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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칼럼]

|contsmark0|총선시민연대가 지난 1월 24일 마침내 공천반대인사 66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여야 중진급 인사가 다수 포함되어 있어서 그 파급효과는 충격적이고 또 오래도록 지속될 전망이다. 한편에서는 명단 작성의 공정성에 시비를 걸기도 하고, 또 명단 공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인사들 중 다수가 국회의원에 선출될 것이라는 비관섞인 전망을 하기도 한다. 사실 인사 선정이 공정했는가, 그 명단에 누가 포함되고 누가 빠졌는가, 명단에 포함된 인사들이 선거에서 어떤 심판을 받는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 헌정사상 최초로 국민들 스스로 "적극적인 정치적 발언"을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정치권에 대한 실망과 좌절로 우리 사회에 팽배했던 정치에 대한 무관심, 냉소적 분위기가 이렇게 뜨거운 관심으로, 자부심에 찬 주권의식으로 대체될 수 있으리라 누가 기대나 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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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5|시민단체들의 이런 움직임은 환영해야 마땅한 일이지만, 언론에 종사하는 소위 언론인들에게는 준열한 자기 반성을 촉구하는 일면도 있다. 총선시민연대의 이번 발표는 언론이 유기한 직무를 대신한 것으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들 언론은 현대의 사관(史官)이라고 한다. 또 사회의, 특히 권력(그것이 정치적인 것이든, 경제적인 것이든, 사회적인 것이든, 혹은 문화적인 것이든)의 감시자(監視者)라고 한다. 언론의 기록은 그대로 역사의 기록이 된다. 언론 종사자들은 마땅히 엄정한 사관으로서의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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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0|그러기 위해 언론은 권력의 불의한 요구에 항거해야 하고, 권력의 불순하고 위험한 의도를 폭로함에 있어서 옛날 사관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궁형(宮刑)을 당할 각오를 지니지 않으면 안된다는 말이다. 항상적인 긴장관계, 그것이야말로 권력과 언론의 참된 관계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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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2|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 언론의 대체적인 역사는 권력을 지향하고 권력의 이익에 복무해 온 역사다. 권력을 지향하고 권력의 눈치를 봄으로써 언론은 권력에 울타리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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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7|그 변은 늘 변한다. 참혹한 군사정권 시절에는 "나도 살아야 하니까", 문민정부 시절에는 "군사정부가 끝났으니…", 국민의 정부에 와서는 "최초로 성공한 정권교체이니까…" 언론은 늘 그런 방식으로 권력에 순치됨으로써 그 스스로 권력화한다. 물론 언론이 권력과 긴장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스스로 권력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전자의 권력이 권력에 순응하는, 기껏해야 "2인자의 권력", 1인자의 그늘에서만 유지되는 권력이라면, 후자의 권력은 "권력과 대등한 위치에 서있는 진짜 권력"이다. 후자의 권력이야말로 "칼보다 강한 펜"의 권력이며, 그것의 무기는 진실이다. 전자의 근거가 소수의 파워 엘리트라면 후자의 근거는 명분과 국민 대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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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2|우리 언론의 굴절된 역사는 방송의 경우에도 더했으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 많은 언론인들의 정치인으로의 변신에서도 나타난다. 그것을 "훼절(毁節)"이라고까지는 하지 않더라도, 언론인들의 일그러진 권력욕구를 읽을 수는 있다. 이번 총선에서도 많은 방송인들이 정치판에 뛰어들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사실 방송의 영향력이 증대되면서 보다 대중에 친근한 방송인들이 대중적 인기를 등에 업고 정치에 입문하는 것은 어찌 보면 막을 수 없는 대세인지 모른다. 거기에 의석 한 석이라도 늘려보려는 정치권의 집요한 유혹이 있는 마당에 당신 혼자서만 독야청청(獨也靑靑)하라는 것이 지나치게 도덕적인 요구인지도 모른다. 정치판에 뛰어들고 안 뛰어들고는 전적으로 자신이 판단해야 할 문제이며, 또 정치에 대한 투철한 소신과 철학을 가지고 있다면 "훼절(毁節)"이라고 비난할 일만은 아니라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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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7|그러나 프로듀서연합회가 지난 1월 19일자 성명을 통해 적확하게 지적했듯이, 방송 혹은 방송 관련단체를 "정치 진입을 호시탐탐 기웃거리는 정치모리배의 대기실"로 여기는 풍조만은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찌어찌 연줄을 대 방송에 얼굴을 내밀어 좀 알려졌다 싶으면 방송을 징검다리 삼아 정계로 나가는 사람들에게서 언론인의 진정한 사관으로서의 사명감을 기대할 수는 없다. 더구나 권력과의 긴장관계는 힘들 수밖에 없다. 그런 사람들에게서 정치인으로서의 소신과 철학을 요구할 수는 더더욱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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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32|진정한 언론의 권력은 권력과 대항하는 권력이다. 스스로 권력과 항상적인 긴장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만이 시민들의 정치의식에 부응하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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