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베스트셀러 코너를 채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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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베스트셀러 코너를 채우다
  • 영국=배선경 통신원
  • 승인 2008.05.21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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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먼 샤마 교수의 책 <영국 역사>.
바야흐로 텔레비전, 인터넷과 휴대폰 등을 통해 영상으로 보여지는 정보에 더욱더 익숙해져 가고 있는 요즘이다. 심지어는 한 나라의 역사 같은 긴 내레이션이 필요한 정보도 곧잘 한 시간 내외의 영상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되곤 한다. 그런데 영국에서는 TV를 통해 편하고 쉽게 얻은 정보를 다시 책으로 펴내는 경우가 많다. 단순히 TV의 광고효과를 힘입어 돈을 벌기 위한 것일까? 만일 그렇다면 이런 책들이 방송이 끝난 후에도 몇 주 혹은 몇 달 동안 베스트셀러에 머물러 있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영국의 유명 요리사 중 한명인 나이젤 로슨의 요리책이 수주간 영국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에 머물러 있는 것을 보면서 다시 한번 TV를 통한 광고효과의 대단함을 느낄 수 있다. 그녀의 요리 프로그램이 방송을 타는 동안 25파운드나 하는 요리책이 단숨에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더니 프로그램이 종료된 지 몇 달이 지난 지금도 계속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TV를 통해 방송된 프로그램이 책으로 나오는 경우는 영국에서 아주 흔한 현상이다. 특히 영국의 공영방송 BBC는 광고수입 없이 수신료만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책을 판매해 벌어들이는 수입이 재원 충당을 위한 일종의 자체 자구책 중 하나이기도 하다. 문제는 BBC가 펴낸 대부분의 책들이 ‘쉽게’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 사이먼 샤마 교수.
요리 프로그램에서부터 역사물에 이르기까지 BBC를 비롯한 영국의 방송사에서 펴낸 책들이 단순히 또 다른 수익을 발생시키기 위해 ‘영상’을 ‘글’로 바꾼 정도라면 이것은 당연히 얄미운 사업이다. ‘TV 방영물’이라는 꼬리표 하나로도 이미 엄청난 광고효과가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국 TV가 펴낸 대부분의 책들은 이런 괘씸함을 살짝 비껴간다. 대부분의 책들은 TV 프로그램이 방영되기 이전에 이미 집필되어 TV 방영과 동시에 출간된다. 방송되기 전에 이미 집필된 책들은 당연히 방송을 통해 보여지는 정보와는 다른 수준의 깊이를 제공한다.

영국의 저명한 역사가인 사이먼 샤마 교수의 ‘영국 역사’는 TV다큐멘터리로써 뿐 아니라 역사서로써도 상당 기간 동안 대중적인 인기를 누렸다. 사이먼 샤마의 ‘영국역사’를 읽고 있으면 어느 순간 TV를 통해 봤던 이미지는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그가 맛깔스럽게 써 내려간 글 한줄한줄에 새롭게 빠지게 된다. 사이먼 샤마는 TV와 책을 통해서 같은 주제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두 매체의 차이를 분명히 구별하고 있다.

즉, 그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빽빽한 영국 역사 이야기 중에서 영상을 통해 드라마처럼 보여주고 싶은 부분과 냉철하게 글로써 전달하고 싶은 부분을 뚜렷하게 구분할 줄 아는 역사가다. 먼지와 솜털이 가득 날리는 답답한 작업장에서 안전장치조차 없는 거대한 공장 기계들의 소음 속에 갇혀있던 18세기 영국 노동자들, 그들 보다 더 비참하게 일을 구걸하며 굶주려갔던 도시 실업자들의 이야기는 마치 한편의 드라마처럼 TV를 통해 이야기 하고 싶었을 것이다. 한편 갓난아이를 버려둔 채 눈물을 흘리며 일할 수밖에 없었던 어린 엄마에서부터 영국을 세계 강국으로 우뚝 세운 빅토리아 여왕에 이르기까지 산업혁명 당시 영국의 딸, 아내 그리고 어머니들에 대한 이야기는 빼곡히 글로 적고 싶었던 것 같다.

영국 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에 가면 늘 TV로 방영된 프로그램 중 책으로 나온 것들이 한두 권씩 섞여있다. 그 중에는 꼭 재방송을 보듯이 TV에서 봤던 ‘영상’이 따분하게 ‘글’로 옮겨진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책들은 그 이상의 속 깊은 내용들을 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다른 기대감을 가지고 ‘TV방영물 책’을 골라보게 된다.

▲ 영국=배선경 통신원/ LSE(런던정경대) 문화사회학 석사

만일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영상’을 ‘글’로 그대로 옮긴다면 그것은 자원의 낭비가 되겠지만, 많은 사람들의 시간과 노력으로 쌓여진 값진 정보들을 방송용에 적합한 것만 골라내고 버린다면 그것 또한 자원의 낭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TV와 책이라는 각 매체의 특성과 장점을 잘 생각해보면, TV가 책을 펴내는 것 혹은 책이 TV를 만드는 것이 오히려 당연하게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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