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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의 살림살이가 많이 어려운 모양이다. 지난달 에든버러(Edinburgh) TV 페스티벌에서 있었던 BBC의 간판 앵커 제레미 폭스만의 발표가 ‘내부사정 폭로’에 가까운 내용이라며 세간에 화제가 되고 있는걸 보면 말이다. 내용을 보면 사실 별건 아니다. 2004년 허튼 보고서 사건 이후 시작된 BBC의 시련이 아물어 가기는커녕 아픔을 더해 가고 있다는 이야기다.

제레미 폭스만이 BBC의 어려운 살림에 대해 한탄스런 발표를 쏟아 내는 동안 일단의 BBC직원들은 페스티벌 참석자들을 대상으로 BBC2와 BBC4에서 방송되는 시민참여 정규 다큐멘터리 <스토리빌(Storyville)>의 60% 제작비 삭감에 반대하는 전단지를 나눠 주는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단다.

<스토리빌>뿐 아니라 BBC의 고위 혹은 하위 직원들이 모두 나서 소속 부서의 예산 삭감을 막기 위한 로비의 장으로 페스티벌을 이용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한탄과 하소연으로라도 어떻게든 현실의 어려움을 비켜나 보자는 BBC의 절규가 느껴지는 행사였던 것 같다.  

사실 BBC의 아픔은 제레미 폭스만의 푸념이 아니라도 상상할 만 했다. 2004년 ‘허튼 보고서’로 정치적 일격을 당한 BBC가 제 정신을 수습하기도 전에 올 초 수신료 (겨우) 3% 인상이라는 (전혀 예기치 못한) 경제적 일격을 당했기 때문이다.  

▲BBC 건물과 스튜디오의 모습 ⓒBBC

제레미는 이날 발표에서 “지난 3년간 15%나 감소된 <뉴스나이트> (BBC의 대표적 시사정보 프로그램)의 예산이 향후 5년간 20% 이상에 이르는 추가 감소에 직면해 있다고 전하면서 프로듀서도 리서처도, 리포터도 떠나고 있고, 심지어 프로그램 자체도 날아가 버릴 지경”이라고 한탄했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탐사 프로그램 <파노라마>의 저널리스트 존 스위니(John Sweeney)는 “빈 책상들, 단기 계약직 인력조차 부족한 현실이 우리의 위기를 대변해 주고 있다”고 전했다. BBC의 어린이 프로그램 편집장 리차드 데버렐(Richard Deverell)은 전 부서가 향 후 5년간 5%의 삭감을 요청 받고 있다고 하소연 했다.

이런 모든 현상들은 2년 전 이미 허튼 보고서 사건 이후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었다. 그레그 다이크의 사임과 함께 BBC의 수장이 된 마크 톰슨은 취임과 함께 대대적인 예산 삭감과 인력의 정리 해고를 선언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2년이 지난 지금 BBC의 전 부서가 죽겠다고 곡소리를 내고 있는 상황에서도 그가 놓는 대안엔 변함이 없다. “돈 없다. 인력 줄이고 적게 만들자.”

그래, BBC가 힘들다. 힘들어서 아우성을 친다고 하자. 진짜 문제는 그런 BBC의 아우성을 보는 방송계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는 거다. 진지하게 봐주고 고민하기 보다는 시기와 질투로 “넌 좀 더 당해도 돼” 한다는 거다. 아니 좀 더 잔인하게는 “엄살이 좀 심한 거 아냐?” 한다는 거다. ‘수도 없이 늘어나는 채널과 한정된 광고시장’ 속에서 치열한 밥그릇 싸움이 일상화 된 방송사나 방송인들에게 BBC 같은 존재가 곱게 보일 리는 없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 영국의 방송 언론이 이성을 살짝(?) 잃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BBC의 위기’가 곧 자신들에게도 다가 올 ‘방송의 위기’라고 간파하지 못하는 영국의 방송. ‘방송의 위기’를 이야기 하면서 BBC의 위기를 강 건너 불 보듯 하는 그 아둔함은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 외부의 적보다 무서운 것이 내부의 적이다. 방송의 선진화를 이끌어온 영국이 (내부에서) 방송의 위기를 앞당기는데도 선봉에 서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

취재 중에 만난 한 프로듀서가 이렇게 묻던 기억이 난다. “이제 정말 좋은 대학 나온 똘똘한 사람들은 방송일 안 한다. 한국은 어떠냐?”      

                  

런던 = 장정훈 통신원 /  KBNe-UK 대표, www.kbn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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