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가는 오유경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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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투나잇’은 앵커의 책임감 깨닫게 한 프로그램”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새롭고 유익한 건강유지법을 소개해 시청자들의 관심을 폭발적으로 불러 일으켰던 <생로병사의 비밀>(이하 <생로병사>), 그리고 민감한 사회적 이슈가 생길 때마다 사리판단 분명한 목소리를 냄으로써 사회적 논란을 끊임없이 불러 일으켰던 <생방송 시사투나잇>(이하 <시투>).

 

KBS라는 같은 지붕 아래 존재하지만 이처럼 성격이 판이한 두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사람은 얼마 전까지 같은 사람이었다.


“<시사투나잇>과 <생로병사>가 부딪히는 문제가 하나 있었어요. <시사투나잇>에서 열 받은 시청자들이 <생로병사> 게시판에 와서 나를 비난하는 글을 올리는 거예요. 그래서 나 때문에 <생로병사>의 공공성이 침해받는 것이 아닌 지 고민한 적도 있어요.”

 


4월 24일 방송을 끝으로 <생로병사>의 진행자에서 물러난 오유경 아나운서는 두 프로그램을 함께 진행하면서 겪은 에피소드를 이런 우스개로 풀어냈다. 하지만 그에겐 두 프로그램 모두 너무나 소중하고 의미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생로병사> 같은 프로그램은 남은 방송 기간 언제 또 만날 수 있을까 싶은 훌륭한 프로그램이에요. 그 전에는 <6시 내고향>, <국악한마당> 같은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부드러운 교양 이미지나 한국적인 이미지가 강한 아나운서라는 평을 들었는데, <생로병사>하면서 지적인 이미지로 변화했고 오유경이란 이름을 많은 분들에게 알릴 수 있었어요.”


“<시투>는 처음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실험적인 포맷의 프로그램인 것 같아요. 뉴스는 늘 중립이어야 된다는 기존의 가치에 도전했고, 여자인 나를 메인으로 앉혔고, 굉장히 낯선 형식의 프로그램이었어요. 나로서도 내가 하고 싶은 시사프로그램의 첫 발을 내딛게 해준 프로그램이었고, 일반 진행자가 아니라 앵커로서의 책임을 함께 부여한 프로그램입니다. 외면하고 싶은 일이지만 진행자로서 판단과 결론을 내려야 됐고, 스스로 고민을 해야 했어요. 다른 어떤 프로그램보다 나의 모든 것을 걸었고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생로병사>와 함께 한 5년, 그리고 <시투>에 몸담은 2년 동안 그는 한 순간도 소홀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생로병사> 녹화가 있는 금요일, <시투> 생방송을 하는 월~목요일 그는 이 프로그램들을 위해 아낌없이 일했다.


“<생로병사>는 거의 매주 12시간 동안 녹화를 했어요. 시청자들에게 쉽게 전달하기 위해 가상공간을 통해 별별 연기를 다 했어요. 백설공주, 미녀와 야수, 우주선 타는 연기까지…. 분장하고 그래픽 맞추는 데만 4~5시간 서 있기도 했어요. 어떨 때는 발톱이 빠진 적도 있어요. 하지만 시청자들의 반응이 좋았기 때문에 힘든 줄은 몰랐죠. 마지막 방송 때 그런 노력들이 떠올라 눈물을 참느라 혼났어요.”


“한 번은 <시투>하기 전에 우유를 마셨는데, 방송 30분 전부터 복통과 구토가 심하게 나는 거예요. 그런데 119 구급차 불러놓고 바가지를 들고 들어가 방송을 했어요. 멘트하고 토하고, 또 멘트하고 토하고. 이상호 아나운서가 고생했죠. 옆에서 바가지 들고 ‘선배님’이라면서…. 그때 결국 마지막 꼭지는 하지 못하고 클로징 끝나자마자 구급차에 실려 갔어요. 나나 PD들이나 방송을 차질 없이 해야 한다는 사명감이었죠.”


오 아나운서는 “원래 둥글둥글한 MC”였다고 한다. 진행자는 미움받지 않고 비난받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 <시투>하면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남에게 욕을 먹었다. 황우석 사건 때 그와 그의 가족까지 원색적 비난을 받았고, 심지어 ‘매국노 5적’에 포함되고, 평택 미군기지확장문제를 다룰 때 ‘어느 나라 경찰인지 모르겠다’고 한 마디 했다가 게시판에 떼로 몰려온 경찰들을 볼 때 그는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도 <시투>도 성숙해졌다고 한다.


“<시투>에서의 멘트가 사적인 멘트가 결코 아니에요. 방송 30분 전까지 PD, 작가와 함께 멘트를 놓고 싸우죠. 의견이 어긋난다기보다는 표현의 문제가 많은데, 어쨌든 좀 더 본질에 가깝게 말할 수 있도록 브레인스토밍을 하는 거고, 그 결과를 내가 말하는 건데, 오유경 개인에 대해 욕을 하면 그냥 웃어요. 그만큼 나 개인과 내 멘트가 합치되는 것으로 보였구나, 내가 앵무새처럼 하는 건 아닌가 보다 싶거든요.”


오 아나운서는 ‘백두산에 빗방울이 떨어질 때 1cm 차이로 서해로 가거나 동해로 간다’는 말을 좋아한다고 한다. 진보냐, 보수냐 거시적 관점에서 나누기보다 미시적인 관찰이 판단을 하는 데 중요하다는 의미. 그리고 오 아나운서는 한국사회의 갈등이 조정되기 위해서는 정부와 언론, 시민단체 등 공공영역이 원칙에 입각해 분명한 자신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방송인으로서 자본권력이 언론을 길들이려는 현 세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6월 22일 미국 메릴랜드대학 필립메릴언론대학의 초빙연구원으로 1년 동안 떠나게 되는 오유경 아나운서는 저널리즘을 공부할 계획이다. 다녀오면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진행자를 하고 싶단다.


“손석희 선배 같은 진행자가 될 수 있으면 영광이겠죠. 물론 나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고, 새로운 도전을 해봐야죠.”

 

박진형 기자 hangil@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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