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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2명의 PD가 ‘2007 남북정상회담’ 취재·촬영을 위해 방북길에 올랐다. PD가 남북정상회담 방북단에 합류, 방북 취재를 하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에 2명의 PD 2명이 방북단에 합류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또한 주지하다시피 북한에서의 촬영은 여러모로 제약을 받기 때문에 그 성과를 속단하기에는 이르다. 그럼에도 왜 이번에 PD들은 남북정상회담 방북단과 동행하려 했을까?

이번 방북취재단은 지난 2000년 남북정상회담 때의 수준인 50명이다. 이는 청와대 브리핑룸 출입 기자가 지난 2000년의 100여명에서 현재의 300여명으로 3배나 늘어난 점을 감안할 때 매우 적은 숫자이나 북측은 그 이상을 받아들이려 하지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언론사 간에 치열한 경쟁이 있었고 갈등도 일부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 동안 청와대 브리핑룸에 출입해 오지 않았던 PD들이 취재단에 포함되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몇몇 프로그램 담당 PD들은 지난 8월 초순 남북정상회담 발표가 있자마자 다큐멘터리 제작 준비에 들어가면서 여러 채널을 통해 방북 취재 가능성을 타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PD연합회와 함께 주무부처에 방북단 합류를 적극 요청했다. 그 이유는 방북 취재단의 방송 풀기자단이 제작 방송하는 뉴스 외에 PD들이 만드는 밀착 다큐멘터리도 꼭 방송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2000년의 정상회담 때처럼 풀기자단이 부지런히 보내오는 많은 영상과 취재물들은 그 자체로 시청자 국민에게 중요한 소식이다. 하지만 기자와 PD가 만드는 각각 만드는 뉴스와 다큐멘터리는 분명히 차별화 된다. PD들은 시청자 국민에게 +알파를 제공하고 싶은 것이다. 즉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현상과 팩트 위주의 각종 단신들 속을 관통하는 역사적 의미를 통찰하고 이를 소구력 있게 보여 주는 다큐멘터리를 보여 주고 싶은 것이다.

그것은 이번 남북정상회담이 너무도 중요하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그것은 과거 한국현대사의 비극과 현재 한국 사회가 갖고 있는 여러 가지 모순의 출발점이 바로 한반도의 분단과 전쟁 그리고 이후의 적대적 대립에서 비롯되었다는 역사 인식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인식 때문에 PD연합회는 한국기자협회 및 언론노조와 함께 언론 3단체 공동으로 이미 지난 1995년 ‘평화통일과 남북화해·협력을 위한 보도·제작 준칙’을 제정, 선포하였고 이후 이를 지키려 노력했던 것이다.

사실 지난 2000년 남북정상회담과 그 이후 이산가족상봉 때 많은 PD들이 그런 역사 인식을 바탕으로 프로그램 제작에 임했었다. 당시 PD들은 방북단에 포함되지 못했다. 그리고 서울에서의 이산가족 상봉 때도 정식 취재단에 합류할 수 없었다. 하지만 PD들은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기발한 착상과 열정으로 괜찮은 다큐멘터리들을 만들어 냈었다.

다행히 이번에는 2명의 PD가 방북단과 동행하면서 역사의 현장을 목격하고 그 생생함을 직접 카메라에 담을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뚜렷한 역사 인식을 가지고 그 현장을 응시할 것이다. 물론 북한에서의 취재·촬영에 한계가 많고 PD들이 접근할 수 없는 현장도 많음을  알고 있다. 따라서 2명의 PD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할 수 없다. 이번 PD의 방북은 첫 물꼬를 트는 의미가 더 클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또한 그들이 온갖 아이디어과 순발력 그리고 열정으로 그 한계를 넘어서려 할 것임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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