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신문법 폐지는 언론 ‘사망 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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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문화관광부의 인수위 업무보고를 전후해 신문법이 바쁘다. 갈 곳이 많다. ‘관(棺)’으로 들어가라는 주문에서 박물관으로 가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여기저기 돌릴 것 없이 깔끔하게 ‘사망선고’를 내리기도 한다.

이명박 정부의 ‘신문법 폐지’라는 그야말로 노골적인 공약 앞에서 보수신문이 예언하는 신문법의 운명은 집행을 기다리는 사형수의 처지와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 태어난 지  삼 년도 안된 법률이 그 사이 얼마나 큰 죄를 지었기에. 국가보안법도 이순(耳順)을 맞는 나라에서 고민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신문법을 박물관에 보낸다는 동아일보 9일자 유일상 교수의 시론을 들여다보니 ‘신문이 여론을 독과점한다는 잘못된 전제 아래, (국가가)신문 자유의 핵심인 편집권에 개입할 수 있고, 신문시장에도 상당한 압력을 행사할 수 있게 한 후진적인 법제’가 세 살 박이 신문법의 혐의인 듯하다.

과연 그런가. 신문법이 ‘신문이 여론을 독과점한다’는 전제를 갖는다는 유 교수의 주장은 틀렸다. 정확하게 신문법의 전제는 ‘독과점 신문의 여론 독점’이라고 해야 한다. 헌법재판소가 6.29 결정에서 밝힌 대로 “신문의 독과점 또는 집중화 현상과 경향보호가 결합할 경우 정치적 의견의 다양성을 전제로 하는 다원주의적 민주주의체제에 중대한 위협이 될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2006년 국정감사에서 문광부가 발행부수를 기준으로 추정한 조중동의 시장점유율은 75%를 넘는다.

전국단위 10개 중앙일간지 발행 추정부수 861만 3천부 중 649만부가 조중동이라는 것이 문광부의 발표다. 이처럼 명백한 독과점상황에서도 신문법 따위는 사망하거나 박물관으로 가야한다는 주장은 정부에게 독과점의 주체인 신문자본, 즉 족벌의 논조, 경향을 보호하는 전근대적 사명이나 봉사하라는 요구다. 터무니없다. 한 술 더 뜨는 것은 우리 신문법이 국가의 편집권 개입, 신문시장 압력행사를 가능케 한 ‘후진적인 법제’라는 모함이다.

현대적 의미의 신문 자유가 국가로부터의 자유를 추구하던 시대는 지났다. 신문자유의 문제의식은 최근의 시사저널 사태나 중앙일보의 X파일 사태를 통해 확인한 것처럼 광고주의 압력으로 대표되는 자본으로부터 언론의 자유를 지키는 문제, 족벌과 자본이 지배하는 언론사 내부의 규제로부터 기자의 양심을 보호하는 문제로 발전한지 오래다. 그래서 우리의 헌법과 헌법에 근거한 신문법 역시 국가로부터의 자유라는 철 지난 고민에 머물지 않는 것이다. 헌법재판소가 “통신·방송의 시설기준 법정주의와 나란히 신문기능 법정주의를 정한 것은 우리 헌법이 방송뿐만 아니라 신문에 대하여도 그 공적 기능의 보장을 위한 입법적 규율의 가능성을 예정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말한 그대로다.

이쯤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전 방위로 진행되는 신문법 죽이기의 목표를 생각해보자. 핵심은 다름 아닌 국가의 역할이다. 신문법을 살려두면 제아무리 이명박 정부라도 꼼짝없이 신문시장 정상화에 나서야 하고, 신문다양성을 보장해야하며, 결정적으로 여론의 독과점을 막아야 한다. 신문법이 존재하는 이상 정부는 절대 이러한 책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는 신문법이 언론자유를 선언한 헌법 21조의 그림자이기에 그렇다. 신문법이 담고 있는 헌법정신의 실체다. 헌재의 6.29 결정을 다시 한 번 정독하자.

족벌과 재벌이 신문법을 살려놓고 무슨 수로 신문시장의 독과점을 유지할 수 있으며 신문법을 살려놓고 무슨 수로 방송의 강력한 공영성을 무력화 시킬 수 있을 것인가? 뒤집어 말하면 신문법이 담고 있는 사회적 합의의 폐지야 말로 족벌과 재벌에게 자본만능주의가 지배하는 미디어시장을 확보하는 지름길이며 단기적으로 언론 공공성을 보장하는 헌법의 기능을 무력화시키는 손쉬운 방법인 것이다. 그래서 신문법이 중요하다. 신문법, 신문법에 담긴 사회적 합의를 잃는 순간 언론의 공공성을 보장하는 모든 장치도 함께 그 파괴력에 노출된다. 조중동의 신문법 죽이기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다.

백정현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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