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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현미 EBS PD (시네마천국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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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훗. 이유 없는 이 뿌듯한 기분.

일시불로 해 주세요.
샤샤샥. 멋지게 싸인 날려주고 터덜터덜 종이가방을 들고 나서는 이 만족감.

 

 늦은 밤 ‘섹스 앤 더 시티’ 그녀들은 칼럼 쓰고 홍보하고 얼마나 버는지는 모르지만 0넬, 0찌, 000똥 같은 명품들을 휘감고서는 뉴요커처럼 살라고 유혹한다. 오늘 산 것으로 성이 덜 찬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면서 다른 채널로 이동해 보지만 능력있는 여자라면, 멋진 주부라면, 잘 나가는 남자라면, 제대로 부모노릇 하려면 이것도 저것도 필요하다는 것 투성이다. 뭐 어쩔 도리 없이 텔레비전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잠이 든다. 꿈에 돼지라도 나오길 바라면서. 올해는 황금 돼지해라는데 이왕 나올 거면 누런 금돼지면 더 좋겠네. 꿀꺽.

 

 600년 만이라느니, 그게 아니고 60년이라느니, 황금 돼지해라느니, 그게 아니라 붉은 돼지에 가깝다느니 말이 많지만 2007년은 간만에 돌아오는 황금돼지해라고 이미 한참 전부터 신문, 방송은 부산을 떨어댔다. 일부러 올해에 맞춰 아이를 낳으려는 부모까지 있다는 소식에 황금 돼지해가 뭐가 그리 좋은가 들어봤더니 그 해 태어난 아이는 재물운이 많아 다복하게 산다나 어쩐다나. 욕심 많은 돼지의 이미지 앞에 황금 떡 붙여놓으니 뭔가 꼭 잘 들어맞는다. 음…

 

 누군가는 몇 년 전 어떤 카드 광고의 새해 인사가 ‘부자되세요’ 여서 놀랐다고 했지만 이제 새해에 더 부자되라는 말은 덕담 중의 최고의 덕담이다. 새해에 태어날 내 자식이 부자 될 거라고 하면 더 기분 좋은 것이야 말할 필요가 없겠지. 그래도 돈만 밝히는 세상에 상쾌하게 웃어줄 기분이 들지 않는 건 내 맘에 아직도 남은 쥐꼬리만큼의 문제의식인걸까. 하지만 된장남, 된장녀를 비웃고, 물질이나 소비에 대한 욕망이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나는 카드를 긁으며 기쁨을 느낀다. 우하하!

 

 해마다 하는 연말정산에 부양가족도, 특별히 기부한 곳도 없는 홀몸이라 별로 적어낼 것도 없는데 내 연봉에 육박하는 신용카드 사용금액을 보니 저절로 한숨이 나와 쓸데없는 생각에 빠졌다. 새해가 되거나, 처음 일을 시작하거나 하면 모두들 뭔가 세상에 보탬이 되고 싶다는 순수한 생각을 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 아무리 잠깐이더라도, 그런 사람들이 아무리 소수라도 그건 분명 좋은 일일 텐데. 사람들은 욕심 부리며 황금 돼지꿈을 꾸지만, 짐작컨대 황금 돼지는 아마 이런 꿈을 꾸지 않을까 싶은데. 아님 할 수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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