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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호 MBC PD (예능국)

 

불행히도 우리나라 공연에는 백 스테이지가 없다. 화면에 보이는 게 전부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무대 뒤는 어수선하고 정리되지 않은 느낌이 여전하다. 일본의 홍백가합전이나 우리의 십대가수가요제나 방송되는 그림은 큰 차이가 없지만 무대 뒷모습은 천지차이다. 부족한 예산을 가지고 무대를 채우기도 바쁜데 정리된 백 스테이지를 가진다는 것은 아직 사치다.


우리가 아직도 몇 명의 진행 팀들의 임기응변으로 움직인다면 그네들은 수십 명이 체계적인 팀워크로 움직이고, 우리가 PD 혼자 할 일을 그네들은 4-5명의 분화된 인원으로 처리한다.

 

리허설도 우리는 하루 전에 하면 대단한 정성이지만 그네들은 다른 곳에 세트를 지어 리허설을 한 다음에 그 세트를 그대로 옮겨오는 수고도 마다않는다. 창피하지만 어쩔 수 없는 수준차이가 난다. 그게 공중파 공연의 현실이고 십여 년 전과 차이가 없는 예산으로 만들어지는 우리나라 쇼의 자화상이다.

 

그렇다고 수십 년간 방송사 무료공연에 익숙해진 관객들에게 당장 입장료를 받을 수도 없고 따로 재원을 확보할 방안도 없다. 돈이 있어야 우리나라의 살인적인(?) 대관료도 해결할 수 있고, 더 나은 장비와 인력을 고용해 멋진 무대를 보여줄 수 있고, 한번이라도 리허설을 더 할 수 있고, 무대진행 인력 시스템도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 아껴서 돌려막는 것도 한계가 있다.


부정할 수 없는 돈의 시대다. 투자의 규모가 질을 결정하는 시대다. 영화도 돈이 들어간 게 때깔이 다르다. 경쟁력 확보를 위해 ‘원형콘텐츠’를 양산해야 한다고 외치는데 사실 방송사내 현업에서는 시청자들의 눈높이를 맞추기도 힘들다.


가격이 반드시 품질을 규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젠 우리나라 콘텐츠 제작 수준을 높이고 싶다면 그동안 방송사의 발목을 잡고 있던 제도들을 바꿔 공중파 프로덕션 기능의 경쟁력 강화를 생각해 볼 때다.

 

부족한 제작비 보전을 누군가가 못해줄 거면 수십 년간 마치 태생적 한계인 듯 금기시 해온 협찬과 간접광고, 중간광고 등의 전면 허용도 적극적으로 요구해야 한다. 분명 세상은 변했고, 다양한 MPP와 MSO가 활약하는 이 시대에 과거의 규제를 숙명처럼 받아들이라는 것이 과연 적절한가?


야심찬(?) 꿈이 있다면 10년 안에 일본이나 미국 수준의 공연을 연출하는 거다. 공연에 필요한 고가의 장비를 다양하게 도입해 무대도 만들고, 카메라로 찍어도 민망하지 않은 수준의 안전하고 효율적인 백 스테이지도 만들고, 그 공간 안에서 수십 명의 전문스태프들이 일사분란하게 자기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최고의 공연을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합리적인 수준의 제작비를 확보하기 위해 하나하나 해결해야 할 일이 많다. 더 이상 공중파 방송사가 받는 역차별이 당연시되지 않아야겠다. 이젠 예전의 약한 날개가 떨어진 자국에 천리를 날아갈 수 있는 날개가 돋아나야 할 때다. 불현듯 피디들이 겨드랑이에 가려움을 느낄 때 아주 오래된 금기의 악령들이 사슬이 되어 다리를 끌어당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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