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 수난의 역사④ MB정부의 방송장악과 저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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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전에도 같은 방식으로 방송장악...되풀이되는 역사

MBC 이근행 PD

“촛불혁명은 우리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었다. 개혁이 좌초하고 다시 적폐세력이 득세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상상하기 싫은 파국이 예상된다. 그들이 강요한 ‘좌우 프레임’과 ‘종북 프레임’을 압도할 ‘평화와 상생’의 패러다임을 세우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할 때다. 다시는, 다시는, 다시는, 다시는, 다시는 적폐세력이 돌아오지 못하도록…”

2017년, 6월항쟁 30년과 언론운동 30년을 정리한 글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이명박·박근혜 시절의 공영방송 유린이 얼마나 끔찍했으면 ‘다시는’이란 말을 다섯 번이나 되풀이했을까. 그로부터 5년 남짓, ‘그들’이 돌아왔다. 그리고 ‘상상하기 싫은 파국’이 펼쳐지고 있다. 그 파국의 끝이 어디일지 가늠조차 하기 어렵다.

왜 이 지경이 됐는지는 굳이 따지고 싶지 않다. 속 시원한 처방을 내놓을 능력도 아직은 없다. 공영방송의 수난은 왜 끊이지 않는 걸까? 특히 ‘국가기간 공영방송’ KBS의 독립성은 왜 끊임없이 위협받는 것일까? 이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공영방송 수난의 역사를 살펴보고자 한다.

① KBS 시청료거부운동와 6월 항쟁
② 노태우 정부의 방송구조개편과 방송인의 저항
③ 문민정부·국민의 정부·참여정부와 공영방송
④ MB정부의 방송장악과 저항
⑤ 박근혜 정부와 촛불혁명, 그리고 방송
⑥ 에필로그 : 2023년, 방송은 어디로 갈 것인가

[PD저널=이채훈 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전 MBC PD] 그들은 김대중과 노무현 집권 10년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불렀다. 뭘 잃어버렸을까? ‘기득권’이었다. ‘기득권’을 되찾기 위한 그들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염치도 예의도 없었다. 최우선 타깃은 KBS였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직후 한나라당은 “이전 정권에서 임명된 자들은 새 정권과 철학이 맞지 않으니 모두 사퇴하라”고 성토하면서 KBS 정연주 사장을 퇴출 1순위로 꼽았다. 정 사장이 사퇴를 거부하자 감사원이 나서서 정 사장과 KBS를 탈탈 털었고, 이렇다 할 혐의가 없자 2005년 국세청과의 세금 소송에서 KBS가 법원의 조정에 따라 556억원을 돌려받은 게 배임이라고 우겼다. 감사원은 정 사장을 검찰에 고발했고, 검찰은 수사에 착수했다. 극우 단체가 정연주 사장 자택 앞에서 위협적인 시위를 벌였다. 검찰의 소환에 정 사장이 불응하자 감사원이 KBS 이사회에 정 사장 해임을 요구했다. KBS 이사회는 8월 8일 정 사장 해임안을 의결했고, 다음 날 해외에서 돌아온 이명박은 여기에 서명했다. ‘KBS 사원행동’이 부당함을 역설하며 저항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이때 ‘임명권’을 ‘임면권’이라고 주장했고, 법원은 이 주장을 추인했다. 해임 다음 날, 검찰은 자택에서 정 사장을 체포하여 모욕을 가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김금수 KBS 이사장을 협박하여 사퇴시키고 극우 인사로 변모한 유재천 교수를 이사장에 임명했다. 이어서, 정연주 사장 해임에 반대하던 신태섭 이사를 동의대에서 해임한 뒤 이를 이유로 KBS 이사직을 박탈했다. 정연주 사장을 표결로 쫓아내기 위해 온갖 억지를 동원, 이사회를 물갈이한 것이다. 신태섭 이사는 2009년 11월 해임무효소송에서 승소했지만 이미 상황이 끝난 뒤였다. 정연주 사장도 2012년 배임 혐의에 대한 무죄 판결을 받은 뒤 해임무효소송에서 승소했다. 그러나 이미 4년이나 흐른 뒤였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말이 실감나는 일이었다.

2008년 8월 방송장악네티즌탄압저지범국민행동 회원 등이 KBS 여의도본관 앞에서 KBS 이사회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가 밀어붙이고 있는 방송장악은 2008년 이명박 정부가 KBS를 장악한 과정과 똑같다. 검찰과 감사원 등 국가기관을 총동원하고, 온갖 억지 논리로 이사회를 물갈이한 뒤 결국 사장 교체를 노리는 것이다. 역사는 되풀이되고 있다. 정연주 사장은 방송통신심의위원장으로 잔여 임기가 1년 남아 있지만, 지난 8월 16일 윤석열 정부에 의해 이렇다 할 사유도 없이 해임됐다. 정연주 위원장은 “무도한 윤석열 대통령 집단과 다시 싸우겠다”고 밝혔다.

2008년, 이명박은 YTN에 낙하산 사장 구본홍을 임명했고, YTN 구성원들은 출근저지로 맞섰다. 정부는 구본홍과 뒤를 이은 배석규 사장을 앞세워 노종면, 현덕수, 조승호, 우장균, 권석재, 정유신 등 6명의 기자를 해고한 끝에 간신히 YTN을 장악했다. 최근 정연주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의 후임으로 위촉된 류희림은 이명박 정부 시절 YTN 해직사태가 벌어질 때 경영기획실장, 즉 인사 담당자였다.

MBC는 눈엣가시였지만 다루기 까다로운 방송사였다. <PD수첩>이 제기한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의혹’은 2008년 광장을 촛불로 달구었다. <PD수첩>의 김보슬, 이춘근, 조능희, 송일준 PD와 김은희 작가가 검찰의 보복 수사를 받았다. 최승호 PD는 이런 조건에서도 4대강 의혹과 검찰 비리를 끈질기게 파헤쳤다. 팽팽한 대치 상태가 1년가량 지속된 뒤 2009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가 교체됐고 이때부터 본격적인 MBC 장악이 시작됐다. 정권은 임기가 1년 남은 엄기영 사장의 자진사퇴를 유도한 뒤 고분고분한 김재철을 새 사장으로 임명했다. 김재철은 처음에는 사원들의 자발적인 협조를 기대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그는 “청와대에서 조인트를 까인” 뒤 폭압적으로 돌변했다. 김제동, 김미화, 김종배 등을 방송에서 퇴출시켰고, 최승호와 한학수 등 유능한 PD를 프로그램에서 배제했고, 손석희 앵커가 MBC를 떠나도록 압박했다. 2010년 MBC 노동조합은 39일 파업으로 저항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다. 이때 해고된 이근행 위원장은 <뉴스타파>의 창립을 주도하며 방송을 이어갔다.

2008년 12월 26일 오전 10시 여의도 MBC 방송센터 1층에서 600명 이상의 MBC 조합원들이 모여 총파업 출정식을 열었다 ⓒPD저널

이 지점에서 KBS와 MBC에 대한 ‘언어의 혼란’을 짚고 넘어가자. “공영방송을 민주당이 장악해 왔다”는 주장은 착시 현상을 일으켜 국힘당의 방송장악을 합리화하는 논리로 악용됐다. “공영방송이 아니라 노영방송”이라는 프레임은 “노조의 손에서 국민의 품으로”라는 괴상한 구호로 발전하면서 이들의 폭압적인 방송장악에 동원됐다. 과연 맞는 말인가.

2009년 방문진 이사로 취임한 ‘뉴라이트’ 인사와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눈 기억이 있다. 서로 상대방이 ‘인간인지 아닌지’(?) 간을 보는 사적인 자리였다. 그는 주사파에서 ‘북한인권운동가’로 변신한 인물로, 나름 ‘좌파’와 ‘운동권’을 이해한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는 MBC를 ‘친노 좌파방송’이라고 부르며 “정권이 바뀌었으니 이제 MBC가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고 운을 떼었다. 나는 구체적인 예를 들며 “MBC는 노무현도 비판했다”고 반박했다. 돌아온 대답은? “MBC가 노무현 정권보다 더 좌파”라는 것이었다!

그의 태도를 국힘당(당시 한나라당) 전체의 입장으로 일반화하면 오류에 빠질 위험이 있다. 하지만, 그 집단의 경향성을 대략적으로 판단하는 데 참고할 수는 있다. 그의 발언은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먼저, 이념의 스펙트럼으로 MBC를 자리매김하는 것은 매우 편협하다. 더 중요한 것은, 공영방송과 관영방송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공영방송은 권력에서 자유로워야 하며, 특정 정파에 얽매이지 않고 다수 국민의 이익을 대변하는 스탠스를 취해야 한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공영방송을 주고받는 것은 공영방송을 선거의 전리품으로 간주하는 태도이며, 이는 KBS와 MBC를 권력의 하부기구인 관영방송으로 되돌리자는 말이나 다름없다. 이동관이 말한 ‘공산당 방송’이 바로 이것이다.

KBS와 MBC는 그냥 두면 친민주당 방송이니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아야 하며, 이게 ‘공영방송 정상화’라는 주장도 있다. 국힘당(한나라당, 새누리당도 마찬가지) 입장에서 그렇게 주장할 이유가 있다고 인정하더라도, 이 말은 공영방송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나온 부당한 주장이다. KBS와 MBC는 굉장히 다양한 개인들로 이뤄져 있다. 진보적인 사람도 있고, 보수적인 사람도 있다. 이들은 자기 신념에 따라 다양한 노조를 조직하여 자기 목소리를 낸다. 내 경험으로 판단하면 중도, 온건 리버럴이 가장 많고 양극단의 사람은 소수이다. 이 나라 정치 지형이 진보 대 보수가 아니라 리버럴 보수(민주당) 대 극우 보수(국힘당)로 나눠져 있다고 보면, 공영방송의 평균적인 스탠스는 민주당 쪽에 가깝게 보일 소지가 큰 게 사실이다. 좌와 우, 진보와 보수 사이에서 중립을 취하라면 어느 정도 말이 되지만, 리버럴 보수와 극우 보수 사이에서 중간 입장을 취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여와 야를 진보와 보수, 또는 좌와 우로 등치하는 프레임은 단순히 틀린 게 아니라 현실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낳을 수 있다. 여야의 중립이 진보와 보수, 좌와 우 사이의 중립으로 인식되면서 방송 공정성의 유일한 기준으로 둔갑하기 때문이다. 좀 더 래디컬한 시각에서 여와 야를 동시에 비판하는 게 진정한 공정성일 수 있다. 강준만 교수를 포함, 일부 학자들이 이 오류에 빠져서 국힘당의 방송장악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현실은 안타까운 일이다.

2008년 9월 9일 오후 10시 <대통령과의 대화> 생중계 현장인 KBS 안팎에는 이명박 정부의 언론장악을 비판하는 촛불이 켜졌다. KBS 사원행동 소속 사원 60여 명의 직원들은 KBS홀 앞에 모여 경호원과 대치했다 ⓒPD저널

‘노영방송’이란 프레임도 착시를 일으킨다. 방송사 구성원의 다수가 노조원이라면 노조원 출신인 사람이 사장에 임명되는 게 이상할 게 없다. 노조 위원장 출신이 사장으로 낙점되어 ‘노영방송’이란 비난의 빌미를 준 측면이 있는 게 사실이지만, 노조가 조직적으로 회사를 장악한 것은 아니다. 정치권의 입김을 원천적으로 배제할 수 있는 ‘사장 직선제’를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민주당 측에서는 굳이 방송을 장악하지 않아도 아쉬울 게 없다. 리버럴 보수의 속성상 폭압적으로 방송을 장악하려 드는 건 생리에 맞지 않을 수 있다. 반대로, 국힘당 측에서는 자기들 입맛에 맞게 방송을 길들이고 싶은 유혹을 떨치기 어렵다. TV조선과 채널A가 있는데도 욕심을 부리는 것이다. 그래서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운’ 어거지 방송장악을 시도하는 것이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후퇴일 뿐 아니라, 소모적인 갈등 끝에 결국 실패할 무리수일 가능성이 높다.

유시민은 최근 인터넷 언론 ‘민들레’에 기고한 글에 이렇게 썼다. “과연 KBS는 야당 편인가? 야당을 지지하는 나는 단 한번도 KBS가 우리 편이라고 느낀 적이 없다. 야당 정치인과 당원들은 다 그럴 것이다. 그렇다면 여당 편도 야당 편도 아니라는 점에서 KBS를 ‘국민의 방송’이라 하는 게 맞나? 아니다. 가끔 그렇게 보일 때가 있을 뿐이다. 그러면 KBS는 누구 것인가? KBS 임직원들 것이다.” (<내게 KBS는 무엇인가?> 2023. 8. 7. 민들레, 유시민의 관찰)

국힘당 시각에서는 유시민의 말이 얄미울 수 있다. KBS가 KBS 임직원들 것이니 “통나무 깎아서 젓가락 만들기“를 그만 두라는 건, 지금 야만적으로 진행되는 방송장악을 중단하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나는 유시민의 말이 대체로 맞다고 생각한다. ‘국민’이란 말이 너무 고생한다. 여당이 말하는 ‘국민’과 야당이 말하는 ‘국민’은 다르다. 공영방송 구성원들은 늘 ‘국민의 방송’을 추구한다고 말해 왔지만, 그 ‘국민’의 외연과 범위에 대해 한 번도 명료하게 정의해 본 적이 없다. 모두가 국민을 위한다는데 정작 대다수 국민들은 소외돼 있는 게 아닌지 다 함께 돌아볼 때다.

공영방송 개혁은 필요하다. 그러나 먼저 공영방송의 독립을 보장하는 게 순서다. 그러나 이 정부는 공영방송을 길들이고, 여의치 않으면 아예 폐기해 버리겠다는 무책임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 정부의 방송장악은 15년 전 이명박 정부와 똑같은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그 사이 세상이 바뀌었다. KBS, MBC 이사진을 물갈이하고, 정연주 방통심의위원장을 해촉하고, 결국 공영방송사 사장 교체까지 밀어붙인다 해도, 10여년  전 이동관의 행태를 되풀이하여 방송을 장악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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