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채널 'TF1'이 지난 9월 10일부터 프라임타임에 편성한 드라마 <호스피탈(L'Hôpital)>이 470만 명의 시청자(19.1%의 시청률)를 끌어 모으는데 그치면서, 방송사에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이 작품은 같은 시간대에 France 2가 편성한 <콜드 케이스>(미국 시리즈물)나 M6가 방송한 할리우드 영화 <맨 인 블랙>보다 못한 시청률 3위에 머물렀다.
<호스피탈>은 미국의 인기 드라마 시리즈물 <그레이 아나토미>의 프랑스판 각색물이다. TF1이 미국 시리즈의 리메이크 드라마를 내놓은 것은 <호스피탈>이 처음은 아니다.
문제는 이러한 각색물들이 급격히 외면받기 시작하고 있다는 점이다. 2006년에 처음 방영된 <과학수사대 R.I.S.>은 매회 1천만 명의 시청자를 끌어 모으는 좋은 반응을 얻긴 했지만, 새로운 시즌이 되풀이되면서 첫 시즌만큼의 성과를 올리지는 못하고 있다. <파리 범죄수사대>의 경우 거의 시청자들의 무관심 속에서 흘러갔다. 이런 상황에서 방송사의 기대주였던 <호스피탈>의 1, 2회분 시청률 역시 실망스러운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시청자들은 리메이크보다 원작을 선호한다”는 지적도 있지만, 무엇보다 드라마의 독창성과 정체성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점이 가장 큰 원인으로 제기되고 있다. TF1의 농스 파올리니 신임 사장은 <호스피탈>의 실패에 대해 TF1의 프랑스 드라마가 “보다 진보적이고 위험부담도 감수해야 하며 확고한 정체성을 담보해야 한다”고 언급함으로써, 3년 전 시작된 미국시리즈물 리메이크 전략의 큰 수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하지만 드라마 제작자 또는 작가측은 지상파 방송사에서 “독창적인 드라마 제작”을 위해 얼마나 큰 위험을 감수할지 의문스럽다는, 회의적인 입장이다. 드라마
TF1을 비롯한 프랑스의 지상파 방송사는 프랑스 드라마 제작에 매년 6억 유로 이상의 예산을 투자하고 있다. 3~4년 전부터 지상파 방송사의 프라임 시간대를 장악하고 있는 미국 시리즈물의 인기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으며, 공영방송과 Canal+ 채널 등은 지금껏 없었던 새로운 소재를 과감하게 채택하는 모험을 하고 있지만 그 결과는 그다지 신통치 않다.
이런 상황에서 최대 시청률 채널이 자사의 리메이크 전략에 대한 수정 작업에 들어가게 되었다. 현재 프랑스의 방송계에서는 이러한 상황이 프랑스의 드라마 제작 역량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로 이어져서, 향후 새로운 전성기를 준비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다.
파리=김지현 통신원 / 파리 5대학 사회과학부 박사과정, jhkim724@noos.f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