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한샘의 예술이야기] ⑲ 소비하는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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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한샘의 예술이야기] ⑲ 소비하는 인간
  • 오한샘 EBS PD
  • 승인 2007.10.05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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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산업혁명이 일어난 이후, 점점 더 기계화되고 산업화되어가는 인간의 문명은 어느덧  그 위험성의 한계에 다다르고 있는 것 같다.

보다 나은 삶을 지향하며, 인간사를 발전시킬 수 있을 것만 같았던 과학기술은 이제 거대 자본과 결합하여, 결과적으로 사유의 존재이던 인간을 생산과 소비의 존재로 격하(?) 시켰다. 어떻게 하면 더 생산하고 더 소비하게 할 것인가를 판가름하는 것이 한 나라 경쟁의 척도가 되었으며, 나라 안 온 국민의 관심사가 되어버린 것이다.

서점에서 재테크 서적이 교양서나 사상서 옆에 나란히 놓인 것을 보고 낯설어 했던 경험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오히려 돈 버는 기술에 관련된 책들이 전면에 진열되지 않는 서점은 손에 꼽힐 수 있는 세상이 됐다.

분명 재화와 자원은 한정되었을 진데, 모두가 더 가질려고 만하니, 우리 후손들의 앞날이 걱정스러울 뿐이다. 그렇다고 필자가 평소 환경문제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거나 미래 지구의 앞날에 깊은 우려를 하고 있는 깨인 계층은 결코 아니었음을 이 자리를 빌어 명확히 밝혀 둔다.

다만 언제부터인가 황사현상이 우리 일상사에 자연스러운 주제로 들어오고, 각종 태풍과 쓰나미 같은 재앙들이 일 년이 멀다하고 안방의 긴급뉴스로 주목을 끌면서부터 태도가 변하기 시작했을 뿐이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해수면이 높아가고 사막이 늘어가는 이상 징후들을 연신 접하면서도 그 주범인 미국과 중국의 해당산업 주가 상승에 열광하는 아이러니를 이제는 너무도 쉽게 접할 수 있다.

더군다나 미래를 위한 투자운운하며 해당기업에 대한 투자가 증권가에서 커다란 인기를 끌고 있는 현실을 바라보면서 문득 모순(矛盾)이라는 단어를 이 보다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상황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작금의 이익이 곧 후손들의 삶의 터전을 갉아먹는 일이 될지도 모르면서 현재의 개발과 진보만이 살 길인 양, 떠들어대는 이 사회가 마치 중세시대의 흑백논리 체제를 보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라는 기독교적 교리가 당시의 사회를 통제하기 위한 절차적인 시스템으로 기능하게 됨에 따라 인류사를 몇 백년간이나 후퇴시켰던 역사적 비극이 오늘날 다시 되풀이 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섬뜩하기까지 하다. 단지 그것이 중세의 도그마화 된 교리에서 오늘날 지구촌 시대를 지배하는 정교한 소비 시스템의 논리로 대체 되었을 뿐 기본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이다.

근대 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데카르트(Descartes 1596~1650)의 ‘나는 사유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진리가 이제는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로 바뀔지도 모를 것 같다. 아니, 단언컨대 바뀌고 있다. 소비하지 못하는 인간, 소비할 능력이 못되는 개체는 더 이상 존재의 의미마저 잃게 되는 세계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생각하는 인간에서 소비하는 인간으로의 개념변화는 주체적인 인간으로서 자아를 부르짓었던 커다란 틀을 일순간에 뒤집어엎은 것이다.

‘생각하고 있는 나 자신’을 존재의 절대근거로 삼았던 논리가 서서히 ‘소비하고 있는 나 자신’으로 바뀌어가고 있는 현실에서 이제는 주민등록증의 역할이 조만간 신용 카드에게 그 자리를 양보할 날도 머지않은 듯싶다. 사유하는 존재로서의 인간!
인간을 왜 Homo Sapience라고 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오늘은 소주 한잔 해야겠다.   

 
오한샘  EBS 교양문화팀 PD 

1991년 입사해 <예술의 광장> <시네마천국> 등 문화, 공연 예술 프로그램을 주로 연출했다. 그 밖에 대표작으로  <장학퀴즈> <코라아 코리아> 등이 있다. 영화, 음악 그리고 미술 등에 조예가 깊으며 현재 연재하고 있는 영화음악 뿐만 아니라 '영화 속 미술 이야기'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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