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간의 네팔 여행에서 가장 가슴에 와 박혔던 순간을 꼽으라고 한다면, 친구네 집 3층 옥상에서 바라봤던 어느 오후의 풍경이었다. 공중 화장실인 줄 알았던 수십 개의 문 속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삶을 살아내고 있었다. 그들이 바로, 말로만 듣던 불가촉천민이었다.
이미 법적으론 없어진 카스트제도건만, 삶을 짓누르는 관습은 달라진 게 없어서 견고한 벽을 깨지 못한 채 그들은 웅크리고 있었다. 한국에 와 있는 이주노동자들을 만나면서 그들의 삶이 고단하고 스산한 줄만 알았지, 그들 뒤에 숨겨진 또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게다.
침이 땅에 떨어질 까봐 목에 오지그릇을 매달고 다녀야 하며, 더러운 발자국을 지우기 위해 허리춤에 빗자루를 매달고 다녀야 하는 사람들. 카스트 제도 안에도 못 드는 불가촉천민, Untouchable. <신도 버린 사람들>은 불가촉천민들의 운명을 거스르는 투쟁에 관한 기록이다. 3대에 걸친 주인공들이 옛이야기 하듯 조근조근 풀어낸 책이지만 사실, 내용은 급박하다. 삶을 걸고 투쟁한 사람들이 있고, 그래서 카스트 제도를 이만큼 무너뜨릴 수 있었던 역사에 대한 적나라한 기록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동안 운명을 건 용기가 얼마나 무서운지 느꼈고, 스스로에게 그런 용기가 있는지 되돌아보았다. 사회적 약자를 고민하겠다던 초심을 떠올렸고, 나의 시선은 진정 어디를 향하는지 반성했다. 내 위치가 초라하게 느껴질 때, 삶에 대한 용기가 생겨나지 않을 때, 그리고 운명을 거스르는 거대한 힘을 느껴보고 싶을 때면 언제든 다시 꺼내 볼 내 책장 안의 책이다.
박유진 CBS TV본부 PD
<신도 버린 사람들>은?
불가촉천민에서 세계 경제를 좌우하는 지도자가 된 나렌드라 자다브가 지은 책. 자다브는 카스트제도의 굴레에서 벗어나 1억 7천만 불가촉천민의 ‘살아있는 영웅’이 됐다. 자다브 가족의 3대에 걸친 기적과 감동의 실화를 통해 인도의 역사, 종교, 신분, 생활상 등을 생생하게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