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장호순 교수의 신문·방송 겸영 주장의 허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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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수현 /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국장

전경련의 규제개혁 보고서가 물의를 빚고 있는 가운데 순천향대 장호일 신방과 교수가 중앙의 지면에 “신문방송 겸영 허용할 때”란 기고문으로 족벌신문과 대기업의 방송진출 시도에 첨언을 하고 나섰다.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언론기업이 민주사회의 언론자유 보장을 악용하여 시장을 독과점하는 것을 막기 위해 국가가 언론시장에 신문방송 겸영 규제형태로 개입하는데 이것이 오늘날 신문과 방송이 경쟁력을 잃게 만든 주범이다.

이미 신문과 방송이 여론형성의 독점적 지위를 잃었기 때문에 겸영을 허용할 때가 되었고, 겸영은 언론기업의 경영효율성과 수익기반을 넓혀 언론의 독립성을 회복시키고 다양성을 증진 시키며 수용자에게 다양한 매체선택권을 부여하고 침체된 언론 산업에 활력소가 될 것이라 했다.

짚어보자. 지상파방송과 일간신문의 위기를 상호 겸영규제에 돌리는 것은 근거 미약한 논리의 비약이다. 지상파의 시청점유율과 광고매출 저하는 뉴미디어가 출현하는 미디어 구조변동환경에서 당연한 현상이며, 일간신문의 쇠락은 미디어가 종이 신문에서 방송과 온라인 매체로 옮겨가는 시대적 결과이며, 증면, 무가지 경쟁과 인터넷 포털에 대책 없이 뉴스를 공급하는 잘못을 추가로 저질렀기 때문이다.

유료?무료방송 차이를 두지 않는 방송정책이 지상파의 위기를 초래했으며, 족벌사주의 전횡과 소유?지배구조 폐단, 엄청난 무가지 살포와 경품제공 등 불공정 거래가 신문의 몰락을 재촉하는 원인이다. 정확한 원인 분석 없이 단순히 매체 위기 원인을 겸영규제에 돌리는 것은 전문가의 진단이 아니다.

방송과 신문이 독점적 여론형성 지위를 상실한 이유로 겸영 허용을 주장하는 것도 착각이다. 신문방송 겸영 규제 이유는 예나 지금이나 그 이유가 다르지 않다.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 신문과 지상파방송은 아직도 한국사회의 여론을 주도한다. 방송은 여전히 40%가 넘는 시청점유율 차지하고 있고, 인터넷 포털에 고전하는 신문도 10%에 가까운 미디어 시장을 점유하고 있다. 포털의 뉴스는 대부분 신문과 방송이 공급한다. 결코 방송과 신문이 여론과 대중문화 형성의 독점적 지위를 상실 했다고 할 수 없다.

신문법과 방송법은 대기업 및 계열사, 일간신문, 뉴스통신사와 지상파방송, 종합편성 및 보도전문방송의 소유?겸영을 금지하고 있다. 겸영 허용을 전제한 한국의 경제 현실에서 방송을 탐할 신문은 몇몇 족벌 신문사 밖에 없다. 방송법이 여론형성과 대중문화를 좌우할 가능성이 많지 않은 방송매체에 대해서는 상호 겸영을 보장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이들의 목적은 지상파와 보도방송에 진출하여 신문과 방송을 이용한 통합언론권력의 확대다. 신문시장은 조?중?동이 75%를 점유하고 있다. 수구보수의 천편일률적인 논조를 퍼뜨리는 이들의 신문방송 겸영은 방송과 신문을 통해 동시에 동일한 논조로 사실을 왜곡하고 편향된 여론을 몰아갈 개연성이 높다.

또한 겸영이 경영효율과 수익기반을 넓힌다는 것은 산업적 사고방식에도 못 미친다. 부실기업 신문과 퇴락하는 방송이 합쳐 같이 망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언론을 효율과 수익에 연관 짓는 것은 시장경쟁을 의미한다. 언론시장은 자본의 이익에 봉사하여 가진 자의 이익을 위해 여론과 대중문화를 조작하는 등 자본권력에 예속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겸영은 여론 다양성을 보장하고 수용자의 매체선택권을 부여해주지 않는다. 다양성의 보장은 서로 성격이 다른 자본이 매체를 운영하는 공급 다양성도 함께 해야 한다. 한 가지 자본이 점유한 매체가 쏟아내는 콘텐츠는 다양성도 수용자의 매체선택권도 확보해 주지 못한다. 작년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따라 다원주의를 전제로 하는 민주제의 기초인 여론의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라도 이종매체간 겸영은 규제해야한다.

외국의 사례를 들어 겸영허용을 주장하는 것도 부적절하다. 겸영을 허용하는 외국은 무책임한 보도와 정치?자본권력에 흔들리지 않는 민주적 통제가 가능하고, 우리와 같이 족벌사주가 신문을 장악하지도 않으며, 몇 개의 신문과 방송이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시장이 형성되어 있지도 않다. 언론이 정치권력과 상업자본의 주구노릇을 한 경험을 가진 한국과는 상황이 다르다.

외국의 사례는 참고일 뿐이며 원용하기보다는 언론의 민주적 질서와 통제 가능한 사회를 만드는데 힘쓸 일이다. 얼치기 산업론자들이 언론을 산업으로 효율과 경쟁력에 매몰되어 진단하기 때문에 회생의 길이 보이지 않는다. 언론을 민주사회 도구로서, 문화로서 인식할 때 방송과 신문의 회생을 위한 실효적인 정책이 나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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