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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평일 오후에 우연히 여기 뉴스채널들을 한참동안을 볼 기회가 있었다. CNN 에서 최근에 죽은 앤나 니콜 스미스라는 배우의 사망과 장례에 대한 뉴스로 도배를 하고 있길래 , 다른 곳에서는 어떤가 하고 봤더니 Fox도 그에 덜 하지는 않았고 , 그나마 MSNBC가 좀 덜 한 편이었다.

 

그렇지만, 이 24시간 뉴스채널들이 바하만가 어디에 헬기까지 띄워가면서 한 여배우의 장례를 보도하고 있는 것은 심하다 싶었다. 이라크전이나 의회에서의 여야 충돌, 부통령 비서실장의 유죄판결 등 중요한 문제들이 많았는데도 불구하고. 혹시나 그게 이 여배우의 장례식 날이라서, 그리고 가족 간의 분쟁으로 장례절차에 대한 논란이 많아서 그런가 하고 여기저기를 찾아보았더니 그날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미디어 관련 단체의 보고서들을 살펴보면, 이 여배우가 사망한 때인 2월 초에는 더욱 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중에서도 케이블 방송 매체들의 관심은 극진해서, 다른 신문이나 네트워크 방송들은 이 기사를 이라크전이나, 이상 기후, 미국 대선 정치 등에 이어 다섯번째로 중요하게 다룬 반면, 케이블 방송들은 이 뉴스를 가장 중요하게 보도했고, 특히 사망한 이 2월 8일과 9일, 양일간에는 전체 뉴스시간의 반을 여기에 할애했다 (Project for Excellence in Journalism 보고서 참조). 

 

또 다른 보고서에 따르면, 케이블 뉴스채널들은 이 여배우에 대한 언급을 이라크전에 대한 언급보다 적어도 3배에서 6배까지 많이 한 것으로 조사했다. 한 여배우의 사망이 모든 사회문제를 눌러버리는, 그것도 케이블뉴스에서 극심하게 보이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 플레이보이 커버를 장식한 안나 니콜 스미스

 

표면적인 이유는 이 여배우의 인생이 파란만장하다는 것이다. 젊을 때는 잘 나가는 모델로 플레이보이지의 커버모델도 하고, 마릴린 먼로에 버금가는 섹스 심볼이었다.

 

그러다가, 돈 많은 남자와 결혼을 했는데, 더 뉴스 가치를 만든 것은 이 남자가 팔십이 넘은 노인이라는 것이었다. 이 남편이 죽은 뒤에 재산과 관련된 소송으로 장안의 화제가 되고, 또 그 재판을 미국 대법원까지 가지고 갔으니 재미있을 수밖에.


하지만, 결정적으로 이 여자가 이렇게 뉴스에 중심에 서게 된 것은 최근에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는 딸을 낳는 날, 아들이 약물부작용으로 사망을 하고, 그 얼마 후 자신이 죽은, 마지막의 비극이 더 텔레비전이라는 매체를 자극했을 것이다. 그 죽은 시체를 놓고 누가 장례를 지내며 어디에다 묻느냐로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사람들은 맞소송을 걸고 있으니 법정 드라마까지 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 근본에는 케이블 뉴스 채널의 본질이 있다. 이들은 24시간 뉴스를 좇아가야 하고, 또 동시에 다른 뉴스 채널과 계속 경쟁을 해야 한다. 이 가운데 시청률만이 그 성패를 결정한다. 케이블 뉴스들은 이라크 전에서 도망가고 싶어 하는 시청자들의 심리를 만족시키면서 시청률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최근 한국 뉴스를 보니, CNN 회장의 한국어 방송 발언으로 많은 논란이 되는 것 같다. 만약 FTA니 뭐니 해서 CNN과 같은 미국 채널들이 들어온다면 우리도 이런 미국 여배우의 죽음을 오후 내내 지켜보게 될 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문화적인 반향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걱정을 하게 되는 것이고 또 반대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공중파 뉴스도 그에 못지않게 연성화 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뉴스채널에 반대할 만한 논리가 준비되어 있는가도 자문해 볼 문제이다.


한국의 간판 뉴스들이 연예계 뉴스나 아니면 센세이션한 것들로 시청자들을 길들인다면, 역으로 이에 길들여진 시청자들이 더 센세이션하고 흥미로운 것들을 찾아서 미국의 케이블 뉴스로 채널을 돌리게 될 것은 자명한 이치이기 때문이다.


샌프란시스코=이헌율 통신원/ 샌프란시스코주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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