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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교회가 가르쳐 준 것
김환균-MBC 교양제작국 PD
  • 승인 1999.05.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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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언론의 치욕의 날지난 5월 11일은 한국 언론사상 치욕의 날로 기록될 만하다. 의 방송에 불만을 품은 ‘만민중앙교회’ 신도들이 문화방송의 주조에 난입, 방송을 물리력으로 중단시킨 것이다. 그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언론의 자유가 허망하게 유린당했다는 사실과, 국가 안보상 엄중하게 경비되어야 할 국가 주요 시설이 일시적이나마 점거, 장악되었다는 사실에 온 국민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사건에 대한 시각은 한 광신적 종교 집단과 언론사의 싸움으로 파악하려는 입장이 지배적인 듯하다. ‘언론의 자유’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조차도 ‘언론의 자유를 유린한 광신도 집단’이라는 데서 더 나가지는 않는다. 즉, 한 방송사 대 한 종교 집단의 대결 구도로만 바라본다는 것이다. 매우 중요한 다른 측면, 언론의 자유라는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그것을 제한하려 하는 또 다른 시도가 있다는 사실이다. 법원의 ‘방영금지 가처분’이 바로 그것이다.방영금지 가처분만민교회의 방송사 침탈은 사건의 성격이 비교적 명확해 보인다. 명백하게 국가의 공권력에 대한 도전이며, 그 책임 여부보다는 책임의 경중이 문제가 될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만민교회에 대한 논리적인 대응은 이미 끝났다고 말할 수 있다. 싸움이 남아있다면, 그 싸움의 대상은 더 이상 만민교회는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인가?만민교회 사건을 보도한 기사들을 보자. 은 ‘법원의 판결에 따라’ 프로그램의 내용을 수정해서 방송했음에도 불구하고 만민교회 측이 물리력으로 저지했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이 기사는 거짓은 아니지만 사태의 본질을 간과하고 있다. 왜인가? 이 ‘법원의 판결’에 대해서 아무런 불만도 갖지 않았다, 또 수정된 부분은 본래부터 무리한 내용이었는지 모른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정확한 표현은 법원의 판결에 문제가 많음에도, 혹은 동의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일차적으로 법원의 가처분 결정을 존중해 내용을 수정했다는 것이다. 방영금지 가처분이 왜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는가?에 내려진 가처분 결정은 크게 세 가지이다. <만민중앙교회>의 당회장인 이재록 목사의 이단시비는 방영해도 좋다, 그에 관한 성추문 부분은 방영해서는 안 된다, 도박 및 신도들의 집단 연대 보증 부분은 방영해도 좋다. 2가지는 방영 가(可), 1가지는 방영 불가(不可)이다. 이 처분을 은 ‘받아들여’ 성추문 부분은 대폭 삭제하고 방영을 했다.여기에서 법원의 판결이 옳은가, 그른가는 나중 문제이다. 그 판결의 형식이 문제이다. 즉, 이것은 안 되고, 저것은 되고… 마치 그 옛날의 보도지침과 같은 형식이다. 언론의 사전 검열이 합법적인 형태로 살아난 게 아닌가 생각될 정도이다. 좀더 상세히 살펴보면, 만민교회 측은 이러저러한 이유로 이 방영되어서는 안 된다고 가처분을 신청한다, 이에 대해 은 문제가 된 사안에 대해 소명 자료를 낸다. 양측의 주장을 놓고 법원이 판결을 내린다. 방송사 입장에서 보면, 법원의 허가를 득한 후에야 방송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순간에 어떤 권력의 간섭으로부터도 자유로와야 할 언론은 가장 심한 상처를 입는다. 방송 프로그램의 내용을 허가받아야 하다니 말이다.물론 여기에는 이런 반론이 가능하다. 언론의 자유가 오보의 자유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만일 오보(의도적이고 악의적인 왜곡까지를 포함해서)로 인해 피해를 보는 경우는 어떻게든 막아야 하지 않는가. 백 번 옳은 이야기다. 책임있는 언론이라면, 우선 스스로에게 철저함으로써 오보의 가능성을 배제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런 경우에는 언론 중재 이외에 언론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언론사의 잘못에 대한 손해배상은 그 액수가 엄청나다. 거액의 손해배상 외에, 그 사실이 공표됨으로써 언론의 생명인 신뢰성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는다. 그럼으로써 언론에 의한 피해와 언론사가 치른 혹독한 대가는 서로 갈음한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언론사의 거증책임판결문은 성추문에 대한 내용의 방영을 금지하면서, 성추문에 관한 사항은 ‘객관적인 자료의 뒷받침도 없이 선뜻 믿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표현에 담긴 함의는, 성추문에 대해 방영하려거든 그것이 의혹 수준이어서는 안 된다, 즉 그 의혹을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입증의 책임이 방송사에 있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 등의 경우와는 반대된다. 언론에 의해 의혹이 제기된 공인은 그 언론사를 문제삼기 위해서는 자신이 그 의혹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점을 입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를 다른 경우에 비춰보면 그 폐해는 명백해진다. 율곡사업에 대한 의혹은 그 의혹에 대해서 언론사가 입증할만한 명백한 근거를 확보하지 못하는 한, 보도해서는 안 된다는 식이 이 판결의 취지이다. 이는 언론의 사회적 책무이자 사명이기도 한 사회의 감시 기능을 무시하고 파괴하는 것이다. 법의 판결이 현실 논리를 대변한다면, 언론의 판단은 많은 경우 현실을 초월한 이상을 지향하기도 한다. 법의 판결을 언론이 비판할 수 있는 근거는 바로 거기에 있다. 진짜 싸움싸움은 남아있고, 남은 싸움이야말로 중요한 싸움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싸움의 진정한 대상은 그런 가처분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는, 언론의 자유를 제약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는 법과 제도다. 그것이 만민교회가 가르쳐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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