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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레이드의 화려한 연주자 채플린
무성영화시대의 셔레이드(2)

|contsmark0|최상식 kbs 드라마제작국장
|contsmark1|● 글 싣는 순서제1장 영상의 창세기 1. 영화의 탄생 2. 영화 문법의 태동제2장 셔레이드 1. 셔레이드란 무엇인가 2. 무성영화시대의 셔레이드(1) 3. 무성영화시대의 셔레이드(2) 4. 신체언어를 통한 셔레이드 5. 소도구를 통한 셔레이드 6. 셔레이드의 유형별 해부
|contsmark2|제3장 몽타즈 1. 아메리칸 몽타즈 2. 소련의 몽타즈 이론 3. 편집의 원리제4장 미장센 1. 롱테이크 기법 2. 포커스 기법 3. 조명과 색채 4. 기타
|contsmark3|세네트의 희극 ‘생계유지’를 통하여 영화인생을 시작한 찰리 채플린은 첫 등장에서부터 셔레이드를 이용한 이미지 창조에 성공함으로써 희극배우로서 순조로운 출발을 할 수 있었다. 그의 단골메뉴였던 중절모와 콧수염, 꽉 끼는 상의와 통이 큰 바지, 형편없이 낡아빠진 구두와 지팡이는 모순과 부조화를 상징한다. 그의 연기엔 역설과 풍자, 열정, 영감, 그리고 약자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인생에 대한 짙은 페이소스가 배어 있다. 또한 뒤뚱뒤뚱 걷는 모난 걸음걸이와 미끄러지듯 돌아서는 제스처, 지나치게 과장된 콧수염, 그리고 지팡이와 중절모자로서 엮어내는 우스개짓은 관객에게 독특한 채플린 스타일로서 깊게 인상 지워졌다. 채플린 연기의 특징은 그가 무대생활을 통해서 습득한 곡예와 무언극의 실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마치 몸을 악기와 같이 다루면서 시각적 코미디의 놀라운 변형을 만들어 내었다는 데 있다. 채플린의 몸은 악기요 연주자며 그 자체가 바로 메시지였다. ‘황금광 시대’는 채플린 특유의 풍자와 해학이 빛나는 작품으로서 그의 천재성을 입증하는 좋은 셔레이드의 예가 있다. 바로 굶주린 채플린이 더럽고 기름에 절은 구두를 요리해 먹는 장면이다. 채플린은 우아하고 정확한 식탁 매너로 구두를 자르기 시작한다. 못이 박힌 구두창을 살코기가 박힌 생선의 등뼈처럼 들어올린다. 마치 그것이 닭뼈라도 되는 듯 조심스럽게 빨아먹는다. 그리고 구두끈을 스파게티처럼 포크에 감는다. (사진1. 황금광 시대)이 장면에서 부자와 가난한 자의 대조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충격적이며 인상적인 방법으로 상징화되어 있다. 여기서 채플린이 단지 구두를 삶아서 게걸스럽게 뜯어먹고 있는 굶주린 사람을 보여 주었을 뿐이라면 그것은 가난의 괴기스런 캐리커처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장면의 탁월함은 채플린이 가장 비참한 음식을 가장 우아한 매너로 먹어 보임으로써 부와 대비되는 빈곤의 실체를 역설적으로 보여주었다는데 있다. 구두를 요리해 먹고 있는 한가지 사실 속에 빈자와 부자의 대조를 동시에 투영시킨 고도의 상징성에 채플린 연기의 비밀이 있는 것이다. 즉 닳아 헤진 구두는 생선의 잔해와 동일하며 못은 닭뼈, 구두끈은 스파게티를 상징하고 있다. 채플린은 이처럼 서로 다른 물건들의 형태상의 유사성을 보여줌으로써 그 차이를 가슴 아플 정도로 명백하게 드러낸 것이다. 심화된 배고픔 대(對) 안락한 삶이란 주제를 채플린은 무언의 제스처를 통하여 수백 마디의 말보다도 더욱 생생하고 인상적으로 사람들의 가슴 속에 각인 시켜 놓았다. 여기에 셔레이드 기법의 매력이 있다.채플린의 영화에서 또 하나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은 사회성이다. ‘도시의 불빛’에는 사람들을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관찰하는 채플린의 날카로운 인식이 깔려 있다. 가난한 사람들이 먼 발치에서 바라 본 부자들, 가난과 멸시라는 엄격한 현실, 채플린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중절모와 너덜너덜한 야회복은 그가 멋지게 차려 입은 상류사회의 사람들과 얼마나 동화되기를 원하는지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채플린은 절대로 그들과 동화될 수 없으며 언제나 그 밝은 불빛의 바깥 주위에 서성거리고 있어야하는 운명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언제나 강인한 내적인 힘을 가지고 고난을 벗어 던지고 새로운 모험을 찾아 거리로 나서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채플린의 탁월성은 그가 단지 허름한 방랑자일 뿐 아니라 부자들의 관점에서 보여진 빈곤한 인간이라는 점이다. 그가 애용하는 중절모와 어딘지 약식 야회복을 닮은 외투나 멋쟁이 같은 단장과 콧수염을 통해 가난을 부(富)의 결핍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사진2. 도시의 불빛)이와 비슷한 또 하나의 예를 ‘황금광 시대’에서 찾을 수 있다. 굶주림 때문에 반쯤 돌아버린 친구가 갑자기 채플린을 닭으로 착각하고 잡아먹으려는 장면이다. 채플린의 필사적인 몸부림은 날개를 퍼덕이는 닭의 모습처럼 보이고, 그가 스토브 위로 몸을 숙이자 마치 닭이 물을 먹기 위해 몸을 숙이는 것처럼 보인다. 인간이 인간에 대해 난폭해 질 때, 즉 친구의 몸뚱이가 먹음직한 고기로 보일 때, 인간 내부에 도사린 어떤 모습이 또다시 예기치 못했던 유사성에 의해 대비된다. 이번에는 거꾸로 채플린의 시야에 비친 친구의 모습이 알맞게 살찐 닭의 모습으로 환원되는 것이다. 이러한 전이 역시 본질적으로 정반대 되는 사물간의 극적인 대조를 표현해 주는 시각적 유사성을 이용한 셔레이드인 것이다. (사진3. 황금광 시대) ‘이민자’에서 채플린은 자유의 땅 미국에 도착한 사람들이 겪게되는 경험들을 냉소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주민들을 실은 배가 자유의 여신상 앞을 통과할 때 그들은 소 떼처럼 묶여있고 채플린은 여신상을 비웃듯 바라본다. 이러한 비유적 셔레이드를 통하여 채플린은 자유와 억압이라는 명제를 은연중 부각시키고 있다. (사진4. 이민자)1935년에 제작한 ‘모던 타임스’는 이 시대를 바라보는 채플린의 예언적 메시지가 담겨 있는 작품이다. 거대한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 아래서 기계적으로 나사 돌리는 일을 반복해 온 노동자 채플린이 일상생활 속에서도 나사를 연상시키는 물건만 보면 돌리려고 하는 동작을 병적으로 되풀이한다. 채플린은 나사 돌리기에 집착하는 노동자의 잠재적 행동을 통하여 산업사회의 착취구조 속에서 점점 기계화되어 가는 인간 존재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와 비판을 가하고 있다. 채플린은 당시 디트로이트 공장지대에서 일하는 많은 공원들이 열악한 작업환경으로 인하여 각종 신경성 질환에 시달리고 있다는 기사를 보고 ‘모던 타임스’의 아이디어를 얻게 되었다고 자서전에서 밝히고 있다. 나사 돌리는 간단한 동작 하나로 채플린은 어떤 논문이나 웅변보다도 통렬하게 기계화 사회의 병리현상을 고발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셔레레이드의 힘이다. (사진5. 모던 타임스)브레히트는 채플린의 이러한 노력을 높이 평가하였다. 그는 채플린의 영화가 육체적 움직임의 총화라고 규정하고 특히 등장인물의 운명이 ‘몸짓’을 통해 구술(narrate)되고 있음을 중요하게 파악하였다. 채플린의 영화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던 브레히트가 무대 위에서 인간을 진실되게 그려보기 위해서 가장 강조한 것이 바로 ‘사회적 몸짓’(gestus)이었다. 그는 ‘사회적 몸짓’을 등장인물의 전반적 태도를 보여주는 ‘사회적 의미를 지닌 몸짓’으로 규정하고, 사회적 관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연기에 있어서의 세부동작을 특히 강조하였다. 채플린 또한 세부 묘사를 통한 의미창조에 역점을 두고 있는 만큼 브레히트의 게스투스(gestus)와 채플린의 셔레이드는 서로 맥이 닿아 있다. 채플린은 인간조건에 대한 정확한 해석으로 팔이나 손, 다리와 발, 그리고 뻣뻣한 등뼈로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상상도 못할 신체적 잠재력으로 변화시켜 놓은 화려한 셔레이드의 연주자였다. 그는 조지 버나드 쇼로부터 이 시대 영화인 중에서 유일한 천재라는 찬사를 받았다. (사진6. 모던 타임스의 라스트 신)|contsmark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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