철될지는 미지수다. KBS 2TV와 MBC를 민간 자본에 넘겨서 ‘종합편성 채널’처럼 만들어 버리면 원상회복이 쉽지 않을 것이다.

공영방송 독립의 깃발을 내릴 수는 없다. 폐허 위에서 완전히 새롭게 출발해야 할지도 모른다. 지난 36년 동안 세상은 엄청나게 변화했다.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새로운 공영방송은 지금의 공영방송과 달라야만 한다. 정치권의 압력에서 독립된 진정한 공영방송을 세우려면 지금보다 훨씬 더 강한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한 전면적 쇄신이 필요하다. 뉴스를 비롯한 모든 프로그램의 환골탈태에는 한 단계 높은 제작 역량과 도덕 수준, 치열한 사명감이 요구된다. 해결의 출구가 보이지 않는 이 나라 정치권의 진영 싸움(그것을 ‘적대적 공생’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 악순환을 끊고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역할을 해낼 수 있는 것은 공영방송뿐이다. 이게 실현 가능한 꿈일까? “우리 국민은 이 나라의 정치, 사회, 문화 수준에 걸맞은 공영방송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게 좀 더 현실적인 얘기인 것 같긴 하다. (연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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