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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 국회의 마지막이자 대선을 앞둔 마지막 국정감사가 한창 열리고 있습니다. '이명박 국감'을 우려한 한나라당의 요구로 늦게 시작돼 기간이나 수감대상도 줄고 대선 정국 때문에 의원들의 마음은 콩밭에 가 있어 맥도 많이 빠져 보입니다.

18일 방송위원회와 EBS를 상대로 열린 문화관광위원회의 국감에서는 방송통신 통합기구와 IPTV, 수신료 인상안, EBS 보도 기능과 GTB(강원민방) 사주법령위반 혐의 등 재허가추천 심사,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의 선정성 문제 등이 쟁점으로 떠올랐지요. 

수신료 인상 시도를 겨냥해 한나라당은 국감이 시작되기 전부터 KBS를 비판하는 자료를 잇달아 폭로했습니다. 이날도 한나라당의 서면 질의 자료에는 수신료 인상안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방송위의 수신료 인상안 검토 의견서를 비판하는 내용이 많이 포함돼 있었습니다(물론 회의 중에서도 발언이 집중됐지요).  

우상호 대통합민주신당 의원은 의원들의 질의 순서가 시작되기에 앞서 "관련 기관에 대한 국감에서는 수신료 인상 문제에 활발한 의견을 내놓으면서 정작 수신료 인상안 자체는 국회 상임위 상정조차 거부하는 한나라당의 태도를 이해할 수없다"고 꼬집으며 "하루속히 양당 간사 협의를 거쳐 수신료 인상안을 문광위가 심의해야 한다"고 주장하더군요.

이날 문광위에는 오락 프로그램의 스타 PD 출신인 송창의 tvN 사장이 증인으로 출석했습니다. 송 사장은 의원들이 국감장에서 틀어준 자사 프로그램의 선정적인 화면을 어색한 표정으로 함께 지켜보면서 "이런 프로그램을 아이들하고 함께 볼 수 있느냐"는 등의 질책성 질문에 진땀을 흘려야 했습니다. 더욱이 장윤석 의원이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미성년자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해도 성인 회원에 가입할 수 있는 광경을 시연해 보이자 순간 얼굴이 굳어졌다는군요.

개국 1주년을 맞은 tvN에게는 지난주가 가장 긴 한 주였을 겁니다. 돌잔치를 하루 앞두고 대표가 국회에 나가 거듭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했는가 하면 16일 방송위 전체회의에서는 '위험한 동영상 sign'과 '독고영재의 현장르포 스캔들' 등 페이크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잇따라 중징계가 내려져 과징금을 물 처지에 놓였지요.

19일 기자회견에서 송 대표는 "페이크 다큐멘터리라는 단어는 뺄 수도 있으나 프로그램을 폐지할 생각은 없으며 재연 기법을 통한 다큐멘터리 형식도 계속 살리고 싶다"고 대답했습니다. 전날 저와의 통화에서 윤석암 공동대표는 "방송위가 페이크라는 말을 빼라면 뺄 생각이 있고 재연 표시를 더 명확하게 하라면 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지요. 

방송위 심의 관계자들은 허구적 이야기를 실제 상황을 재연한 것처럼 보여주는 프로그램의 포맷 자체가 "방송은 재연기법을 사용할 때에는 재연상황이 실제상황으로 오인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는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38조(재연기법의 사용) 2항에 어긋난다고 보고 있어 tvN이 그 생각을 관철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송 대표에 대한 증인 신문에서는 여야 의원들의 견해가 비교적 일치했으나 또다른 증인 신문 순서에서는 여야의 입장이 극명하게 갈려 고성이 오갔지요. 이른바 '강동순 녹취록'에 등장했던 윤명식 KBS PD(전 심의위원)가 출석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공정방송 노조를 설립하면 정권을 되찾는 데 일조할 수 있다" 등의 발언에 대해 "술자리에서 호기를 부리다 나온 허세성 발언인 것으로 법원에서도 인정됐다. 나는 술 넉 잔만 마시면 만취 상태에 빠진다"고 해명했지요. 

윤 PD가 증인으로 출석하자 더욱 주목을 받은 이는 강동순 방송위 상임위원이었지요. 그는 녹취록 공개의 불법성을 문제 삼는 예전의 해명을 되풀이하면서도 한 발짝 더 나아가 "방송이 좌파 손에 다 넘어갔는데 어떻게 소수가 장악할 수 있느냐" "방송위는 정치적 타협의 산물로 방송위원들은 자신을 추천한 정당의 입장을 대변한다" 등의 말을 쏟아냈습니다.  

여권 의원들은 강 위원이 눈을 감고 팔짱을 끼는가 하면 전화를 받기도 했으며, 방송위의 역할을 묻자 "방송법에 다 나와 있다"고 무성의하게 답변하는 등 국회를 모독했다고 주장했지요. 반면 한나라당 의원들은 "고만합시다. 많이 묵었다 아입니까"(최구식)라는 등의 말로 강 위원을 엄호했습니다.  

이를 지켜본 한 참석자는 강 위원의 (여권에게는 오만하게, 한나라당에게는 당당하게 비쳤을 법한) 태도를 보고 17대 국회의 마지막이자 대선을 앞둔 마지막 국감이라는 말이 실감난다고 하더군요.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말이지요. 

아마도 수신료를 둘러싼 공방, 특히 KBS의 부실경영과 편파보도에 대한한나라당의 질타는 29일 본격적으로 펼쳐질 겁니다. KBS로서는 하루 온종일 받던 예년과 달리 방송문화진흥회가 함께 받게 됐고 그나마 오후 4시부터는 MBC 비공개 업무현황 보고가 예정돼 있어 다행스러울 겁니다. 오히려 KBS보다 더 큰 수혜자는 KBS와 같은 날 받아 야당의 화살을 많이 피하게 된 방문진과 MBC겠지요.  

KOBACO와 광고주협회 다툼이 확대됐다면 신문은 어느 편?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의 광고료 인상 시도가 일단 좌절됐습니다. 한국방송광고공사 정순균 사장은 21일 아시아광고대회가 열리는 제주도에서한국광고주협회 민병준 회장을 만나 11월부터 시행하려던 지상파방송 광고료 평균 7.9% 인상 계획을 일단 보류하고 내년 초 다시 논의하기로 했답니다. 

이는 광고주협회가 대책회의를 열어 다음달부터 신규 방송광고 청약을 전면중단하겠다고 결의한 데 따른 것이지요. 장기 계약물과 임시 계약물이 2 대 8인 상황에서 당장 임시 계약물이 거부되면 KOBACO 영업 목표에 큰 차질을 빚게 되고 나아가 방송사 경영도 타격을 받게 됩니다.  

광고주협회는 또 KOBACO의 미판매 광고 끼워팔기와 라디오 광고 강매 등 불공정거래행위를 공정거래위원회에 고발하겠다는 방침도 밝혔습니다. 만일 이 문제가 도마에 오르면 KOBACO 판매 시스템의 근간이 흔들리게 되고 민영 미디어렙 신설논의에 기름을 붓게 될 공산이 크지요. 

실제로도 광고주협회는 한 발짝 더 나아가 방송광고 판매제도를 즉시 개선해 KOBACO의 독과점 횡포를 근절할 것을 촉구하는 한편 KOBACO가 윤리경영을 통해 방만한 경영을 개선하도록 철저히 지도 감독할 것을 정부에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최근 전직원에게 노트북 컴퓨터를 지급하는가 하면 평균 연봉도 공기업 중 최상위 그룹에 드는 것으로 알려져 따가운 눈총을 받은 KOBACO로서는 괴로운 노릇이지요.  

더욱이 이튿날 KOBACO를 상대로 한 국감이 예정돼 있어 문광위원들의 집중포화가 쏟아질 것을 의식해 서둘러 인상 계획을 보류하기로 한 것으로 보입니다. 

KOBACO는 디지털 전환에 드는 비용과 경영 여건 악화로 빚어진 적자를 다소보전하려는 방송사들의 요구를 반영하려다가 신문사들의 비난에 시달려야 했고, 예상보다 훨씬 거센 광고주협회의 대응에 멈칫 할 수밖에 없었지요. 

또한 현재 미디어렙 법안이 국회에 계류돼 있고 수신료 인상안이 국회상정을 눈앞에 두고 있는 데다 중간광고 등에 대한 논의도 일고 있는 터에 방송광고료 인상 문제를 놓고 광고주협회와 각을 세우면 불똥이 이상한 방향으로 튈 수 있다는 상황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광고주협회가 방송광고료 인상안에 강경대응하면서 끼워팔기 등의 문제를 지적하고 나선 것은 광고를 내고 싶은 매체나 프로그램에만 광고를 하도록 해달라는 것이지요. 어찌 보면 당연한 요구이고, 요즘처럼 광고 수주율이 60% 안팎으로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목소리가 커질 만도 하지요. 

그러나 KOBACO는 매체간ㆍ프로그램간 균형 등의 명분을 내세워 끼워팔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지요. 만일 광고주 요구를 다 들어주다가는 종교방송 라디오와 지역방송은 물론이고 서울의 비인기 TV 프로그램들도 살아남기 어렵지요. 

22일 KOBACO를 상대로 한 국감에서 이광철 의원(대통합민주신당)이 "올해 7월 현재 드라마와 시트콤, 토크쇼 등 연예 오락 프로그램의 광고판매율은 78%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판매율과 비슷한 수준이었으나 뉴스나 대담토론, 시사, 다큐멘터리와 같은 사회교양 프로그램의 판매율은 35%로 전년 동기 대비 14%포인트나 급락했다"고 지적한 내용이 이 같은 상황을 잘 말해줍니다. 

둘의 대립이 일단 여기서 봉합됐으니 망정이지, 만일 확전으로 치달았으면 여기저기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올 뻔했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신문사들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광고주협회가 KOBACO를 상대로 일전을 불사하겠다고 계속 외치면 신문사들의 입장이 매우 곤란하거든요.  

신문사들은 KOBACO의 광고료 인상 방침이 알려진 10월9일부터 인상에 반대하는 광고주협회의 입장을 충실히 반영하는 기사를 써왔습니다. 평소 미디어렙 문제에 관해 광고주협회의 주장을 일축하며 KOBACO를 두둔하던 태도와는 사뭇 다른 것이지요. 만일 방송광고료 인상을 둘러싼 전선이 미디어렙 신설 논쟁으로 곧바로 옮아갔다면 갑자기 적과 동지가 바뀌게 됐을 겁니다.  

신문사들이 방송광고료 인상에 반대하는 논조를 보인 명분은 이것이 물가인상을 부추기고 중소 광고주들에게 부담을 줄 가능성이 있다는 점 때문이지만, 그 이면에는 방송광고 총액이 많아지면 신문광고 총액이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깔려 있습니다. 

독자들의 알 권리를 대변한다는 신문사 역시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민감할 수 밖에 없다는 건 이해할 수 있지만, 사안에 따라 입장이 표변하는 건 낯간지러울 만도 하지요. 더욱이 "방송사들이 경영 개선과 비용 절감을 통해 재원을 마련해야지 무조건 기업에 부담을 지우면 안 된다"는 광고주협회 관계자의 말을 인용하며 "신문사가 신형 윤전기를 도입한다고 해서 광고료를 올린 적이 있느냐"고 반박했다는 말을 덧붙인 것은 지나쳐 보일 수도 있습니다.

방송사들은 1980년 KOBACO 탄생 이후 방송광고료가 정부의 각종 규제에 묶여 더딘 걸음을 해오는 동안 (적어도 IMF 한파가 불어 닥치기 시작한 97년까지는) 신문 광고료는 고삐 풀린 것처럼 해마다 인상돼왔고 광고비율도 계속 늘어났다는 점을 공격해왔으니까요. 

자신의 이해관계가 얽힌 일일수록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보도해야 신뢰를 얻을 수 있는데 (그 점에서는 수신료 인상문제에 대해 일방적으로 보도하는 KBS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게 참 말처럼 쉽지 않은가 봅니다.


이희용[연합뉴스 엔터테인먼트부장]http://blog.yonhapnews.co.kr/hoprave
hee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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