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C, 제작·보도 부문 구조조정 단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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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제작·보도 부문 구조조정 단행
  • 런던=정준희 통신원
  • 승인 2007.10.24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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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조정’과 ‘인력감축’은 단 한 개의 한자(漢字)도 겹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별개의 의미를 가진 두 단어는 기묘하게도 동의어 취급을 받는다. 현실이 그렇기 때문이다. 행위의 영역에서, 구조조정은 곧 인력감축이다. 반복된 경험은, 이 두 단어가 실행적 동일성을 갖고 있으며 따라서 의미론적으로 별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정한다.

10월 17일을 전후로 공식화된 BBC 구조조정 계획, 이것이 지향하는바 역시 궁극적으로는 인력감축이다. 아무리 돌려 말해도 결국은 직원 규모를 줄이겠다는 것이고, 그렇게 해서 인건비를 아끼겠다는 뜻이다. 사실 톰슨 사장은 말을 꾸미거나 치장하지도 않았다. 이쯤에서 또 한 번 대대적으로 인원감축을 하는 것만이 BBC가 생존할 길이라고 했다. 심지어 만약 이를 수용할 수 없다면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 될 거라고 했다.

BBC 직원들이 경악한 것은 어찌 보면 사장의 이 난데없는 ‘결의’였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파업에 나서게 된다면, 나는 감원 그 자체보다는 오히려 마크 톰슨의 대처 방식에 대항하는 파업을 할 작정이다”라는 BBC 직원의 발언은 이를 짐작케 하는 중요한 힌트다. 그렇다면 왜 마크 톰슨은 자신의 리더십의 중요한 원천인 직원들의 근본적 지지의사까지도 건드려 가며 감원을 단행하고 있는 것일까.

실상 BBC의 구조조정은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된 일이다. 전임 사장들 시절부터 상당 규모의 인력감축이 있었을 뿐 아니라, 현임 사장에 이르러서는 자회사 매각 등을 포함해서 지금까지 수천 명의 감원이 이미 진행됐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구조조정의 일상화, 즉 끊임없이 기존의 일자리가 상실되는 한편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는 과정이 BBC 조직 원리의 한 축으로 자리 잡은 것이나 다름없다.

문제는 이 칼끝이 결국 고품질 BBC의 근원이라고 일컬어지는 프로그램 제작과 보도 부문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줄잡아 2500명을 전후로 한 감원이 단행될 것인데, 이 과정에서 보도 부문은 약 520명, 즉 현 인원의 25%를 잘라내야 한다. BBC 브랜드의 또 다른 축인 교양 프로그램은 더 타격이 심해 600명 감축으로 직원 절반이 사라질 운명이다. 온라인 뉴스 등의 멀티미디어 부문을 중심으로 800개의 새 자리가 만들어질 것이기 때문에 실제 잘려나갈 직원의 수는 1700명 정도가 될 것이라고는 하지만, 아무리 기술과 인력 재배치를 통해 효율성을 극대화한다 한들 BBC의 품질을 유지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물론 디지털 전환비용과 지방 이전에 큰 예산이 필요함에도 수신료 재협상이 실망스런 수준에 그쳤던 것은 사실이다. 이에 대응하는 톰슨 사장의 결단은 “더 적은 것이 더 많은 것을 준다”는 것이었고, 따라서 편성 10%를 줄이고 채널에 따라 재방송을 늘리되, 제작되는 프로그램 개개의 품질은 높이거나 유지한다는 원칙이었다. 하지만 이는 ‘고육지책’이었다기보다는 방송환경을 바라보는 다른 ‘시각’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요컨대 기획, 제작, 송출, 판매, 주문형 서비스를 통괄하여 모든 디지털 플랫폼을 지향하는 일관된 공정을 수립하는 것이 기존의 제작과 보도 영역보다 우선한다는 의미다.

구조조정이란 언제나 일정한 ‘우선순위’를 바탕에 깔고 있게 마련이다. 현 BBC의 구조조정과 인력감축을 동의어로 연결하는 중간지점에는 이렇게 전통적 제작과 보도에 의존하는 방송보다 디지털 기술에 융합된 일관된 기획과 전달이 더 중요하다는 가치관과 우선순위가 있다. 누구의 가치와 판단이 옳을 것인가. 방송의 미래를 가늠케 하는 중요한 싸움과 실천이 목하 BBC 앞에 놓인 셈이다.

 

런던=정준희 런던대학교 골드스미스 칼리지 문화연구센터 박사과정, KBS <해외방송정보> 영국주재 연구원 / juneheejung@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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