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신료 논의에서 불거진 난시청 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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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마파도2'를 보신 분이라면 비바람이 치는 날 TV 화면이 제대로 나오지 않자 할매들의 성화로 주인공 나충수(이문식)가 지붕에 올라가 TV 안테나를 잡고 있다가 떨어지는 장면을 기억하실 겁니다.

예전에는 외딴 섬이나 두메산골이 아니더라도 비바람이 불면 지붕에 올라가 안테나를 손봐야 하는 적이 많았죠. 멀쩡한 날에도 TV가 제대로 나오지 않으면 지붕의 안테나 방향을 이리저리 돌리기도 했습니다.

▲ 이희용 연합뉴스   
또 나이가 어느 정도 드신 독자라면 길거리에서 고성능 실내 안테나를 파는 광경을 많이 보셨을 겁니다. 테스트 기계까지 가져다놓고 일반 안테나보다 감도가 훨씬 좋게 나오는 실험 결과까지 보여주어 덜컥 샀는데 막상 집에 와 달아보니 화면이 깨끗하게 나오지 않아 아내에게 지청구를 들은 남편들도 많으셨을 겁니다.

요즘은 이런 광경을 보기 어려워졌지요. 난시청이 많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라고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난시청 지역은 훨씬 많아졌고 그것도 벽지나 오지가 아니라 대형 빌딩과 고층 아파트 때문에 대도시의 난시청이 부쩍 늘었습니다.

그런데 왜 예전과 같은 광경을 보기 어려워졌느냐고요? 안테나를 이리저리 돌려봐도 안되고 실내 안테나로는 턱도 없으니 아예 케이블TV나 위성방송에 가입한 가구가 많아진 겁니다.

케이블TV 가입가구 1,420만(78%)과 위성방송 200만(11%)을 합치면 유료방송 가입자가 전체 1,830만 가구의 90%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여기에 지상파 난시청 때문에 유료방송에 가입했다는 가구가 40%에 이른다는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의 소비자 이용행태 조사 결과를 반영하면 최소한 세 가구에 한 가구 꼴로 난시청이라는 계산이 나옵니다.

이 문제가 또다시 쟁점으로 떠올랐습니다. 7월 10일 정연주 KBS 사장이 수신료 인상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이 문제를 강도 높게 거론한 것이지요. 정 사장은 KBS의 대국민 약속을 천명하면서 "난시청을 해소해 누구나 별도 비용 없이 TV를 볼 수 있도록 하겠다"면서 ▲방송망 확장에 1,366억 원 ▲지형적 국부적 난시청 해소에 629억 원 ▲훼손된 공시청 시설 복구에 876억 원 ▲벽-오지 절대 난시청 해소에 120억 원 등 3,000억 원에 가까운 돈을 쓰겠다고 밝혔지요.

난시청 문제가 중요해진 것은 수신료 인상에 반대하는 사람 중 상당수가 "어차피 유료방송에 가입해 TV를 시청하고 있어 수신료를 내는 것은 이중 부담인데, 이를 올리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KBS는 유료방송에 가입하지 않고도 지상파를 볼 수 있도록 시청환경을 개선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겁니다.

그런데 이 계획을 설명하며 정 사장은 케이블TV 업계가 공시청망을 훼손했다는 비난도 곁들였습니다.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80% 정도가 유료방송에 가입하는 과정에서 아파트와 다세대 주택 등 공동주택의 공시청시설 약 67%가 활용 불가능하게 됐고, 많은 부분이 케이블TV SO에 의해 훼손됐다"고 주장했지요.

일부 신문은 "자기반성 없이 경쟁업체를 비난했다"는 비판 기사를 실었습니다. 모양은 좋아 보이지 않지만 정 사장의 이 같은 비난은 어느 정도 근거가 있는 건 사실이지요.

SO들이 영업활동을 위해 공동주택과 단체계약을 하며 지상파TV의 공시청망 안테나를 훼손하는 사례가 있다고 합니다. 공동주택의 단자함이 너무 작게 만들어져 케이블TV용 증폭기를 넣기 위해 할 수 없이 지상파용 전파증폭기를 떼는 경우도 있고, 고의로 공시청망을 끊어버리기도 한다고 하네요. 또한 LCD나 PDP 등 디지털 TV수상기를 구입하더라도 지상파의 고화질(HD)방송을 보려면 케이블TV에 가입해야 한다고 공공연히 알리는 SO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러다보니 수신료만 내고 KBS와 EBS를 비롯한 지상파TV 채널을 볼 수 있는 권리가 박탈되는 겁니다. 독점적인 SO가 수신료를 갑자기 올려도, 인기 채널을 고가 패키지에 넣어도, 지상파 채널을 보기 위해서라도 케이블TV를 끊을 수가 없지요.

2005년 9월에는 경기도 고양시와 파주시의 케이블TV에 가입한 30여만 가구의 TV가 6시간이나 먹통이 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해당 지역 SO의 전기실이 집중호우로 물에 잠겼기 때문인데, 지상파 안테나와 증폭기 등 공시청망이 훼손돼 지상파까지도 보지 못한 것이지요. 무료 보편적으로 시청할 수 있어야 하는 지상파, 특히 기상이변이나 대형 참사 등 재난재해나 전쟁 등 비상사태 때 시청해야 할 국가기간방송 KBS를 케이블TV 때문에 볼 수 없게 된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케이블TV 횡포는 지상파와 아파트 주민의 업보(?)

그런데 케이블TV 탓만 할 건 아니라는 반론도 있습니다. 의도적으로 KBS를 공격하는 것 역시 모양은 좋아 보이지 않지만 일부 신문들의 이 같은 비난은 어느 정도 근거가 있는 건 사실이지요.

첫 번째로 따져볼 것은 KBS가 난시청 해소를 위해 얼마나 노력했느냐는 것입니다. 국회 문화관광위원회의 장윤석(한나라당) 의원은 1973년부터 2006년까지 33년간 징수한 수신료 7조 3,185억 원 가운데 난시청 해소에 사용된 금액이 1,605억 원(2.2%)에 불과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정 사장은 이 수치가 잘못됐다고 일축했으나 장 의원은 KBS로부터 직접 받은 자료라고 반박했지요.

액수의 진위를 떠나 제 느낌만으로 볼 때 적어도 10여 년간 KBS가 난시청 해소에 예전처럼 역점을 두지 않은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KBS의 자사 토막광고(SB) 시간에 "수신료는 난시청 해소 사업 등에 쓰입니다"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는데 요즘에는 듣기 어렵지요. 도심 난시청이 늘어나 감당할 수 없을 정도가 된 탓도 있겠지만 케이블TV와 위성방송에 난시청 문제를 떠넘긴 측면을 부인하기 어려울 겁니다(산이 많은 지역 등에서는 종합유선방송이 생기기 전부터 중계유선방송에 가입해 추가부담을 안아왔지요).

더욱 중요한 사실은 공시청망은 건물주(입주자)의 소유로 유지 보수 책임도 입주자에게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입주자들이 케이블TV SO와 단체로 싸게 가입 계약을 하며 공시청망 관리까지 아예 맡겨버렸지요. 경쟁사업자에게 관리를 맡겼으니 케이블TV망에만 신경을 쓰지 공시청망을 제대로 관리해줄 턱이 없지요.

그나마 주택법 시행령인 '주택건설 기준 등에 관한 규정'(대통령령)이 개정돼 2004년 이후 건설된 공동주택은 정보통신부령에 따라 지상파 공시청망과 케이블TV망을 분리 설치하도록 규정됐지만 이를 신경 쓰는 입주자들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아파트 주민들은 케이블TV를 단체로 싸게 보는 대신 공시청망 훼손을 방치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단순한 할인 이상으로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나 부녀자회에서 별도의 대가를 받았는지도 모르지요).

그러다보니 오히려 케이블TV방송협회가 "지난 12년간 공시청망 유지 보수에 3천억 원의 비용을 감수했다"고 주장하고 나서고 있지요. 비록 영업행위에 따른 약속이긴 하지만 지상파방송사들이 난시청 해소에 아무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 자기네가 주민들의 시청권을 지켜주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디지털 전환을 계기로 공시청망 훼손의 주범으로 몰아붙이니 토사구팽 격이라는 비유까지 내세웁니다.

이 문제는 해묵은 논란이었으나 그동안 지상파방송사들이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가 디지털 전환을 앞두고 적극적인 자세로 돌아섰습니다. 시청자 입장에서는 디지털 TV수상기를 구입하는 것도 부담이 되기 때문에 유료방송에 난시청 문제 해결을 떠맡기는 것이 한계에 왔다고 느낀 것이지요. 케이블TV의 반발을 무릅쓰고 MMS(다중모드서비스)까지 실시하려니 더욱 이 문제가 중요해지고, 특히 KBS 입장에서는 수신료 인상 때문에 절체절명의 과제가 된 겁니다.

지상파방송사로 구성된 한국방송협회 산하 무료디지털TV활성화추진위원회는 지난해 4월 서울, 인천, 경기 등의 아파트 1만 7,000 가구를 대상으로 디지털 지상파TV 수신환경을 조사했으며 서울 노원구 월계동과 관악구 신림동, 안산시 고잔동, 광명시 철산동 등 4개동 4,000여 가구를 대상으로 공시청망 복구 시범사업에 나섰습니다.

이 조사에 따르면 옥외에서 디지털 지상파TV 수신이 가능한 곳은 95.8%에 달했는데, 5만 원 상당의 실내 안테나를 달면 시청할 수 있는 곳은 71.7%였고 공시청망을 통해 볼 수 있는 곳은 19.6%에 그쳤다고 합니다(디지털 지상파TV는 아날로그와 달리 반사파도 수신하기 때문에 비교적 수신율이 높고 아파트 발코니에 실외 안테나를 설치한다면 더 높아질 것이라고 합니다).

지상파방송사들은 그만큼 공시청망 훼손이 심각하다며 복구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복구비용은 엄청난 규모일 텐데 방송사들은 공적 자금 투입을 요구합니다. 그러면 단독주택과의 형평성이나 도농간의 격차 문제가 또 제기되겠지요. 공시청망을 복구한다 하더라도 유지 보수하는 것도 큰 문제인데 SO들이 안 해준다면 KBS가 해줄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케이블TV 입장에서도 디지털 전환을 하면서 단체 계약에서 개별 계약으로 바꾸는 추세이니 수신료 인상 문제가 제기돼 홍역을 치르고 있습니다. 단체로 할인해주던 것을 개별로 하니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는데 가입자 입장에서는 한꺼번에 두 배 이상 오른다고 느낄 수밖에 없지요(단독주택 가입자들은 이미 그 가격으로 봐왔습니다). 지상파가 공시청망을 복구하고 MMS까지 한다면 그렇지 않아도 IPTV 때문에 위협을 느끼고 있는 케이블TV로서는 큰 걱정이 아닐 수 없지요.

위성방송 스카이라이프 역시 공시청망에 불만이 많습니다. 공시청망을 이용하면 일일이 접시형 안테나나 달걀형 리피터를 달지 않고 거실 벽의 단자에만 연결해도 되고 집중호우 때 화면이 끊기는 현상도 현저하게 줄어든다고 합니다. 그런데 케이블TV는 공시청망 사용이 위성방송 역무에 어긋난다고 주장하며 막고 있지요. 주상복합건물이나 오피스텔 등은 대부분 외벽의 안테나나 리피터 부착을 막고 있어 사실상 스카이라이프가 들어가기 어렵지요. 일반 아파트에도 케이블TV와의 단체계약 때문에 가입자 비율이 낮습니다.

그래서 스카이라이프는 정보통신부령인 공시청망 기술기준에 위성방송도 포함시켜달라고 요구해왔습니다. 규제개혁위원회도 공시청망이 주민 소유 시설이고 입주민의 방송매체 선택권을 저해하지 않아야 한다는 이유로 관련 규정의 개정을 권고했고, 방송위도 허용 쪽으로 입장을 정했지만, 정통부는 개정을 미루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이 맞는 것 같습니까. 사는 곳의 지상파 수신 여건이 어떤지, 현재 어느 매체에 가입해 있는지에 따라 달라지겠지요. 모든 일에는 대가가 따릅니다. 아무리 무료 보편적 서비스라 하더라도 그걸 제대로 보려면 수신료뿐 아니라 안테나와 공시청망을 설치하고 유지 보수하는 비용을 지불해야 하지요. 케이블TV를 싸게 보는 대가로 그 비용을 내지 않겠다고 한다면 어느 정도의 SO의 요구(횡포는 용납할 수 없겠지만)를 수용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그리고 공동주택이라면 아날로그든 디지털이든 지상파TV만 보겠다는 가구, 케이블TV를 보겠다는 가구, 그것도 디지털 케이블TV에 가입하겠다는 가구, 위성방송을 보려는 가구 등이 섞여 있을 텐데 단지 할인된 가격으로 보기 위해 투표로 행동통일을 하는 것은 부당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또 외부의 미관이 걱정된다면 다른 방법으로도 수신할 수 있도록 공시청망 이용을 보장하는 것이 마땅하겠지요.

공영방송이 시청률을 포기할 수 있으려면?

수신료 인상 논의와 관련해 공영방송의 위상과 활로 모색 등에 관한 이런저런 토론이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7월 13일 중견 방송인 모임인 여의도클럽이 '자유무역협정(FTA) 방송개방시대, 방송경영인들의 대응전략'이라는 주제로 개최한 포럼에서 현대원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공영방송은 단기적으로는 시청률 경쟁을 포기하고 심층ㆍ탐사 보도를 강화하며 시사ㆍ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비록 '미시적 차원의 해법'이라는 단서가 붙어 있기는 하나 수신료를 얼마나 올려야 KBS가 그런 해법을 밀어붙일 수 있을지 걱정되기도 합니다. 광고방송을 하지 않는 KBS1에 국한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시청률 경쟁 자체를 하지 않으면 만족도나 유익성 등 다른 지수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언론개혁시민연대가 11일 개최한 '크로스 미디어/채널 환경에서의 공영방송의 선택과 좌표'란 주제의 토론회에서 이원 MBC 전문연구위원은 "현재 공영방송 재원구조의 가장 큰 문제점은 수신료가 매우 낮은 비중을 차지하는 반면 광고료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 상업주의가 확대되고 공익적 기능은 약화된다는 것"이라고 지적했지요.

그는 현행 월 2,500원에서 1,500원 인상하는 KBS의 방안에 대해 "수신료 인상이 방송시장에서 가져올 영향에 대한 충분한 고찰이 부족해 보이며 월 4,000원 수준의 인상은 여론의 반발을 적당하게 피하기 위한 편의적 방안으로 비쳐진다"고 비판했습니다. 이어 "KBS는 불분명한 입장을 버리고 과감하게 현 수신료의 두 배인 5,000원 이상을 요구할 필요가 있으며 대신 수신환경 개선과 공익적 프로그램 제작, 광고수입 비중 축소 등 디지털 시대에 요구되는 공익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주문했지요.

또한 광고규제 개선 방안에 대해서는 "지상파의 경우 국민의 수신료의 혜택을 받는 방송사와 순수하게 광고수입에 의존하는 방송사에 차별적인 광고 규제를 적용할 필요가 있다"면서 "수신료와 광고제도의 개선으로 증가된 수입은 국내 방송 콘텐츠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공익적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데 활용돼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거칠게 정리하자면 "KBS는 이왕 올릴 거 화끈하게 올리고 대신 광고시장은 넘보지 말라"는 것으로 이해되기도 합니다. 현 교수의 주장과 일맥상통하는 대목이 있는 것 같습니다. KBS도 그러고 싶은 생각이 없지 않겠지만 그게 쉽지 않으니 '편의적 방안'을 택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요.

뉴스전문 라디오 추진에 장애인방송 변수

지난주에 제가 수도권을 대상으로 하는 뉴스전문 지상파라디오(FM) 신설 논란을 소개하며 방송위원회의 추진 경과, YTN의 입장, 지상파방송사들의 반대 움직임 등을 전했지요. 방송위는 미리 고지한 대로 11일 오후 2시 방송회관에서 공청회를 개최하려고 했으나 돌발변수에 부딪혔습니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소속 회원 30여 명이 공청회장의 단상과 방청석 일부를 미리 점거하고 발제자와 토론자, 다른 방청객들의 입장을 막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1시간 넘게 농성을 벌이며 공청회 개최를 방해하다 방송위 관계자로부터 방송위 고위 관계자 면담 등 요구사항을 적극 반영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자진 해산했지요.

이들은 공청회장 앞에서 배포한 성명서를 통해 "방송위와 정보통신부는 여분의 주파수가 있을 때 AM인 KBS 제3라디오(사랑의소리방송)를 최우선 배려해 FM으로 전환해주겠다고 구두로 약속했으면서도 방송위가 3라디오를 제쳐놓고 뉴스전문 FM 채널 신설을 검토하고 있다"고 주장한 뒤 "480만 장애인과 1,200만 장애가족을 대표해 장애인 청취자의 '퍼블릭 액세스'를 촉진할 수 있는 장애인 FM 채널을 요구한다"고 밝혔습니다.

중파 주파수를 쓰는 AM은 수신 거리가 길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초단파 대역의 FM은 음질이 훨씬 좋지요. 이 때문에 처음에는 AM이 라디오 방송에 도입됐다가 나중에 FM은 음악전문 채널 등에 할당됩니다. 이어 FM은 불교방송이나 평화방송 등 신설 종교 채널과 교통전문 채널에 주파수가 배정됐고, 난청 해소 차원에서 방송 3사와 기독교방송, 극동방송 등 AM 프로그램을 FM으로 수중계하는 표준방송으로도 활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장애인방송인 KBS 제3라디오는 지금까지도 AM으로만 송출되고 있기 때문에 음질이 좋지 않을 뿐 아니라 FM을 주로 듣는 청취자들이 찾아 듣기도 쉽지 않지요. 그래서 꾸준히 FM 전환을 요구해왔는데, 가용 주파수가 없다며 이 요구를 외면하던 방송위와 정통부가 뉴스전문 FM 채널을 검토한다는 소식을 듣고 장애인들이 분개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구두로 약속했는지 여부는 모르겠지만 방송위로서는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을 겁니다. 그렇다고 장애인방송에 FM 주파수를 배정하고 신설 뉴스전문 채널에 AM 주파수만 배정하기도 어렵겠지요. 혹시 뉴스전문 라디오 채널 신설에 가장 반대해온 KBS가 장애인단체의 점거 농성을 은근히 부추긴 것은 아니겠지요.

어쨌든 뒤늦게나마 공청회가 열렸는데 주제발표에 나선 이만제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책임연구원과 김우석 방송위 지상파방송부장은 지난주에 제가 소개한 대로 뉴스전문 라디오 채널의 필요성을 설명했지요. 김 부장은 "신규 지상파라디오 방송사업자를 선정하기로 한 정책은 이미 2005년에 의결한 것(당시 주파수를 확보한다는 전제가 있었지요)"이라며 7월 중 사업자 신청공고를 내고 8월 하순까지 신청 접수 및 심사를 진행해 9월 중순에 사업자를 선정한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토론자 중 방송학계 대표인 심미선 순천향대 교수는 기존 채널들이 오락 중심이어서 뉴스가 상대적으로 소외됐다는 점을 들어 찬성 쪽 의견을 피력한 뒤 사후평가 항목을 추가하자는 의견을 제시했지요. 시민단체 대표로 참석한 김서중 민주언론시민연합 공동대표(성공회대 교수)도 기존 방송과의 차별성을 갖는 방송이라는 점을 전제로 수용 의사를 밝히며 신속성과 소외계층 배려 등을 심사기준에 반영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반면 다른 방송학계 대표 송종길 경기대 교수는 "왜 뉴스전문 채널이 다른 분야에 비해 꼭 필요한지 따져봐야 한다"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고, 통신학계 대표인 이우경 항공대 교수는 "해당 주파수가 수도권의 절반밖에 커버하지 못하고 중계기를 설치하면 전파의 간섭 현상 때문에 기존 사업자에 피해가 갈 수밖에 없다"며 반대 입장을 보였습니다.

이해 당사자로 참여한 한영규 YTN 미디어전략팀장과 양동복 CBS 매체정책부장은 당연히 찬반양론으로 갈렸지요.

양 부장은 "수도권 동쪽에서 청취하기 힘들다면 지역성을 대표할 수 없어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 수도권에는 이미 라디오 채널이 15개로 충분하므로 기존 라디오 편성을 더욱 풍부하게 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지요.

한 팀장은 "뉴스는 가장 일상적이고 공익적인 콘텐츠여서 대부분 나라에서도 뉴스전문 라디오를 운영한다"면서 "그동안의 라디오 정책은 기존의 AM 사업자에 FM을 확대해주는 쪽으로 운영돼 다양성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맞받았습니다.

정통부를 대표해 참석한 이영무 사무관은 "새로 찾은 주파수가 수도권 서쪽 지역을 커버한다는 결과는 컴퓨터를 통한 모의실험 결과치에 불과하며 실제 전파를 쏘아보내 측정한 수치는 아니다"라고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면서도 "서쪽 지역이더라도 청취자 규모는 상당할 것"이라고 전망하더군요. iTV가 운영하던 iFM의 후신 라디오인천(SUNNY FM)이나 경기방송 등에 비하면 훨씬 가청인구가 많겠지요.

지상파방송사들의 단체인 한국방송협회는 이미 방송위에 반대 의사를 담은 건의문을 전달했고, 지상파방송 PD를 중심으로 구성된 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도 11일 "각계의 중단 요구와 ▲라디오시장 포화로 시장 혼탁 우려 ▲논의과정의 불투명성 ▲특정 사업자를 염두에 둔 특혜 의혹 등 문제점 지적에도 불구하고 방송위가 사업자 선정을 밀어붙이려 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성명을 냈습니다.

방송위가 기존 방송사 등의 반대를 무릅쓰고 장애인단체의 요구를 외면한 채 계획대로 사업자 신청공고를 낼지 궁금해집니다. 오랫동안 공을 들여온 것으로 알려진 YTN은 애가 탈 지경이겠지요.

이희용[연합뉴스 엔터테인먼트부장] http://blog.yonhapnews.co.kr/hoprave
hee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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