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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일 칼럼

인생을 도둑맞았다는 느낌이 들 적에는... l승인1997.04.0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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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나이 사십이 넘어가면서 이미 살아온 날들과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헤아려 보는 일이 잦아졌다. 나이가 들면 누구나 그런 것이려니 하면서도, 어쩌다 한번이 아니라 틈만 나면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 이게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과 함께, 내 인생을 누군가에게 도둑맞고 있다는 생각이 부쩍 드는 것이다. 도대체 사람들을 일에 몰두하지 못하게 하는 분위기는 어떻게 해서 생겨난 것인가?요즘 신문이고 텔레비전이고 뉴스라고는 온통 정치권 돌아가는 얘기뿐인데, 그로써 확인되는 바는 한마디로 정치판이 아수라장이라는 사실이다. 한 쪽에서는 대통령 아들이나 한보그룹을 대상으로 비리 캐내기가 한창인데도, 무대 가운데서는 다음 대통령을 누가 할 것인가 하는 데만 혈안이다. 정치란 것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봉사한다는 본연의 목적은 간 곳 없이 그저 권력을 잡는 데에만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일들이 너무나 노골적으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 동안 언론 민주화가 완성되었기 때문에 전에 안보이던 진실이 오늘 보이게 된 것일까? 그보다는 오늘날의 정치인들은 정치가의 이상(理想)을 추구할 여유도 양식도 없는 사람들이라는 말이 맞을 것이다. 후에 지키지 못할 약속일지라도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으니 국민들은 희망을 가지라’고 외치는 사람이 그리워질 정도다.그래서, 오늘날 날이 갈수록 이 땅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진단다. 퇴직을 당한 후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을 이 땅에서 보낼 수는 없다’고 이를 갈며 떠나는 사람들도 많고, ‘우리는 이미 글렀으니 아이들이라도 보내자’고 아이들을 살기 좋다는 나라로 보내기도 한단다. 강원도 사람들이 많이 부르는 ‘아라리’ 한 곡으로 그들의 심정을 비유하자면 이런 정도가 될까? “물 한동이를 떠다 놓고서 물 그림자를 보니 / 촌살림 하기는 정말 아깝구나”산골로 시집간 여자가 물동이에 비친 모습을 보고 자기 연민을 느낀다는 말인데, 오늘날로 이야기하자면, 좋게 말해서 ‘아수라장 같은 나라에 살기에는 내 인생이 정말 아깝다’ 는 심정에서 사람들이 떠난다는 것이겠다. 그곳에서 어떻게 사는지는 몰라도... 하지만,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은 억울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지금의 현실에서는 모르겠으되, 역시 옛사람들은 아라리에 한 가닥 희망을 담아 놓았다.
|contsmark1|“오늘 갈 지 내일 갈 지 정수정망이 없는데 / 맨드라미 줄봉숭아는 왜 심어 놨나”예나 지금이나 이 땅에서는 떠나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언제 어디로 떠날지 모르면서도 마당에 화초를 심는 사람들은 여전히 있었다. 그들의 심정을 굳이 풀어 보면 ‘사람은 희망으로 산다’는 말이 된다. 하지만, ‘아무 건덕지도 없이 막연하게 무슨 희망을 가지라는 말이냐’고 되묻는다면, 이런 노래도 있다.
|contsmark2|“산천이 고와서 내 여기 왔나 / 임 사는 곳이라서 내 여기 왔지” ‘지금 내가 여기에 살아야 할 이유’는 살기 좋은 국토라든가 하는 물적 조건이 아니라 바로 사람들 사이에 맺어진 관계, 쉽게 말해 정(情)이라는 말이리라. 윽! 또 그놈의 정 때문에?! 정이란 고리타분한 것 아닌가? 하지만 우리에게 정이란 자연스러운 것이며, 굳이 뿌리칠 이유도 없으며, 달리 그만한 것도 있을 수 없는, 여전히 확실한 가치이다. 그래서, 우리의 인생이 도둑맞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먼저 절망하지 않는 일, 그리고 소중히 여겨야 할 사람들과의 관계를 생각하는 일이리라. 그리 멀리 볼 것도 없이, 우리의 가족과 이웃과 동료 중에는 열심히 사는 착한 사람들이 아직은 더 많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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