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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워싱턴에서 있었던 7차 협상에서 미국측은 방송과 관련된 분야에 대해 본격적으로 거론했다. 그동안 방송과 관련해서는 ‘미래유보’로 묶겠다고 큰소리 쳤던 정부는 이미 지난 1월부터 개방 목록을 작성하라고 방송위원회를 압박해 왔다. 
오는 3월 8일부터 한미FTA 8차 협상이 시작된다. 대통령과 한미FTA를 지지하는 쪽에서는 반대자들을 쇄국론자로 몰아세우고 있다. 그러나 반대자들의 주장은 ‘개방 절대 불가’가 아니다. 이런 방식의 협상, 이런 방식의 개방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던지는 질문은 ‘왜 한미FTA를 이런 방식으로 체결해야 하는가?’하는 것이다. 대통령을 포함한 지지자들의 낙관이 근거없는 희망에 기대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다음의 글은 ‘MBC노보’에 실렸던 글을 필자의 동의를 얻어 전재한다.
[편집자 주] 

 


 

김환균 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 회장은 언론노조 한미FTA 저지를 위한 단식 투쟁에 동참하고 있다. 2월13일 오후 5시 ⓒ사진제공 언론노조

한미 FTA에 대해 반대하는 한 경제학자는 온갖 가능한 해석을 다 해보아도 한국이 한미 FTA를 서둘러 체결해야 할 경제학적 이유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장하준 교수는 우리나라는 이미 개방을 너무 많이 해서 문제가 생기고 있다며 한미FTA는 국민투표에 부쳐야 할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사실 국제 협정을 진행하면서 그것이 국민 생활과 국가 경제에 미칠 파급 효과를 엄밀하게 시뮬레이션해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우리 정부는 하지 않았다. 수치 조작시비가 일었던 자료만을 내놓았을 뿐이다. 그 자료에서조차 우리나라가 손해를 보는 것으로 나왔다. 그러면 왜 하는가? 장기적으로 보면 이익이라는 것이다.


다시 앞서의 경제학자의 이야기이다. “한국 경제가 이익을 보기 위해서는 산업혁명과 같은 엄청난 기술의 발전과 그에 따른 생산력의 비약이 있어야만 한다.” 그런 혁명적인 발전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꿈과 상상에 근거한 비현실적인 희망이 한미 FTA를 추진하는 이유라면 너무 슬픈 일이다.
  그러나 한미FTA는 누구의 말대로 브레이크없는 급행열차처럼 내리막길을 질주해 가고 있다.

 

쇄국론자 vs. 을사오적

 

“한국이 협상을 너무 잘해서 오히려 안 열어주고 미국도 자꾸 열어달라고 애를 안 써서 오히려 아쉬움이 있다.”
지난 2월 27일, 취임 4주년을 맞아 한국인터넷신문협회와 대담하는 자리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한미FTA와 관련해서 한 말이다. 아무 문제도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궁금증이 생긴다. 그렇게 잘 하고 있는 협상이라면 왜 협상 내용을 속시원하게 공개하지 않는 걸까?


노대통령은 또 “대원군, 대한제국 때 우왕좌왕 하다 무너지던 때와 대한민국은 다른 나라”라고도 했다. 
웬 대원군에 웬 대한제국? 이 말의 진의를 알기 위해서는 주석이 필요하다. 
대통령과 한미 FTA 지지자들은 반대자들을 쇄국론자로 몰아세운다. “개방하고 교류했던 나라는 망한 나라도 있고 흥한 나라도 있지만, 개방 않고 교류하지 않은 나라 중에는 흥한 나라가 없다.” 즉, 개방하자는 한미FTA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대원군과 같은 쇄국론자들이라는 것이다. 반대쪽에 서있는 사람들은 당연히 신경질을 내며 을사늑약을 들먹인다. 지금의 한미 FTA 협상은 한 국가의 주권을 내주는 꼴이라는 것이다. 심한 말이긴 하지만 그런 비판이 터무니없는 것만은 아니다.


1차 협상에서 한국 정부가 덜컥 받아버린 투자자-국가소송제도라는 게 있다. 미국인(또는 미국 법인) 투자자가 한국의 공공정책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다. 물론 한국의 투자자가 미국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제도는 한 국가의 주권이 훼손될 수 있는 파괴적인 것이다. 민변이 지적했듯이, 이 제도가 도입되면 “한국의 중앙정부, 국회, 지방자치단체의 정책이 미국인 투자자의 투자 활동에 영향을 미칠 공공정책의 경우, 미국 투자자의 국제 중재 회부에 따라, 한국의 행정부와 입법부는 한국의 사법심사를 통해 그 정책의 적법성을 확인할 기회조차 가질 수 없게” 되며, “한국 사법부의 입장에서는 그 정책이 정당한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권한을 상실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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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국가소송제도

 

알기 쉽게 예를 들어보자. 멕시코에서 발원하여 미국으로 흘러드는 강이 있다. 상식적으로, 국경을 사이에 두고 멕시코 영토 안에 있는 강은 멕시코의 것이다. 멕시코는 그 수자원을 자신의 의지대로 개발할 수 있다. 왜? 멕시코의 자원이니까. 그러나 북미자유협정(NAFTA)이 체결된 후 이 상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멕시코 영토를 흐르는 강에 대해서 멕시코가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 홍수나 가뭄에 대비하기 위해서 멕시코 정부가 댐을 건설하니까 강 하류 쪽의 미국 농부들이 소송을 제기했다. 멕시코가 수량을 통제함으로써 자신들의 농업에 막대한 피해를 끼친다는 것이다.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다툼이 발생하면 누가 심판하는가? 멕시코의 사법기구가 아니다. 국제중재기관이 담당한다. 그 중재기관에 대해 미국의 영향력이 더 클지, 멕시코의 영향력이 더 클지는 말할 필요가 없다. 
더군다나 이 제도는 이미 투자했다가 손해를 본 경우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 투자하려고 마음만 먹고 있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있게 한다. 한국의 한 자치단체에서 환경보호를 위해 그 지역에 들어설 공장들은 청정연료만을 써야 한다는 정책을 세웠다 치자. 기업 입장에서는 분명 이 까다로운 규제가 반가울 리 없을 것이다. 미국의 기업은 자기들은 화석연료를 이용하려는 계획을 세웠는데 이 규제 때문에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며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누군가 머리를 잘 쓰면 미국을 상대로 이 제도를 이용해 떼돈을 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머리는 미국이 더 잘 쓴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작게 먹고 크게 내줄 각오를 미리 해두어야 한다.

 

방송사, 대규모 해고 사태가 일어날 것

 

비밀스럽게 커튼 뒤에서 진행되고는 있지만 협상 과정을 유심히 지켜본 사람은 ‘한국이 협상을 너무 잘’ 한다는 대통령의 말씀이 한참 오버하고 있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처음에 지키기로 한 것들을 하나하나 다 내주고 있다. 


방송 분야가 그렇다. 협상 관계자들은 작년 가을까지만 해도 현행 방송법의 틀은 미국이 건드리려 하지 않으며, 쟁점으로 예상되는 부분은 온라인 VOD 시장이라고 이야기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미국측의 입장에 중대한 변화가 있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지난 2월 워싱턴에서 있었던 제7차 협상에서 미국은 방송법의 주요한 규제 조항들을 다 완화하거나 풀도록 요구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보자.

1. 광고공사를 해체하고 민영미디어렙을 도입할 것
     - 광고 영업 직접 하겠다는 것이다. 
2. 지상파 편성 쿼터 현행 80%에서 50%로 하향 조정
     - 국산 프로그램 편성 비율을 낮추고 30%만큼 외국 프로그램으로 채워야 한다. 외주 비율 맞추고 30% 떼어 주면? 방송사마다 대규모 해고 사태가 벌어질 것이다.
3. 케이블의 SO와 PP 소유지분 49%에서 51%로 상향 조정
     - 대주주로서 안정된 지위를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4. CNN같은 외국위성방송의 한국어 더빙 및 한국 광고 유치 허용
     - 한국 국민여론에 직접 영향을 미칠 것이고 보도 부문은 엄청난 도전을 받게 될 것이다. 한국 광고 유치, 민영미디어렙 도입과 관련이 있다.
5. 온라인 VOD 시장의 전면 개방
     - 우리나라는 이 부분에 대해서 법적, 제도적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 이것이 개방된다면, 한국에 돈 한 푼 투자하지 않고 미국에서 한국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방송할 수 있다. 그것도 한국어로 더빙되어서.

 

대통령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실 것이다. “요구하는 거야 그쪽의 자유다. 하지만 협상 잘 하는 한국이 안 내줄 것이다.” 아, 그런데 이건 어떻게 설명하실 겁니까? 그 협상 잘하는 한국이 온라인VOD 시장만 빼놓고는 나머지는 모두 내주기로 입장을 정했다면….


2월 27일, 전국언론노동조합 대의원회의에서, 총파업을 포함한 한미FTA 반대 투쟁의 방식을 지도부에 위임하는 결정을 한 것은 바로 이런 절박함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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