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광고로 경영진이 부담준 적 없었다
<경향>이 중도? 진보도 세분할 필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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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독립언론' 10주년 맞은 <경향신문> 송영승 편집국장

▲ 송영승 경향신문 편집국장 ⓒ오마이뉴스 유성호
지난 1일 <경향신문>이 독립언론 10주년을 맞았다. 1998년 4월 1일 <경향신문>은 새로운 출발을 선언했다. 당시 한화그룹에서 독립을 선언한 것이다. 회사 지분 100%를 사원들이 갖는 독립 언론을 선포했다.

'독립언론'의 길은 사실 의도한 바는 아니었다. 하지만 독립언론의 길을 선택한 것은 경향신문 사람들이었다. 97년 말 외환위기 도래와 함께 <경향신문>의 최대 주주였던 한화그룹은 <경향신문>에서 손을 떼기로 했다. 앞길은 막막했다. 한 치 앞도 전망을 하기가 어려운 엄혹한 시기였다.

길은 하나였다. 사원들이 자신의 퇴직금을 담보 삼아 새 출발의 밑천을 만들었다. 당시 749명의 사원 가운데 531명이 퇴직금을 털어넣었다. 같이 하고 싶었지만, 같이 할 수 없는 사람도 있었다. 후일을 기약해야 했다. 타의반 자의반의 새 출발이었다. 그 10년 후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 1988년 국민주 방식의 <한겨레신문> 출범 이후 10년 만에 사원주주 방식을 취한 또 하나의 새로운 '독립언론'의 출현이었다.

또 하나의 독립언론 출현, 그리고 10년

그 후 10년, <경향신문>의 길은 가시밭길이었다. 다수의 민초들이 민주화세력의 집권 기간 동안 오히려 더 궁핍해진 것처럼 <경향신문>이나 <한겨레>의 처지도 그리 나을 게 없었다.

굴곡도 많았다. <한겨레>가 그랬던 것처럼 자율 경영과 자율 편집의 길은 많은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그 진로를 놓고 내부에서 진통도 적지 않았다. 성장통이기도 했지만, 생존통의 진통이 더 컸다. 지금도 그 생존통은 현재 진행형이다.

하지만 <경향신문>은 최근 몇 년 동안에 독특한 자신의 존재 기반을 갖추기 시작했다. <한겨레>와 같은 진보 경향을 견지하면서도 <경향신문> 나름의 개성적인 지면 구성으로 그 존재감을 확실히 하고 있다.

<경향신문>의 독보성은 지난 2년여에 걸친 대형 집중 기획을 통해 구체화됐다. '진보의 위기'를 비롯해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 등 그동안 진보진영에서 금기시해왔던 진보진영 내부의 논란을 쟁점으로 삼아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는 곧 외화내빈의 민주화 집권 세력 10년에 대한 국민들의 냉엄한 평가와 맞물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라는 사회 의제를 설정하는 데 기폭제 역할을 했다.

비단 이 뿐만이 아니다. 집중과 선택으로 요약할 수 있는 시의적절한 집중기획 보도로 신문 제작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얻은 것도 최근 2년여의 두드러진 변화 가운데 하나다.

물론 이에 대한 평가도 다양하다. 힘있는 기획과 기획물에 대한 집중적인 지면 배치, 짧은 서평의 1면 고정 배치 등 신선한 편집으로 신문 제작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와 함께 노무현 정권에 대한 과도한 비판, 특정 진보 정치세력에 대한 '편향' 보도라는 또 다른 경향성을 보이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의욕은 넘치지만, 구체적인 보도 내용에서는 그 내용을 충분히 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경향신문>이 보수-진보 진영을 막론하고 언론계 안팎에서 하나의 '독보적인 존재'로서 화제의 중심이 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같은 변화의 중심에 2년 전부터 지면 제작의 총책임을 맡아 온 송영승 편집국장이 있다. 독립 경향 10주년을 하루 앞둔 3월 31일 오후 3시, 서울 정동 본사 사옥 6층 편집국장석에서 송영승 편집국장을 만났다.

"한국 언론의 당파성 너무 저급하다"

먼저 당파성의 이야기부터 꺼냈다. 독립언론 10년을 맞아 <경향신문>이 한국언론학회 회원 19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국언론 상황에 대한 진단 및 평가'를 묻는 여론조사에서도 한국언론이 맞고 있는 신뢰의 위기의 최대 요인으로 '지나친 당파성'이 꼽혔다. 응답자의 절반 가까이(49.5%)가 한국언론의 위기 요인으로 '특정 정치세력에 편향된 태도'를 꼽았다.

▲ ⓒ오마이뉴스 유성호
- <경향신문>이 독립언론 10년 기획으로 언론학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한국언론의 최대 위기 요인으로 당파성이 지적됐다. 그런데, 신문마다 나름대로 이념을 지향할 수 있을 텐데 신문이 지니는 이념 지향과 당파성 문제를 어떻게 보는가?

"언론이 이념을 지향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하다. 문제는 한국 언론의 당파성이 너무 저급하다는 것이다. 이념의 가치를 담는 것과 특정 정권이나 정파의 이익을 고스란히 대변하는 것은 당연히 구분해야 한다.

특정 정당과 교호작용을 하면서 특정 정파에 유리한 의제로 지면을 채우는 것은 저널리즘의 원칙에 위배된다. 이는 비단 그런 언론뿐만 아니라, 언론 전반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려 언론에 대한 불신을 심화한다는 점에서 치명적이다."

송영승 편집국장은 특히 객관성의 외피를 쓰고 특정 정파의 이익을 옹호하고, 나아가 스스로 '정당의 역할'까지 하고 있는 일부 한국 언론의 문제점에 대해 직설적인 언사로 비판했다. 한마디로 상당수 한국언론이 "정치에 너무 깊게 매몰돼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언론이 정권을 만든다"는 오만에 젖어 있으며 "권력 유착을 통해 사세를 성장시키려는 언론도 있다"고 했다. 송 국장은 어느 언론사라고 특정하지는 않았지만 한 언론의 경우 "지난 대선과 이번 선거 과정에서도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오해를 많이 받고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당파성의 문제는 그러나 그리 간단치만은 않은 문제다. 당파성을 띠는 신문들일지라도 자신들은 자신들의 '원칙'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저널리즘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금도도 안 지킨다는 데 있다. 언론은 객관적이고 정확한 정보와 여론 전달이 1차 역할이다. 이를 통해 독자들의 판단에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일부 언론들은 언론이 아니라, 정당의 역할을 자임하는 듯하다. 언론학자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가장 큰 문제점으로 당파성을 지적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언론인들 스스로 이런 문제가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못할 정도가 아닌가. 한국언론의 가장 큰 숙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이를 극복할 수 있을까.

"다른 방법이 없다고 본다. 간부가 됐든 일선 기자가 됐든, 기자 스스로 각성하고 토론하며 노력해야 한다. 그런 노력을 하는 수밖에 달리 길이 없지 않은가."

- 사실 그런 노력을 언론계에서도 많이 해오지 않았는가. 언론노조 운동이 그랬다. 또 기자협회 등 언론단체의 노력도 꽤나 있었다. 그러나 오히려 상황은 더 악화한 게 아닌가 싶다. 송국장께서도 언론운동의 1세대 축에 들 수 있을 텐데, 어떻게 보시는가?

▲ ⓒ 오마이뉴스 유성호
"1세대라고까지는 할 수 없고…. 언론노조 등이 이런 문제를 공유하고 고민해왔지만 오히려 최근 들어서는 이런 문제에 대한 의식이 조금은 희석되고 있는 것 같다. 언론사에서 노조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간부에 오르고, 이제는 언론계를 은퇴한 분들까지 있을 정도로 언론노조 운동이 연륜이 쌓였지만, 오히려 이런 문제에 대한 깊은 고민은 엷어진 게 아닌가 싶다. 민주화가 되면서 되레 민주화에 대한 깊은 고민이 둔화된 게 아닌가 싶다. 오늘과 같은 언론자유가 결코 공짜로 얻어진 게 아닌데 세대가 지나면서 이에 대한 논의나 고민이 부족한 것 같다."

"다른 방법이 없다, 스스로 각성하고 토론해야 한다"

한국 언론 전반의 문제에 대한 해답은 여전히 숙제일 수밖에 없는 듯 하다. 독립언론 <경향신문>의 이야기로 화제를 넘겼다.

- 독립 언론 10년, 쉽지 않은 과정이었던 듯 하다. 지난 10년 어떻게 정리하고 있는지?

"자의반 타의반이었지만 권력과 자본에서 벗어난 독립 모델을 만들어 보자는 초심으로 출발했다. 초유의 모델이었던 만큼 쉽지 않았다. 리버럴하면서 진보적인 신문을 지향하자는 것이었지만, 경영과 신문 제작 양 측면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막연한 진보신문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 속에서 진보신문의 좌표를 구체적으로 설정하고, 이제 집중적인 고민을 하고 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독립 언론을 선언한 지 10년, 이제야 그 갈 길이 조금은 확실하게 보인다는 이야기인 듯 싶다.

"조금 내용있는 리버럴 신문"의 길을 이제야 비로소 열어나가게 됐다는 이야기 일 수도 있다. 진보 신문의 길찾기가 그만큼 쉽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그 방향은 크게 두 가지로 짚을 수 있다. 아니, 하나다. 바로 헤매고 있는 진보진영의 길찾기를 통해 진보신문의 길을 찾고자 했다. 그 하나는 의제의 초점을 진보진영에 맞춰 진보진영의 문제점에 대한 집중적인 탐사에 나선 것. 또 하나는 노무현 정부에 대한 비판적 접근.

"지난 2년 동안 몇 가지 의제 설정에 집중했다. 하나는 진보진영에 대한 본격적인 문제 제기였다. 최장집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문제에 대한 탐사였다. 민주화 세력이 두 번 집권했는데, 왜 우리 사회의 내용적 민주주의는 이처럼 빈약한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 제기였다. 또 하나는 노무현 정부에 대해 상당한 거리를 두고 비판적으로 접근했다. 좌회전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하는 노무현 정부에 대해 보수 신문보다 신랄하게 비판했다."

<경향신문>의 지면이 최근 2년 사이에 크게 주목받고 있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바로 이런 지면 제작 방침 때문에 논란도 적지 않다.

"<경향>이 중도? 이제 진보도 더 세분할 필요 있다"

하지만 <경향신문>의 지면이 크게 바뀌었다고 보는 사람들 중에서도 많은 이들이 <경향신문>의 지면이 '중도적'이라고 평가한다. 독립언론 10년 기획으로 언론학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중도'라는 응답이 64.6%('진보'라는 응답은 30.7%)로 많았다. 한국언론의 전반적인 성향에 대해 '보수'라는 응답이 64.6%였던 데 비해서는 훨씬 진보적이지만, '중도'라는 과거의 이미지가 여전히 짙게 남아 있다고 볼 수도 있는 대목이다.

송국장은 언론학자들의 이런 '중도적'이라는 평가가 그리 마음에 드는 것 같지 않았다.

"실제 신문의 내용과 외부의 평가에는 다소 차이가 있는 것 같다. 과거의 이미지가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또 진보 이미지가 강한 <한겨레>와 비교해 '중도' 쪽에 점수를 많이 준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사실 쉽게 진보·보수 이렇게 나누지만 진보·보수도 이제는 더 세분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보통은 남북 문제나 복지 문제 등에서 진보와 보수의 차이가 확연하게 갈리지만, 구체적인 삶의 문제에서 진보가 무엇을 지향해야 하며, 어떻게 진보의 가치가 실현될 수 있는가 더욱 세밀하게 따져볼 때가 됐다고 본다."

단순한 진보·보수의 이분법은 이제 그 실효가 다 됐다는 반어법일 것이다. 구체적인 삶과 현장에서 그 내용을 채워가는 진보의 콘텐츠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 그동안 경향신문의 주요 기획을 보면 진보에 대한 기획 등 주로 지식인의 관심 사항들에 관한 것이 많지 않았나 싶다. 대중성 측면에서는 조금 취약하지 않았느냐 이런 지적도 있는데.

"진보진영의 위기나 지식인의 문제 등을 다룬 것이 조금은 무거웠다고 할 수 있다. 아무래도 대중성 측면에서는 거리가 있는 기획들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88만원 세대나 등록금 천만원 시대, 혹은 비정규직 문제 등은 바로 대중의 관심사를 다룬 것들이다. 다른 평가도 가능할 것이라고 본다. 또 신문의 주독자층은 아무래도 오피니언 리더들일 수밖에 없는 측면도 있다. 일단은 이들 오피니언 리더들의 관심을 촉발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 ⓒ 오마이뉴스 유성호
하지만 바로 여기에 대중성의 '역설'이 있다. '88만원 세대'나 '등록금 문제' 그리고 '비정규직 문제' 등은 대중적 쟁점을 다룬 것이기는 하지만, 대중들의 다수는 오히려 '머니 게임'이나 '돈 많이 번 사람'들의 이야기에 더 휩쓸려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조금 다른 관점이긴 하지만 강준만 교수도 '독립언론 10년 경향-앞으로 10년'에 관한 기고글에서 "한국 신문시장의 특수성에 잘 적응하는 길은 지식인과 시민단체들의 지지를 받기 어려운 길"이라고 지적한 것도 비슷한 맥락일 수 있다. 김대중·노무현 지지자들이 김대중·노무현에 적대적인 신문을 구독하면서도 아무런 모순을 느끼지 않는 '한국적 특수성'을 어떻게 돌파할 것인지가 진보 언론 <경향>의 고민일 수 있겠다. 
<경향>과 <한겨레>의 차이는?

내친 김에 <한겨레>와의 차별성에 대해서 물었다.

- 어찌 보면 가장 치열한 경쟁상대라고 할 수 있는데 <한겨레>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또 <한겨레>와의 차별성은 어디서 찾고 있는지?

송영승 국장은 이 질문을 피해갔으면 했다. 아무래도 다른 신문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듯 했다.

"한국 사회의 분포를 고려했을 때 진보 성향의 신문이 2개 밖에 안된다는 것은 적은 것이다. <한겨레>는 해직기자들이 중심이 돼 만든 대표적인 진보 신문이다. 창간 이후 일관되게 진보의 가치를 추구해왔으며, 우리 사회에서 매우 소중한 존재다.

그러나 지난 20년 동안 <한겨레>도 곡절과 부침이 있었던 듯 했다. 특히 김대중·노무현 시절 권력과의 관계 설정을 어떻게 할 것인가는 <한겨레>에도 새로운 도전 과제가 아니었나 싶다. <경향>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노무현 정부 후반기에 <경향>은 민주정부라고 해도 비판할 것은 비판해야 한다는 점에서 가혹하리만치 노무현 정부의 문제점을 짚고자 했다."

- 그런 점에서는 최근 민주노동당의 분당 사태와 관련해 <경향>의 보도태도도 두드러졌던 것 같다. 민노당 주류인 이른바 '자주파'의 문제를 집중해서 다뤘는데, 한편에서는 '평등파'의 종복주의 주장 등이 갖는 문제점 등을 짚는 데는 소홀하지 않았는가 하는 지적도 있다. <경향>이 또 다른 편향성을 보인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을 수 있는데.

"민주화 20년을 성찰해보는 기획 시리즈를 하면서 진보진영 내부의 문제를 스스로 드러낼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보수언론이 진보진영을 공격한 것과는 달리 과연 진보진영 당초 뜻대로 가고 있는지를 심층적으로 살펴본 기획이다. 의외로 반향이 컸고, 공감을 얻었다. 진보진영 스스로 그런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그런 맥락에서 평등파의 문제 제기나 진보신당이 상대적으로 강조된 것으로 비춰질 수도 있었겠지만, 종북주의 문제를 <경향>이 앞장서 제기하거나 한 것은 아니다. 진보진영 내부 스스로 문제 제기를 통해서 진보진영이 거듭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 독립언론으로서 지난 10년 많은 곡절이 있었던 것 같다. 당시 10년 후 <경향>이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경향>의 오늘이 있게 된 배경을 어떻게 보는가.

"<경향>은 한국 언론의 박물관 같은 존재다. 1945년 창간 이후 정말 다양한 궤적을 그려왔다. 자유당 때는 가장 강력한 야당지였다. 3공 시절 정부의 강제로 소유권이 넘어가고, MBC와 통합되는 과정을 밟기도 했다. 또 5·6공 때는 굴욕적인 시절을 보내야 했다. 또 재벌신문을 거쳐 독립 신문으로 거듭나는, 말 그대로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러나 선배들을 통해 면면이 이어져 내려온 것 가운데 하나가 자유당 시절 때 정말 자랑스러웠던 경험이다. 또 87년 민주화 이후 노동조합이 결성되면서 정말 많은 고민들을 했던 것이 지금까지 <경향>을 떠받치고 있는 중요한 자산이 되고 있다. 그것이 독립신문의 길을 열어나갈 수 있었던 소중한 밑천이 됐고, 지금의 <경향>을 지탱하고 있는 저력이 되고 있다."

'정말 고민을 많이 했다'는 송 국장의 이야기는 87년 이후 <경향신문>의 궤적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경향신문>은 87년 민주화 이후 독립 언론의 길을 모색했지만, 결국은 한화그룹을 대주주로 맞게 된다. 이 과정에서 <경향신문>은 한화의 요구에 따라 89년 초대 노조활동에 앞장섰던 5인을 해고하는 진통을 겪는다. 이른바 '경향 해직 5인' 사태였다. 동료들의 희생을 제물삼아 생존의 길을 택한 것이다. 내상이 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경향> 사람들은 이들 '5인'을 잊지 않았다. 사원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거둬 이들 5인의 생계를 지원했고, 마침내 92년 이들 5인을 복귀시킬 수 있었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경향> 사람들이 초심을 잃지 않고 버텨낼 수 있는 저력은 아마 그 때 마련된 것인지도 모른다.

-앞으로의 길도 결코 순탄치만은 않을 것 같다. 진보언론들이 모두 직면하고 있는 문제이지만, 어떻게 지속가능한 구조를 만드느냐가 중요할 것 같다. 편집과 경영은 독립해야 하지만 또 떼려야 뗄 수 없는 문제기도 하다.

"좋은 신문을 만들어보고자 하는 의욕이 의외로 강하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경향>만의 독특한 저력이 있다. 어려운 고비를 많이 넘겼지만 상대적으로 이탈이 적은 데에서도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이야기하는 것이 쑥스럽기도 하지만 지면에 대한 외부의 평가도 좋아지고 있다고 본다. 경영 문제 역시 바닥을 쳤다고 본다. 신문 제작도 탄력을 받고 있다.

경영과 제작 모든 측면에서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이 흐름을 지속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럴 수 있다고 확신한다. 경향 구성원 다수의 생각이 정체성을 훼손하면서까지 경영을 안정시켜야 한다는 이분법 논리에서는 벗어나 있다고 본다. 여전히 어려운 점이 많지만 앞으로도 경향의 방향은 큰 흔들림이 없을 것이다."

인터뷰가 끝난 다음 뒤늦게 알았지만, 지난 2년여 동안 <경향신문>의 경영을 맡아왔던 고영재 사장이 송영승 편집국장과 인터뷰를 한 31일 연임에 나서지 않겠다는 뜻을 아침 국실장 회의를 통해서 밝혔다. 사원들에게도 사내 통신망을 통해 이같은 뜻을 밝혔다.

고영재 사장은 경영 여건이 상당히 개선된 것은 사실이지만, 사원들의 절박한 기대를 충족시키는 데는 미흡했다는 점을 그 이유로 든 것으로 알려졌다. 고 사장은 비록 경영환경이 획기적인 반전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경영 호전의 가능성이 엿보이는 이 때 무엇보다 독립언론으로서 <경향신문>이 추구해 온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경영 호전의 흐름을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며, 새로운 대표 이사 선출 과정이 '경향 진화의 축제'가 될 수 있기를 희망했다.

<경향신문> 사원주주회는 차기 대표이사 선출 과정에 착수했다. 안팎으로 전환기라는 점에서 <경향>은 독립언론 10년 만에 또 한 번의 중요한 전기를 맞게 됐다.

"삼성 광고로 경영진이 부담준 적 없어"

- 지난해 말부터 삼성 비자금 보도 등으로 삼성이 광고를 주고 있지 않다. 편집책임자로서 경영 문제에 직접 연관은 없다고 하더라도 상당한 부담을 느꼈을 것 같은데.

"삼성 광고가 전체 언론에 미치는 영향이 어느 정도인지는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우리 같은 신문은 더욱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 경영진도 상당히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발행인을 비롯해 경영진들이 이 문제 때문에 편집국에 부담을 준 적은 없다. 지금의 <경향>이 가능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경향>은 어디까지나 저널리즘 원칙에 충실할 것이다."

<미디어오늘> 보도에 따르면 <경향신문>은 지난해 10억 원 정도의 영업 적자를 기록했다. 처음으로 단기 순이익을 기록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사원들의 상여금 반납 등 내핍의 희생을 치른 것이긴 하지만, 합리적인 비용 절감 노력과 광고 매출 등의 증가에 따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예정됐던 삼성 광고만 제대로 집행이 됐더라면 영업 이익도 바라볼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 이명박 정부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는가? 언론 프렌들리하겠다고 하고 있지만, <경향신문>이 보도했던 것처럼 인수위 때부터 언론인들에 대한 성향 조사를 시도하는가 하면, 불편한 기사를 압력을 넣어 빼려했다는 의심을 사는 일도 있었다.

"다른 분야에서도 그런 징후들이 있지만, 언론 문제에서도 과거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명박 정부는 전혀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상당 부분 김대중·노무현 정부 이전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어 보인다. 언론에 대해서도 과거 잘못된 관행을 되풀이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게 한다. 지켜보자."

- 신문 제작 하는 데 있어서 어떤 점이 가장 어려운가.

"역시 관행이 가장 어렵다."

송영승 편집국장은 <경향신문>의 주된 제작 방향으로 '집중과 포기'를 들었다. '집중과 선택'의 다른 메타포일 것이다. 정보과잉의 시대, 신문은 독자들에게 꼭 알려야 할 것들, 사회 쟁점으로 삼을 것을 집중적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를 위해서는 과감하게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하지만 이것이 쉽지 않다는 고백이다. 편집진들이 매번 그렇게 다짐하지만, 당장 신문 제작에 쫓기다 보면 '관성의 법칙'이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한 때는 전 편집국원을 테스크포스팀으로 묶을 생각도 했다. 제대로 된 의제를 설정해 거기에 집중하겠다는 이야기다.

"'생태'와 '평화' 문제 깊이 다루겠다"

이제 인터뷰를 마감할 시간이 됐다. 송국장은 지금은 그래도 여유가 있는 시간이라고 했지만, 예약한 1시간 인터뷰 시간이 다 돼가면서 되레 인터뷰 하는 사람이 조급해지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오후 4시, 편집국장으로서는 한참 바쁠 수밖에 없는 시간이다.

- 앞으로 어떤 점에 집중할 계획인가.

"생태와 평화 문제가 중요한 쟁점이 될 것이라고 본다. 21세기 화두기도 하지만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이 문제가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사회가 성장주의의 신화에 매몰됐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성장과 개발, 경쟁 위주로 더 치닫지 않을까 싶다.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경제 활동 속에서 생태와 평화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룰 필요가 있을 것이다. 깊이 있는 정보와 분석, 그리고 우리 사회의 전망을 새롭게 열어나가는 데 집중할 것이다."

송영승 편집국장은 <경향신문>이 진보적인 가치를 추구하면서도 균형잡힌 시각을 전하는 데도 더욱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향신문> 지면 안에서도 건강한 보수와 진보의 가치가 공존하고 교호하는 그런 소통의 장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구상이다. 그런 노력은 '독립언론 10년 경향' 기획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강천석 <조선일보> 주필의 글을 받기도 했고, 보수 논객들의 쓴소리도 담았다.

그는 지면 제작에서 가장 아쉬운 대목으로 국제문제를 집중해서 부각하지 못한 점을 들었다. 우물안 개구리식 안목에서 벗어나자면 무엇보다 지구촌의 흐름과 호흡을 같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반어법일 것이다. "국내 쟁점들이 너무 많고 뜨거워" 생각처럼 국제문제를 부각하는 데 미흡했지만, 미국이나 유럽 중심에서 벗어나 아시아의 시각에서 아시아의 문제에 집중하는 방안을 모색중이다.

"젊은 기자,들 선배 세대들보다 낫다"

송영승 편집국장은 술꾼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지금은 술을 삼가고 있다. 체력 문제도 있지만, 요즘 젊은 기자들에게는 술꾼이 그리 환영받지 못하는 분위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구세대들과의 소통을 위해서는 술을 마다할 수 없는 처지여서 쉽지만은 않다.

마지막으로 후배기자들에 대해 물었다. 조금은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젊은 기자들을 보면 선배 세대들보다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될 때가 많다. 전문성 측면에서나 직업윤리 차원에서 장점들이 많다. 선배 세대들이 제네럴리스트들이 많았다고 한다면 후배 기자들은 마니아 지향들이 많다. 윤리 측면에서도 되레 완강할 정도로 원칙적이다. 취재원들과의 관계를 맺는 것이나 취재의 방식을 보면 무척 겸손하다. 선후배 관계나 커뮤니케이션도 원칙적이면서도 잘한다는 생각이 든다."

젊은 기자들에 대한 칭찬이 조금은 '오버'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희망은 바로 그렇게 이어지면서 불현듯 출현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바로 이런 신세대 기자들의 등장이야말로 구세대 기자들이 걸어 왔던 험한 여정이 싹틔운 새싹들일 수 있을 터이니까. 희망의 진화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어쨌든 반가운 일이다.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http://www.ohmynews.com)에서 제공하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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