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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TV를 켤 때마다 행복한 고민에 빠진다. 채널이 하도 많아서 어디를 시청해야할지 고민에 빠지는 것이다. 리모컨은 쉴 새가 없다. 휴대폰과 인터넷에서도 똑같은 고민은 계속된다. 시청자들이 채널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계속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TV를 시청한다는 것을 인권적 측면에서 따지자면 ‘행복추구권’과 ‘알 권리’를 충족시키는 것일 게다. 이는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이러한 기본적인 권리조차도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시각장애인들과 청각장애인들이다.


2005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시각장애인은 22만1166명, 청각장애인은 22만9159명. 무려 50만이 넘는 인구다. 국회의사당 앞에서 TV를 깨부수며 ‘대한민국은 죽었다’고 외치는 그들이다.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는 그들에게 TV는 ‘바보상자’일 뿐이다. 장애인을 바보로 만드는 상자라는 뜻이다.


2006년 방송위원회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06년 전체 방송시간 중 화면해설 방송의 비율은  KBS 1TV 3.6%, KBS 2TV 4.6%, MBC 5.5%, SBS 7.5%로 평균 5.3%에 불과한 실정이다. 화면해설방송은 화면에 나오는 장면과 자막을 시각장애인을 위해 음성으로 해설하는 것을 말한다.


시각장애인에게 화면해설방송이 절실하다면 청각장애인에겐 자막방송과 수화방송이 필요하다. 먼저 2006년 전체 방송시간 중 수화방송이 차지하는 비율은 KBS 1TV 6.8%, KBS 2TV 1.3%, MBC 1.95%, SBS 2.0%, EBS 6.3%로 방송4사 평균 수화방송비율이 6.8%를 기록했다. 화면해설방송이나 별 차이가 없는 수준이다.


그나마 제일 나은 쪽이 자막방송이다. 자막방송의 경우, KBS 1TV 59.6%, KBS 2TV 33.0%, MBC 58.1%, SBS 62.1%, EBS 64%로 2006년 방송4사 평균 자막방송비율이 55.36%를 기록했다.


이러한 수치들로 장애인들의 아픔이 실감이 되지 않는다면 볼륨을 끄고 10분만 TV를 시청해보자. 눈에 안대를 끼고 10분만 TV를 시청해보자. ‘화면해설방송’, ‘자막방송’, ‘수화방송’이 시·청각장애인들에게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것을 쉽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지상파에서 장애인들의 시청권 확보를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자 장애인들은 ‘방송법’을 개정해 방송사업자들의 의무를 강화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현재 방송법 개정안은 국회에 3개나 발의돼 있다. 2005년 3월 15일 발의된 열린우리당 장향숙 의원의 개정안, 2005년 8월 12일에 발의된 노웅래 의원의 개정안, 2005년 12월 7일 발의된 한나라당 정화원 의원의 개정안이 바로 그것이다.


작금의 상황은 채널이 늘어나는 만큼 장애인들의 권리는 축소되고 있는 꼴이다. 비장애인의 권리는 계속해서 늘어나지만 장애인의 권리는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지상파가 모범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신규 방송사업자에게 장애인 시청권 방안을 찾으라고 요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질 높은 방송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에 앞서 모든 사람에게 TV볼 수 있는 환경부터 갖추는 것이 먼저다.

 

에이블뉴스 취재부 차장 소장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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