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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태산이라더니 정말 방송위원회의 내홍과 파행이 설상가상입니다. 방송위와 별 상관없는 사람이 보자면 점입가경으로 비치기도 하겠지만, 우리 국민 가운데 방송위와 별 상관없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이희용[연합뉴스 엔터테인먼트부장]

방송위 노동조합은 4월 25일 '방송위원들의 저질 행보의 끝은 어디인가'란 자극적인 제목의 성명을 발표해 “거침없는 폭언 작렬, 예측불가 돌출행동, 초특급 눈물연기, 변화무쌍한 인간관계, 끝없는 반전과 암투, 노령이 무색한 느와르… 드라마 홍보 문구처럼 들리는 이 말들은 9개월 여간 50회에 걸쳐 개최된 방송위 전체회의에 대한 평"이라고 신랄하게 꼬집었습니다.

 

물론 방송위 노조가 바라보는 시선이 올바른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고, 일부 표현 방식이 적절한지에 대해서도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오죽하면 이랬을까' 하는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한 다리 건너 전해들은 저도 기가 막힐 지경인데, 직접 회의석상에서 수시로 방송위원들의 태도를 목격하고 이들의 지시를 받는 사무처 직원, 다시 말해 노조원들의 심경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지요.

 

방송위원들이 대립되는 정파에서 추천을 받은 데다 출신과 개성도 다양해 출범 초기 한동안은 삐걱거릴 수밖에 없었다지만, 취임 열 달이 다돼가는 시점(두 위원은 중간에 교체돼 각각 2006년 9월과 11월에 들어왔지요)에서도 의견 조율의 노하우와 관행을 쌓아가기는커녕 위원 간에 인간적인 불신과 반목까지 드러내며 시쳇말로 '갈 데까지 간' 모습을 보이니 노조에서도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하다'는 반응이 나온 모양입니다.

 

노조 성명에 따르면 의결사항 9개와 보고사항 7개 등 16개 안건을 처리하기 위해 열린 4월 24일 전체회의에서 임동훈 위원은 당초 회순에 없던 윤리위원회 안건을 논의하자고 주장하고 나섰고, 이를 두고 격론을 벌이다 일부 위원이 회의장을 떠나 의결정족수(9명 중 6명 이상) 부족으로 산회됐습니다. 오후 열린 SO 재허가 심사도 임 위원은 불참한 채 걱정스럽게 진행돼 사무처 직원들은 감당하기 힘든 충격을 받았다네요.

 

이에 앞서 유관기관 임원 선임, 방송통신 융합, FTA 협상 대응, 경인TV 허가추천, TV홈쇼핑 승인 등 굵직한 현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방송위원들은 몇 차례 비공개 회의록 유출 소동을 겪으며 서로 불신이 극에 달했고 사무처 직원들이 지켜보는 회의석상에서 다이어리를 던지고 폭언을 퍼붓기도 했다는군요(저잣거리 다툼의 단골 수순인 '왜 반말해' '너 몇 살이야'를 연상케 하는 공방도 오갔답니다). 강동순 위원의 녹취록이 세상에 알려진 뒤에는 갈등 양상이 더 심해질 수밖에 없었겠지요.

 

이 성명 이후 열린 5월 2일 전체회의에서도 볼썽사나운 일이 벌어졌다는 이야기가 들립니다. 롯데쇼핑이 우리홈쇼핑을 인수하면서 100억 원을 출연해 설립하기로 한 방송콘텐츠진흥재단의 임원 구성안을 두고 최민희 부위원장이 특정 대학교 출신이 많이 포함됐다며 문제를 삼았고, 최 부위원장과 대립해오던 김우룡 위원도 이에 동의했다고 합니다.

 

방송콘텐츠진흥재단의 임원 구성안을 두고 방송위의 모 간부나 위원, 혹은 청와대 모 인사 등의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말도 돌고 있다네요. 다른 쪽에서는 여기에 반대하는 위원들도 다른 사람을 밀려 했다가 안되니까 트집을 잡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하더군요.

 

이날 광주시청자미디어센터 소장 임명안을 놓고도 논란이 빚어졌다고 합니다. 전국 민주언론시민연합이 이튿날 낸 논평과 이에 앞서 4월 28일 광주전남시청자주권네트워크가 낸 성명에 따르면, 당초 광주시청자미디어센터 운영위원회가 센터장 후보를 공모해 지역 주간지 대표인 이 모씨 등 2명을 추천했으나, 방송위는 적격자가 없다는 이유로 재공모를 결정했고, 운영위가 재차 이 모 씨를 1순위자로 추천했는데도 그를 제치고 2순위자인 김종일 전 KBS 광주방송총국 보도국장을 임명했다는 겁니다.

 

민언련은 "방송위 일부 위원이 '시민단체 출신이어서 미디어센터를 이끌어갈 역량이 안된다'는 주장을 폈다"며 이를 비난하는 한편 "특정 인맥 때문이라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고 주장하며 임명 철회와 재공모를 요구했지요. 여기서 거론된 '특정 인맥'도 모 대학교 출신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하네요.

 

최 부위원장은 2차 표결 끝에 김종일 전 국장이 선출되자 불만을 표시하며 회의실에서 퇴장했다고 합니다. 특정 학맥에 대한 비난 여론 못지않게 그가 민언련 사무총장과 공동대표를 맡았던 전력을 거론하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날 전체회의에서는 방송위원 대상의 윤리강령을 제정키로 하고 그 안에 윤리위원회 설치 조항을 포함시키기로 했습니다. 강동순 위원 녹취록이 불거진 이후 방송위원의 직무상 독립을 위한 신분보장 규정은 있지만 견제 조항이 없다는 지적이 나와 마련한 것이라네요.

 

윤리강령은 품위 유지, 공정성 및 청렴성, 정치적 중립, 비밀 엄수 등을 의무화하고 있고 이를 위반하면 방송위원 3인으로 윤리위를 소집해 경고와 사과의 제재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재수단의 실효성이 별로 없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고, 현재 방송위원 전체의 윤리의식 수준을 의심하며 "누가 누구를 제재하겠느냐"고 회의적으로 보기도 하더군요.

 

윤리강령 제정 논의의 계기를 만든 강 위원은 이날 전체회의에 불참했습니다. 그는 시청자불만처리위원장도 겸하고 있는데, 녹취록에서 우익 시민단체로 하여금 시청자불만을 제기하도록 권유한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시청자불만처리위원장 자리를 계속 유지하고 있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지요. 강 위원은 아직 사퇴하진 않았으나 녹취록 파문 이후 시청자불만처리위원회에 한번도 참석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방통위 설립법안 가운데 방송통신위원들의 대통령 직접 임명과 독임제 요소 강화 등에 반대해온 방송위가 오히려 정당별 국회 추천제와 합의제 행정기구의 문제점과 부작용을 극적으로 보여주며 '이적행위'를 하고 있다는 눈총을 받고 있지요.


세 번째 큰 산 넘은 방통위 설립법안

 

방송위와 정보통신부의 통합의 길도 첩첩산중입니다. 게다가 짐은 무겁고 해는 떨어지려 합니다. 그래도 막 세 번째 큰 산을 넘었습니다. 앞의 두 산은 방송통신융합추진위원회 구성과 정부의 방통위 설립법안 마련이지요.

 

방송위 전체회의 이튿날인 5월 3일에는 방송통신위원회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이 국회에 상정됐습니다. 국회 방송통신특별위원회는 이날 제5차 회의를 열어 임상규 국무조정실장으로부터 제안 설명을 듣고 문제풍 수석전문위원의 검토보고를 들었습니다. 이후 의원들의 대체토론을 듣는 도중 법률안심사소위원회 구성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양당 간사 간 합의를 거쳐 법안심사소위 위원장은 한나라당 이재웅 의원(문광위)이 맡고 같은 당의 김희정 의원(과기정위)과 정종복 의원(문광위), 열린우리당의 정청래 의원(문광위)과 홍창선 의원(과기정위), 무소속의 권선택 의원(산자위)이 참여하기로 했지요.

 

한나라당 3명, 열린우리당 2명, 무소속 1명, 그리고 문광위 3명, 과기정위 2명, 산자위 1명으로 안배가 이뤄진 셈이지만, 민주당의 손봉숙 의원(문광위)은 "원내 3당인 민주당과 협의도 하지 않은 채 법안심사소위에서 배제한 것은 국회의 관행을 무시한 것"이라고 주장해 일순 긴장감이 감돌았지요. 결국 김덕규 특위 위원장은 사과 발언을 하고 난 뒤 가결을 선포할 수 있었습니다.

문제풍 전문위원은 검토보고 순서에서 그 동안 융추위에서 논의돼 온, 또 관련 전문가들이 지적해 온 문제들을 두루 짚더군요.

 

첫째는 방통위가 대통령 소속이면서도 통신업무의 경우 국무총리의 행정감독을 받도록 돼 있다는 점입니다. 앞으로 방송ㆍ통신 융합이 가속화되면 경계가 명확히 구별되지 않는 사례가 더욱 많아져 행정감독권이 적용되는 시점에서는 그 범위에 대한 논란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지요.

 

문 위원 말대로 행정작용 및 정책집행을 담당하는 기관의 특성으로 보면 행정 각부나 총리 소속 위원회가 담당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방송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대통령 소속으로 설치하다 보니 생겨난 문제라고 여겨집니다.

 

두 번째로는 방통위 소관사무와 심의ㆍ의결사항을 분리 규정함으로써 심의ㆍ의결 이외의 사항을 위원장에게 위임해 처리하도록 한 문제입니다. 합의제 토대에 독임제 요소를 가미하는 과정에서 빚어질 수밖에 없는 시빗거리지요.

 

위원회가 의결해야 할 사항과 위원장이 직접 처리할 사항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 또 명확히 구분할 수는 있는 것인가는 쉽게 풀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문 위원은 독임제 요소를 어느 정도 도입할 것이냐에 따라 정책적 판단이 뒤따라야 한다고 지적했지요.

 

셋째로 그는 방통위가 방송영상정책과 관련된 사항을 의결할 경우 문화관광부 장관과 합의하도록 한 규정을 두고 소관을 어느 부처로 할지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이 규정은 통합방송법을 제정할 당시에도 '협의'냐 '합의'냐를 두고 논란을 빚었던 것인데, 문화관광부는 8년 전보다 영상진흥정책에 대해 더 의욕을 보이는 듯합니다.

 

대체토론에서도 의원들은 이 문제들을 집중적으로 따져 물으며 정부안을 성토하면서도 정당간, 소속 상임위간 차이를 보였습니다(IPTV에 비해서는 상임위간 대립이 두드러지지 않더군요).

 

"합의제 성격을 없애고 아예 정보통신부로 하는 게 낫지 않느냐" "정책과 규제를 분리해 정책은 독임제, 규제는 합의제로 해야 하는 것 아니냐" "부처간 기능 조정을 어떻게 할 건지 먼저 정해놓고 방통위의 틀을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니냐" "심의ㆍ의결 사항에 규정돼 있지 않은 업무는 어떻게 할 거냐" "잘못된 법임을 인정하고 거둬들인 뒤 다시 법안을 내라" 등의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지요.

 

특히 열린우리당의 이광철 의원과 민주당의 손봉숙 의원은 정부 법안이 못마땅한 것은 물론 법안심사소위 위원들마저 못미더운지 회의 시작 전 의사진행 발언을 통해 "주요 쟁점에 대한 논의를 마무리하지 않은 채 법안심사소위로 넘기면 안된다"고 주장하기도 하더군요.

 

국무조정실장이 이날 회의에서 가장 여러 차례 반복한 말은 "완벽한 법안은 아니지만 조정이 쉽지 않았기 때문에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마련했다"는 말일 겁니다. 한편으론 이해가 가기도 하지만 국무조정실이란 이름을 생각하면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느낌입니다.

 

검토보고나 대체토론 과정을 보면 법안 통과가 좀처럼 쉽지 않아 보이지만, 그래도 법안심사소위가 구성된 만큼 어느 정도 진전이 이뤄지겠지요. 열린우리당 지병문 의원은 "정권 말기여서 기구 통합이 어렵다고 하지만 오히려 누가 대통령이 될지 모르는 지금이 오히려 중립적인 법안을 만들 수 있는 적기"라는 견해를 내비치더군요.


http://blog.yonhapnews.co.kr/ hoprave heeyong@yna.co.kr



※ 본 기사는 한국언론재단이 운영하는 한국언론재단 홈페이지에 게재된 주간 미디어 리뷰 전문입니다. 본지는 한국언론재단과 필자 이희용 기자의 양해를 얻어 글 전문을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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