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지사지(易地思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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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지사지(易地思之)
  • PD저널
  • 승인 2007.09.13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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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생산적인 토론이 가능한가에 달려 있다. 이해가 서로 충돌하는 경우 강압이 아닌 민주적 방식으로 조정이 되려면 토론이 가능해야 한다. 토론을 통해 이해 당사자가 각각 어느 정도 만족할 만한 합의를 도출하려 할 경우 양측이 모두 역지사지의 자세로 임하지 않으면 어렵다는 것이 우리 모두의 경험일 것이다.

이른바 ‘취재지원 선진화 시스템’ 시행을 둘러싼 논란이 몇 개월 째 계속되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새로운 취재 시스템에 대해 정부는 ‘선진화’된 시스템이기 때문에 언론 개혁의 차원에서 도입해야겠다는 것이고 기자 집단 측에서는 기자들의 자유로운 취재를 제한하고 통제하는 제도이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국정홍보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이번 시스템 도입의 논리와 배경, 그리고 기자 집단이 반발하는 이유에 대한 정부 측의 해석 등 수많은 글을 싣고 있다.

반면 기자 측은 기자협회 특위 및 출입처 기자들의 연이은 성명서 발표, 전국 언론사 편집 보도국장단(55개 언론사 중 47개 참가) 성명 등으로 대응하고 있다. 양측은 “피할 수 없는 숙명”과 “전면 백지화”를 각각 주장하고 있다. 정부와 기자 집단 간에 물밑 대화가 몇 차례 오갔다는 얘기도 있었으나 가까운 시일 내에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이런 가운데 언론개혁시민연대(이하 언론연대)가 어제 기자회견을 갖고 취재시스템 개편에 관한 입장을 발표했다. 이번 안은 브리핑룸과 기사송고석 통합은 조건부로 동의하되 언론취재를 제약하는 요소들은 개정 또는 전면 철회하라는 것이다. 언론연대 참가 단체 중의 한 언론 현업단체로서 이번 안을 마련하는데 참여한 PD연합회는 PD연합회 나름의 입장을 가지면서도 역지사지의 자세를 견지하고자 했다. 언론연대는 48개의 언론 현업단체와 시민단체들이 연대체를 이루고 있다. 여러 단체가 모여 논의를 하다 보면 처한 입장과 상황에 따라 의견이 다양할 수밖에 없다. 수차례 회의를 거쳤지만 결국 언론연대의 안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은 각 단체들 간에 역지사지의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이번 안을 발표하면서 우리는 정부와 기자 집단에도 각각 역지사지의 자세를 역설하고 싶다. 양측은 각각 상대방의 주장 중에서 일리 있는 주장에는 귀를 열고 합리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정부 측 안에는 정부의 주장대로 ‘유럽식의 선진화’된 요소도 담겨 있지만 ‘국가 권력이 언론개혁을 시도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시각에서 볼 때 그리고 출입 기자들 측에서 볼 때 언론을 통제하려 한다는 인상을 주는 조항들이 여러 개 있었던 게 사실이다. 반면 기자들은 기자단과 기자실의 감시 견제 기능을 주장하고 있는데, 일면 타당한 주장일 수 있으나 지금까지의 관행과 특권을 유지하려 한다는 외부의 시각이 계속 있어 왔던 게 사실이다.

올 하반기는 남북정상회담과 대선이 있는 역사적으로 매우 주요한 시기다. 이런 시기에 이 문제를 가지고 소모적 갈등을 계속해서는 안 된다. 하루 빨리 마음을 열고 생산적인 대화를 통해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지사지의 자세가 기본이다. 그 과정에서 이번 언론연대가 마련한 안이 진지한 논의의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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