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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해오던 이야기지만 이번 17대 대선에서도 정책 대결을 찾아볼 수 없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지역감정에 기댄 바람이 누그러지고, 이른바 북풍(北風) 병풍(兵風)이 잦아든 대신 BBK 의혹이 모든 정책 대결의 쟁점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지요.

지지율 1위를 달리는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진영은 BBK 관문만 돌파하면(의혹을 해소하든, 진실 규명이 지연되든) 대권이 눈앞에 있다는 생각에서 안간힘을 쓰고 있고, 이를 추격하는 무소속 이회창 후보나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 진영은 "한방이면 보낼 수 있다"며 마지막 고삐를 당기고 있습니다. 나머지 후보들은 이들 ’빅3’가 뿜어내는 포연 속에 아무리 참신한 정책을 내세워본들 언론이나 유권자의 눈에 띄기가 쉽지 않지요.

오히려 정당의 후보 경선에서는 (턱없이 부족하긴 하지만) 한반도 대운하 논쟁이나 참여정부 성과론 공방 같은 쟁점 토론이 이뤄졌는데, 그보다 더욱 선명한 정책 대결이 펼쳐져야 할 본선에서는 아예 정책 대결이나 공약 점검이 실종돼 버린 겁니다. 그나마 싹이 움트던 메니페스토 운동마저 고사할 지경입니다.  

그러다보니 경제정책, 통일정책, 교육정책, 부동산정책, 복지정책, 노동정책 등에 비해 한참 순위가 밀릴 처지인 미디어정책은 제대로 거론조차 되지 않지요. 주요 공약에도 들어 있지 않고 언론들도 큰 관심이 없는 듯합니다. 언론관련 시민단체나 현업 언론인단체들은 대선 후보들의 미디어정책이 뭐냐고 따져 묻는데, 나오는 대답이라곤 원론적인 수준이거나 늘 해오던 이야기에 지나지 않지요. 

그나마 한국기자협회와 한국언론재단이 11월 21일 공동주최한 ’제17대 대선 미디어정책 토론회’와 스카이라이프와 한국언론학회가 11월 30일 녹화한 같은 제목의 토론회(12월 4일 오후 9시 30분 방송 예정)가 후보간의 미디어정책 차이를 살펴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신문ㆍ방송 겸영 금지에 관해서는 이명박 후보가 철폐하겠다는 뜻을 밝힌 반면 정동영ㆍ권영길ㆍ문국현 후보가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취재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에 대해서는 정동영ㆍ문국현 후보가 정부의 취지를 살리는 방향에서 개선을 약속했고 권영길ㆍ이명박 후보는 철폐를 주장했지요. 지상파 중간광고에 대해선 이명박 후보와 문국현 후보가 부분적 허용을, 정동영 후보가 불가 입장을 밝혔습니다.  

가장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대목은 신문ㆍ방송 겸영 금지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언론관련 시민단체와 현업 언론인 단체가 중심이 된 대선미디어연대와 전국언론노동조합이 겸영 반대를 선언하고 나섰고, 전국경제인연합회와 한국경제연구원은 겸영 허용을 주장하고 있지요. 

지난 10월 한경원과 전경련은 ’시장경제 창달과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규제개혁 로드맵’이란 부제가 달린 ’규제개혁 종합연구’를 발표해 ▲MBC와 KBS2 민영화 ▲지상파방송, 종합편성, 보도채널에 대한 소유제한 폐지 ▲방송ㆍ신문ㆍ뉴스통신 겸영 제한 폐지 등을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반면 같은 달 대선미디어연대와 언론노조는 신문ㆍ방송 겸영에 반대하는 것은 물론 KBS2와 MBC 민영화 논의를 원천적으로 반대한다고 못 박았지요. 

지난해 6월 신문법 일부 위헌 결정 이후 신문법과 방송법의 비대칭 규제, 혹은 상충되는 조항이 이슈화됐다가 잠복하긴 했으나, 새 정부 출범 이후 겸영 논의가 어떤 방식으로든 재개될 것으로 보입니다. 더욱이 IPTV 도입과 관련, 보도채널 진입 규정 등에 대해 손질이 불가피한 측면도 있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미디어 지형도를 새로 그리기 위해서는, 특히 전경련이 주장하는 대로 글로벌 미디어기업의 성장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MBC와 KBS2의 민영화 문제를 검토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또 세간에서는 만일 한나라당이 집권하게 되면 일등공신은 보수신문들이기 때문에 이들의 숙원 해결을 위해서라도 겸영 허용과 함께 민영화를 추진할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는 워낙 민감한 사안인 데다 관련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쉽사리 손을 대기는 어렵습니다. 이명박 후보 진영의 박천일 숙명여대 교수가 말한 대로 당선 후 구성할 (가칭) '21세기 미디어위원회'를 통해 종합적으로 신중히 검토한 뒤 추진할 일이겠지요. 

그런데 한나라당의 관계자가 ’홧김에’ 불쑥 본심(?)을 미리 드러낸 모양입니다. MBC 노조 성명에 따르면 한나라당 의원 등이 MBC를 항의방문한 자리에서 누군가가 "MBC를 좌시하지 않겠다. 집권하면 민영화시키겠다"는 ’협박성 발언’을 했다고 하네요. MBC는 ’손석희의 시선집중’을 통해 에리카 김 인터뷰를 내보내고 ’PD수첩’에서 BBK 문제를 심층추척하는 등 이명박 후보 검증 보도에 가장 앞장서고 있어 한나라당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지요. 

MBC는 당연히 발끈했고 시민단체도 "낙선운동으로 대응하겠다"며 거세게 비난했지요. MBC의 보도 태도나 민영화 여부에 대해 중립적인 생각을 품고 있던 사람들한테마저 "국가적인 어젠다로 접근해야 할 문제를 자신들에 대한 보도 태도와 연관지어 결정하겠다는 것은 구시대적 발상"이라는 지적을 들어도 할 말이 없게 됐습니다. 그러나 속으로는 가장 ’말발’이 잘 먹히는 ’엄포’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대선 때 공정하게 보도하면 수신료 인상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말로 KBS를 중립지대에 묶어놓았다는 자평도 나오고 있다고 하니까요.  

MBC 민영화하면 정수장학회가 최대주주? 

대선 선거전이 시작되기 전부터도 현재의 다공영 1민영 구도를 1공영 다민영 구도로 바꿔야 한다는 문제 제기는 보수신문과 신자유주의 계열의 학자, 경제ㆍ경영 단체 등을 중심으로 계속돼 왔습니다.  

5공 때의 유산을 탈피해야 한다는 과거사 정리 차원에서나 각국의 사례와 최근 국제 조류로 볼 때 충분히 나올 만한 주장이기도 하지요. 반면 민영화에 이은 겸영 허용이 최근 뉴미디어 도입에 따른 상업주의 심화와 여론 독과점을 부추길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여기에는 KBS2와 MBC를 민영화하고 신문에게 방송을 겸영하게 하면 조중동 등 메이저신문 말고는 여력이 없을 것이라는 현실론도 한몫하고 있는 듯합니다. 

종사자들이나 시민단체 등이 반대하고 있긴 하지만, 논의조차 불가능한 건 아니겠고, 사회적 합의를 전제한다면 추진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찬반양론 이전에 복잡한 문제가 얽혀 있어 한나라당의 일부 관계자들이 생각하는 대로 마음만 먹으면 쉽게 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닌 듯합니다. 

KBS의 경우 1991년 제3TV를 EBS로 분리한 경험이 있긴 하지만, 그때는 교육방송이란 전문채널을 떼어낸 것이고, 노태우 정부가 임명한 서기원 사장 시절에 노조의 힘도 그리 조직화돼 있지 못했지요. 지금은 노조의 반발은 논외로 치더라도 1TV나 2TV 모두 종합편성 채널이어서 시설ㆍ장비ㆍ인력 등을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나눌지 막막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여기에 지역국까지 나눠야 하니 더욱 복잡해지지요.

그래도 KBS는 정부가 100% 출자한 공사여서 정부와 국회가 합의하면 분리가 추진될 수는 있을 겁니다. 상법상 주식회사인 MBC는 문제가 훨씬 복잡합니다. 

현재 MBC 본사의 주식은 공익재단인 방송문화진흥회와 정수장학회가 각각 70%와 30%를 나눠 갖고 있습니다. 방문진이 해체 결의를 하고 소유 주식을 민간 컨소시엄에 넘긴다면 정수장학회가 최대 주주가 되지요. 현행 방송법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방문진, 선교 목적이 아니면 지상파방송 주식의 30%를 초과해 소유할 수 없도록 돼 있습니다(법 제정 이전에 소유했던 것은 부칙 특례조항에 의해 인정됩니다). 

만일 정수장학회의 주식도 매각하도록 한다면 합당한 보상을 해줘야 할 텐데, 정수장학회가 소유하고 있는 주식의 액면가는 자본금 10억 원의 30%인 3억 원에 불과하지만, MBC 여의도 사옥과 일산 사옥, 의정부 스튜디오, 지방계열사와 관계사 주식, MBC의 브랜드 가치 등 총 자산을 재평가해 따진다면 조 단위에 이를 것이라는 게 중론입니다. 

설사 민영화한다 해도 이들이 신문사들의 차지가 될 것이냐도 의문스럽습니다. 비교심사를 통한 공모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예전처럼 정권 핵심이 마음대로 하는 데도 한계가 있고, 새 방송사업자가 아니고 기존 방송사의 자산을 인수하는 방식이라면 금액도 엄청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방송가에서는 KBS2와 MBC를 민영화한다면 최대주주는 신문사 차지가 되기 힘들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합니다. 신문사의 지상파 지분 소유 금지가 풀린다면 대기업에도 풀릴 것이라는 전제 아래, 삼성ㆍLG 등 전자회사나 KTㆍSK 등 통신회사, CJㆍ 온미디어 등 기존의 MSP(복수종합유선방송 및 채널사용사업자) 등 대기업이 1대 주주나 2~3대 주주를 맡고 신문사는 4~5대 주주쯤으로 자리를 잡을 것이라는 겁니다. 가전사, 통신사, 방송기기제작사, 방송콘텐츠사, 신문사, 매니지먼트사 등으로 이뤄진 컨소시엄끼리 치열한 인수전을 펼치겠지요. 

그렇게 되면 SBS도 가만히 있을 수 없을 겁니다. 기존 주주들의 반발이 예상되기는 하겠지만, 자본력이 있는 대기업과 함께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관련 알짜 기업, 그리고 신문사 등을 끌어들여 덩치를 키우며 복합미디어그룹을 지향하겠지요. 

KBS2와 MBC의 민영화 가능성이 불투명하기 때문에 또다른 가능성을 탐색하기도 하는 듯합니다. 현재 지상파방송사들은 디지털 전환과 함께 MMS(다중모드서비스)의 허용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MMS란 한 채널의 디지털방송 주파수 대역(6㎒)을 쪼개 추가로 비디오, 오디오, 데이터방송 채널을 만드는 것으로 신문사나 케이블TV 등은 당연히 반대하고 있지요.  

어떤 이들은 민영화나 기존 방송사 인수가 어렵다면 MMS로 생겨나는 채널 여유분을 신문사를 포함한 희망 사업자에게 나눠줄 수도 있는 게 아니냐고 제안하기도 하더군요. 일단 허가받은 채널은 압축 기술을 통해 여유분이 늘어나더라도 다 자기네 것이라 생각하는 방송사들은 떡 줄 사람은 생각도 하지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격이라고 코웃음 칠지 몰라도 상황 변화에 따라 겸영 논의의 새로운 변수가 될 수도 있겠다는 예상도 해봅니다.

민영화나 겸영 논의를 원천 봉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도 있지만, 민영화가 간단한 일이 아니고 겸영에 따른 부작용도 있지만, 그런 주장과 우려와는 달리 이미 논의는 시작됐습니다. 다만 대선 국면에서 말 안 듣는 방송사를 향한 채찍과 마음에 드는 신문사에 대한 당근의 발상에서 불거져 나온 게 찜찜하긴 할 따름이지요.  

이명박 후보 도와준 권영길ㆍ문국현 후보  

한나라당의 부패와 이명박 후보의 비리 의혹을 연일 몰아붙이고 있는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후보와 이명박 후보의 ’가짜경제’와 자신의 ’진짜경제’로 대립각을 세운 창조한국당의 문국현 후보가 주적이나 다름없는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를 도왔습니다. 자신들에게도 크게 도움이 된 일이라 이적행위라고만 볼 수는 없겠지만, 이 후보가 자신에게 맹공을 퍼붓는 이들로부터 큰 덕을 볼 줄은 몰랐을 겁니다. 

이미 짐작하셨겠지만 KBS와 MBC가 추진하던 ’빅3 합동토론회’에 대한 가처분결정 이야기입니다. 지지율 10%를 기준으로 이명박ㆍ정동영ㆍ이회창 후보만 초청해 밀도 있는 토론을 벌이려고 하자 권영길ㆍ문국현 후보는 "선관위 기준(5%)보다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 것은 문제가 있다"며 방송금지 가처분신청을 냈고, 서울남부지방법원은 "방송사 재량의 한계를 일탈한 것"이라며 이를 받아들였지요.  

2주 전 제가 이 글에서 이명박 후보의 비협조적인 태도로 ’빅3 합동토론’이 성사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고 소개하며 "이 후보가 TV토론을 피한다는 비난을 무릅쓰고 이번에도 초청 제의를 거부할지 주목된다"고 썼던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그런데 가처분신청이 제기되니 이명박 후보는 이 핑계를 대며 확답을 미루고 있었지요. 기각되면 또다른 핑계를 대거나 이틀 중 하루라도 얼굴을 내밀어야 할 처지였던 이 후보는 가처분신청이 받아들여지면서 고민이 일시에 사라져버렸지요. 남부지법을 향해 절이라도 하고 싶고, 두 후보에게 감사 방문이라도 해야 할 처지였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방송사는 이의신청을 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선거 전에 ’빅3 합동토론’이 성사될 가능성은 전무합니다. 날짜도 촉박하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도 희박하며, 이명박 후보가 응한다는 보장도 없지요. 또 선거방송토론위원회가 주최하는 4차례(마이너 후보끼리 1차례 포함)의 공식 토론회도 코앞에 닥쳤습니다. 

그래도 사법적 판단을 받아볼 필요는 있을 것 같습니다. 특정 후보에 대한 유-불리를 떠나 유권자에게 효과적으로 후보에 대한 정보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유력 후보들간의 토론회가 필요하고, 방송사에 재량권을 주어야 한다는 견해도 있으니까요. 선거를 치를 때마다 투표를 하는 유권자들도 깜짝 놀랄 구도가 펼쳐지니, 다음 선거 때는 또 어떤 식이 될지 모르지 않습니까. 

가처분결정은 꼼꼼하게 법률적으로 검토해 내리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시일을 늦추면 회복할 수 없는 피해가 예상될 때 임시로 해주는 처분이기 때문에, 본안 소송을 한다면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다음 총선이나 지방선거, 대선을 위해서라도 판례를 만들 필요가 있지요. 그 이전에라도 여론을 수렴해 선거 관련 법령을 합리적으로 고쳐주면 좋겠지만, 우리 입법기관에 그런 일을 기대하기는 어렵지요.

어쨌든 이제는 선관위 기준(국회 5석 이상, 직전 전국선거 3% 이상, 후보등록 한 달 전 여론조사 5% 이상)을 충족하는 후보들의 합동토론 세 차례(6일, 11일, 16일)와 마이너 후보끼리의 한 차례(13일) 토론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제가 9월 이 글에서 6파전이 될지 모른다고 했다가 2주 전에는 4~7명이라고 썼지요. 제가 이 글을 쓰는 순간까지는 7명인데, 급작스럽게 짝짓기가 이뤄지고 있어 4~5명으로 줄어들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지금까지도 잇따른 TV토론 무산으로 애를 태워야 했던 각 방송사의 TV토론 담당자와 편성 담당자들은 후보 등록 이후에도 수시로 후보 숫자가 바뀌고 있어 앞으로도 한동안 피를 말려야 하겠네요.  

이희용[연합뉴스 엔터테인먼트부장] http://blog.yonhapnews.co.kr/hopraveheeyong@yna.co.kr

 

* 이 기사는 한국언론재단에서 제공하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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