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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말리아에 있을 때 겁이 많이 났다. 지금 이 자리에서도 겁이 많이 난다. 우리 선원들과의 만남에 벅찬 느낌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PD로서 프리랜서건 아니건 최선을 다하고 싶다. (저널리스트로서) 후배들이 세계를 뛰어다니는 것을 생각하면 여기서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10일 오전 10시 프레스 센터에서 열린 ‘PD저널리즘과 독립PD 취재권 수호를 위한 기자회견’에서 참석한 김영미 PD는 당시 동원호 항해사였던 김진국 씨와 함께 한 자리에서 이같이 심정을 밝혔다.

김진국 씨는 “김영미 PD가 사실과 다르게 너무 고통을 받고 있는 것에 마음이 아파 도움이 되고자 자진해서 이 자리에 섰다”며 나포됐을 당시의 상황을 적은 A4 몇 장 분량의 글을 천천히 읽어 내려가며 울먹였다.

 

 

 

▲ 동원호 항해사였던 김진국 씨(사진 오른쪽)가 동원호가 나포됐을 당시 김영미 PD가 찾아왔던 상황을 울먹거리며 설명해 나가자 김영미 PD(사진 왼쪽)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진국 씨는 “동원호와 관련해 김영미 PD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워 자진해서 기자회견에 참석했다”고 밝혔다.

김 PD는 “나는 일개 프리랜서 PD지만, 동원호와 관련한 사건은 일개로 치부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며 “동원호에는 대한민국 국민이 있었고, 선원들의 가족들인 그들의 아내, 아들이 있었기 때문에 어떤 순간이 와도 굴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 PD는 외통부가 요구하고 있는 반론 보도건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정리했다. “반론보도를 하는 것은 동원호 선원들 입장에서는 황당하고 억울한 일이다. 어떤 순간에도 소말리아에 갔던 일을 후회하지 않는다. 외통부가 나를 일개 프리랜서 PD로 치부하더라도 국민의 알 권리를 말할 수 있는 충분한 자격이 있다. 소말리아에 있었던 것처럼 끝까지 앞으로 싸워 나갈 것이다.”

김 PD는 동원호 관련해 지난해 9월〈PD수첩〉을 통해 후속보도를 하게 된 배경도 설명했다. “동원호 관련된 보도가 나가고 난 뒤 두 번째 취재는 조심스럽게 진행됐다. 방송이 안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많이 위축됐다. 김홍일 씨 일기에 동원호를 좌초시키려고 했다는 사실을 중국 기자들의 보도를 통해 접하게 돼 취재하게 됐다.”

 하지만 동원호 관련한 김영미 PD의 후속보도에 대한 국내 언론의 관심은 싸늘하기만 했다.

김 씨는 “동원호 취재가 비하되고 왜곡된 사실이 안타깝다”며 “나포 100일 즈음 동원호를 찾아온 김영미 PD를 보며 천사라고 생각했을 만큼 김PD와 가졌던 첫 만남의 감격을 잊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김 항해사는 동원호가 나포되어 있던 상황을 설명했다. “김 PD에게 협상 자금을 모아 다시 돌아와 달라는 말을 했었다. 상황이 너무 절박해 김 PD에게 억지를 썼다. 우리로서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당시에는 김영미 PD밖에 믿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김 항해사는 “일촉즉발의 위기에서 김 PD에게 해적들을 해치우고 탈출하자고 했을 때 김 PD는 얼굴이 하얗게 될 정도로 당혹했다”며 “하지만 우리의 상황을 이해했을 때는 같이 행동하겠다고 할 정도로 동원호 선원들에게 김 PD는 전우”라고 말했다.

덧붙여 김 항해사는 “그런 급박한 상황 속에서 진실이 아닌 것들을 취재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며 외통부가 주장하는 ‘김영미 PD가 협상에 방해가 됐다’ ‘협상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는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김 항해사는 한국 정부를 향해 쓴 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회사만을 협상 전면에 내세운 정부를 이해할 수 없다. 협상금이 한국 돈으로 4~8억 정도였는데 25명의 목숨이 이 돈보다 못했던 것이었는지 지금도 의문이 남는다. 국민의 한 사람이 어디에 있더라도 국가의 지위에 걸맞게 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국가가 됐으면 좋겠다.”

사회를 맡은 이성규 독립PD협회장은 기자회견에 모인 기자들에게 동원호 관련한 취재를 촉구했다. “동원호 관련된 모든 취재가 동원호 선원들이 한국에 도착하는 시점에서 모두 종료됐다. 동원호 선원들에 대한 후속 취재가 전혀 안 되고 있다. 아직도 선원들에게 들어야 하는 이야기가 남아있다.”

동원호가 나포됐을 당시 ‘누군가가 동원호를 좌초시키려했다’는 사실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김 항해사는 “그것과 관련해 여기 저기 자문도 구해봤지만 가는 곳마다 증거부족이라는 말을 들었다”며 “일기를 썼던 중국 선원도 말을 하고 나 또한 명령을 받은 사람들 중 한 사람인데 누구 하나 귀 기울여 주는 사람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기수 기자 sideway@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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