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한샘의 음악이야기] ③ 작은 신의 아이들과 바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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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바하와 영화 속 음악에 대해서 언급한지도 벌써 3주째 되어가는 듯하다.
서양의 바로크 음악! 더군다나 요한 세바스찬 바하의 작품이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를까?

학창시절, 필자가 기억하는 바로크 음악은 음악의 아버지 바하, 음악의 어머니 헨델로 대표되는 따분함의 연속이었다. 거기다가 음악의 아버지라니…….무슨 별칭이 그러한가? 그렇다면 베토벤은 음악의 삼촌이고, 비발디는 음악의 큰 아버지라도 된단 말인가? 그럼 음악의 조카는 누구이며, 또 고모는 누굴까? 지금 생각해도 웃기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더군다나 아버지라니, 아니 자기가 잘 났으면 얼마나 잘났기에 감히 아버지라는 용어로 불린단 말인가? 사춘기 시절의 반항심은 우리나라 음악교육의 획일성과 맞물려 바하를 그냥 그렇게 멀찌감치 놓고서, 클래식 전체를 싸잡아 죽은 음악으로 치부해버리고 지나치게 했다. 그런데 ‘그게 이 글과 무슨 상관인가? 바흐와 영화가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기에 다 아는 이야기를 이 소중한 시간에 읽어야 하나?’ 라고 독자들은 생각하실 지도 모른다. 딱 한 가지 문제를 제외하고는 맞는 이야기이다. 그것은 바로 나의 생각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흔히들 바하 작품의 가치를 빗대는 인용중의 하나로, 만약에 인류 문명이 멸망한다 하더라도 바하의 평균율만 있으면 서양 음악의 복원이 가능하다는 농담까지 나올 정도면 이 사람은 분명히 그 사상적 깊이에 있어 섣불리 예단하기 힘든 거인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이러한 음악의 깊이를 잘 드러내고 있는 영화 중 하나가 바로 ‘작은 신의 아이들’이다.

외딴 농아학교에 부임한 젊은 교사 제임스와 그 학교에서 근무하는 졸업생 출신의 청각 장애인인 사라와의 사랑이야기를 그려낸 이 수작은 그 해 골든 글러브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모두 휩쓸면서 화제가 되었던 작품이다. 그리고 이 영화에도 한 거장의 깊이가 녹아들어간 장면이, 그래서 이 영화와 함께 아직까지 기억되고 있는 명장면이 여지없이 들어가 있다.
영화 속 단 한 번의 개입으로 작품의 메시지를 깊게 각인시키고 있는 인간영혼의 전달자!

어느 날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돌아온 제임스는 유독 피곤에 지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바하의 음악 속에서 휴식을 취하려 한다. 하지만 사라는 청각장애로 인해, 그의 안식과는 멀찌감치 떨어져 있을 뿐이다. 농아학교 제자들 앞에서는 유능한 스승이었지만 정작 사랑하는 여인의 아픔 앞에서는 속수무책인 한 남자! 자신을 짓누르는 사랑하는 사람의 일상의 고통을 그는 바하의 음악을 통해 치유하려 시도한다.

바로 그때, 당신이 느끼는 감정을 보여 달라는 사라의 말 한마디!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이 요구에 제임스는 역시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방식으로 자신의 사랑을, 그리고 자신의 슬픔을 자신의 몸만으로 연주해낸다.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연주! 그리고 단 한 사람만을 위한 연주!

더 이상 그곳에는 음악만이 있지 않았다. 소리의 영역을 넘어서 음표와 음표사이에 담겨져 있는 영혼의 숨결을 제임스는 사라에게 토해내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의 작품이 주는 의미가 사람에 따라서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니…. 바하의 ‘2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장면 속에서 2대의 바이올린은 어쩌면 사라와 제임스를 암시하는 것은 아닐까? 실로 숨 막히도록 아름다운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 바로 바하의 인간 존재에 대한 사랑이 또 다른 방식으로 담겨져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그 장면만 생각하면 왠지 모를 애수가 밀려온다. 요한 세바스찬 바하, 그리고 작은 신의 아이들! 오늘 다시 한 번 그 작품을 들여다 봐야할 것 같다.   

오한샘  / EBS 교양문화팀 PD 


1991년 입사해 <예술의 광장> <시네마천국> 등 문화, 공연 예술 프로그램을 주로 연출했다. 그 밖에 대표작으로  <장학퀴즈> <코라아 코리아> 등이 있다. 영화, 음악 그리고 미술 등에 조예가 깊으며 현재 연재하고 있는 영화음악 뿐만 아니라 '영화 속 미술 이야기'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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