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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영 〈KBS 스페셜〉 PD

take if off!(그것 벗어!) 존슨이 내게 던진 첫 마디는 그것이었다. 이곳에 머무는 2주일 내내, 존슨의 나라는 불친절했다. 불친절하다기보다는 의심이 많았다. 그리고 의심이 많다는 것은 겁먹고 있다는 뜻이다. 나는 막 공항검색대를 통과한 참이었다. 신발까지 벗은 상태였는데, 혁대 푸는 것을 깜빡했다. 내 혁대를 가리켰던 검지 끝으로 존슨은 나를 검색대 뒤로 돌아 세워 다시 통과하도록 지시했다. 내 몸은 마법에 걸린 사람처럼 손가락 끝을 따라 움직였다. 사실 나는 검색대 옆에서 땀에 젖은 와이셔츠 차림으로 험상궂은 표정을 하고 있는 이 백인남성의 이름을 알지 못한다. 존슨의 나라는 내 생애 처음이었다.

호놀룰루 입국심사대 이래로 여러 명의 존슨들은 우리 일행을 괴롭혔다. 취재비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와이 필름 어소시에이션의 허가가 없다는 이유로 입국장에서 한 시간 동안 억류되었다. 민주당의 대선후보 오바마의 선거캠프에 두어 달 전 넣어두었던 취재요청은 현지에 와서도 전부 거절되었다.

어딜 가나 보게 되는 거대한 일회용품 쓰레기와 물반 고기반 식으로 거리를 채우는 고도비만환자들, 대낮의 거리에 아무렇게나 켜져 있는 가로등도 나를 괴롭혔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가끔 먹게 되는 느끼하고 푸짐한 부대찌개가 왜 존슨찌개인지를 깨달았다. 그것은 하나의 직관이었다. 이것이야말로 존슨이다. 이것이 존슨이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여전히 이 거대한 존슨들의 과소비로부터 흘러나오는 햄과 소시지가 세계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검색대를 통과했다. 이번엔 경고음이 없었다. 순간, 존슨이 내 여권을 건네주며 말했다. Happy Birthday…. 나는 멈칫 했다. 여권에 쓰여 있는 대로, 다음날이 바로 내 생일이었다. 고개를 들었을 때 존슨의 자연인으로서의 미소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러나 나는 분명히 보았다. 순진하게 입 꼬리가 올라간 존슨의 얼굴.

〈무탄트 메시지〉를 보면 호주인디언들이 생일을 정하는 방법에 관한 언급이 있다. 그들은 태어난 날을 기념하는 대신 자신의 영혼이 성장하는 날을 축하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오늘 바로 내 영혼이 한 뼘 성장했어!’하고 선언하고는 마을사람들을 집합시키는 걸까?

역주행해서 날짜변경선을 넘은 비행기의 속도만큼 시간은 뒤틀어졌다. 비행기가 알래스카를 지날 때의 현지 시간은 여전히 같은 날이었다. 그리고 날짜변경선을 지나자 갑자기 다음 날 오후 1시가 되었다. 인천에 도착하니 오후 5시. 24시간이었어야 할 내 생일은 겨우 7시간 남아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어둑해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휴대폰을 켜니 얼마 안 되긴 하지만 생일축하문자가 몇 건 와 있었다. 해피 버쓰데이, 그러고 보니 존슨에게 받은 인사는 올해 첫 생일 축하였고 내 생애 처음으로 외국인에게 받은 축하였다. 또 하나 잊은 것이 있었다. 나는 지구 반대편에서, 순진하게 입 꼬리가 올라간 존슨의 미소에 열 아홉시간 만에 화답한다. 어쩔 수 없이 나의 인사는 싸우스 코리아의 콩글리시가 될 것이다. 쌩유, 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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