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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대회 TV중계는 방송의 공공성 배반

|contsmark0|“목이 짧지 않은가, 유방의 크기+위치+선, 배(나오지 않았는가), 히프의 사이즈+선+모양(처지지 않았나), 넓적다리 상부의 앞뒷모양(벌어져 있지 않나), 다리의 선(쪽 곧은가)과 탄력성(근육이 보이면 안됨)…”이 항목들은 바로 미스코리아선발대회의 심사기준들이다. 이러한 기준들 속에서 ‘정신적 존재’로서의 여성은 발견할 수 없다. 단지 ‘성적 대상인 육체의 존재’만이 부각되어 있을 뿐이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승리한 여성의 외모는 방송을 통해 전국에 중계되고 비정상적인 미의 기준을 접하는 일반 여성들은 창피하다. 그들은 자신의 육체를 어떻게든 ‘훼손’시켜서라도 기준에 근접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미스코리아대회는 특정 신문사에서 다분히 영리를 목적으로 개최되고 있는 행사이다. 그러나 일반 국민들에게 그것은 마치 국제대회에 출전시킬 국가대표를 선발하는 전국가적 행사로 인식되어 있다. 또한 미국의 다국적 기업 유니버스사에서 자사 상품의 판촉 및 이윤을 위해 매년 개최하고 있는 미스유니버스대회는 국제기구에서 주관하는 ‘미의 올림픽’쯤으로 인식되어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이러한 확대 과장된 인식의 한가운데 미스코리아대회의 지상파 중계방송이 있다.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의 조정하 사무국장은 “지상파의 미인대회 중계방송은 미인대회에 권위를 부여하고 그 상품성을 극대화시켜 이의 범람을 조장하고 있다”면서 방송의 공공성을 운운하면서도 여성의 육체를 담보로 한 상업적 이벤트에 서슴없이 나서고 있는 방송사들을 비판했다. 실제로 국내에서는 매년 이러저러한 명목으로 100여개가 넘는 미인대회가 개최되고 있다. 명목이야 갖가지 지방 특산물들로 다양하지만 ‘미인’을 가름하는 기준은 미스코리아대회의 그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각종 미인대회가 사실상 미스코리아대회의 예선전으로 기능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전국적으로 미스코리아대회를 준비하는 젊은 여성들의 인구는 대략 1만여명을 넘어서고 있으며 참가자는 해를 거듭할 수록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미스코리아대회 참가인구의 증가추세를 접한 여성단체 관계자는 “우리나라 여성들의 낮은 사회적 지위가 반영된 단적인 예”라고 개탄한다. 사실상 미스코리아를 지원하고 있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젊은 여성들은 재수, 삼수를 감수하고 수천만원의 ‘준비비’를 지출하며 등극을 꿈꾸고 있다. 이들에게 미스코리아 대회는 ‘일확천금’을 안겨줄 황금거위인 것이다. 이러한 미스코리아대회를, 지상파 방송사가, 매년 여성단체들이 중계방송에 대한 강력한 항의를 거듭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도 주말 황금시간대에 생중계로 편성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일차적으로는 높은 시청률을 들 수 있다. mbc 편성실의 한 관계자는 “매년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다는 것은 결국 많은 시청자가 이를 보고싶어 한다는 사실을 입증한다”면서 “방송에서 교양적 내용만을 기대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미스코리아대회의 중계방송은 항상 높은 시청률을 기록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 대해 여성계에서는 “방송내용의 역기능에 대한 고려 없이 시청률만 높다면 어떤 내용이든 방송할 수 있다는 것이냐”고 반문한다. 다음으로 제기될 수 있는 것은 외부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방송사 내부에서는 이에 대한 문제제기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실제로 대다수의 mbc 종사자들은 찬반을 떠나 mbc가 미스코리아대회를 중계방송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대해 무관심한 반응을 보였다. 매년 해오던 것이니 자연스럽게 편성된 것이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kbs에서 중계를 맡았을 때도 대동소이했으리라 추정되며, 사실상 본질적으로 ‘유사’행사인 수퍼엘리트 모델 선발대회를 중계하는 sbs라고 사정은 다를 것 같지 않다. 구성원의 대부분이 남성인 방송사의 인적구성을 비추어볼 때 이러한 반응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 모른다. 그러나 미스코리아대회의 ‘거국적’ 특성과 그 파급효과를 고려할 때 이에 대한 충분한 숙고가 필요하다 하겠다. 예외적으로 대구mbc의 경우 지난 91년 ‘사회적으로 지탄받고 있는 미인선발대회를 국민의 재산인 전파를 통해 송출해야 할 어떠한 명분도 찾을 수 없다’며 당시 pd들이 강력한 반발로 미스코리아대회의 중계방송을 저지한 바 있다. 이러한 가운데 지난 15일 문화일보홀에서 열렸던 안티미스코리아페스티벌의 성공적 개최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안티미스코리아페스티벌은 여성의 아름다움을 수치화, 규격화, 획일화하는 미스코리아대회 ‘폭파’에 동의하는 모든 사람들의 축제 한마당이었다. 10세 어린아이부터 89세 할머니까지, 모든 여성들이 저마다 자신의 아름다움을 선보이는 이날 축제의 본상 역시 미의 우열을 가름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웃자상, 놀자상, 뒤집자상 등이었다. 안티미스코리아페스티벌 추진위원장이자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의 발행인이기도 한 김민숙씨는 “행사장의 열기에 가슴이 뭉클했다”면서 “미스코리아대회가 없어지는 그날까지 안티미스코리아페스티벌은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사실상 미인대회 자체가 큰 문제는 아니다. 특정한 미의 기준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이를 통해 자신의 미를 뽐내고 싶은 사람들과 모여 행사를 치루는 데야 뭐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문제는 미인대회를 통해 설정된 미의 기준이 지상파 방송을 통해 절대적 기준의 위치를 점하게 되는 데 있다고 하겠다. 아직도 우리 방송은 공기(公器)로서 자신의 역할과 기능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남은지>|contsmark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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