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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 지옥에 떨어지지 않으려거든

절집이나 노인이 계신 집에 가면 ‘회심곡"(回心曲)이라는 노래를 가끔 듣게 된다. 조선조에 서산대사가 지었다고 전하는 이 노래는 글자대로 ‘마음을 되돌리는 노래"라는 뜻인데, 그 내용인즉 사후세계(저승)를 자세히 알려줌으로써 사람들이 마음을 고쳐먹고 생전에 착한 일을 많이 하도록 인도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불교교리와 접합된 우리의 전통적인 내세관을 쉽게 노래로 풀어서 대중들을 선도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노래다. 회심곡에 따르면 사람은 죽으면 일단 염라대왕 앞으로 가서 생전에 한 일로 재판을 받게 되는데, 염라대왕은 죽은자를 세워놓고 다음과 같이 묻는다. “... 배고픈 이 밥을 주어 아사구제(餓死救濟) 하였느냐 / 목마른 이 물을 주어 급수공덕(給水功德) 하였느냐 / 헐벗은 이 옷을 주어 구난(救難)공덕 하였느냐 / 좋은 곳에 집을 지어 행인(行人)공덕 하였느냐 / 병든 사람 약을 주어 활인(活人)공덕 하였느냐 / 깊은 물에 다리 놓아 월천(越川)공덕 하였느냐 / ..." 이렇게 일일이 따진 다음 잘 한 사람은 극락으로 보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여죄를 모아 풍도옥(諷都獄), 곧 지옥으로 보내 버린다. 저승에서 극락과 지옥, 그 엄청난 극단을 가르는 기준이란 바로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얼마나 인정을 베풀었느냐 하는 것, 다시 말하면 남을 불쌍히 여길 줄 아는 사람인가 아닌가 하는 아주 단순한 것이다.북한에 식량이 없어 동포들이 굶어죽고 있다는데, 국민들의 넘치는 동포애에도 불구하고 남한의 정부나 언론은 나서는 기색이 전혀 없다. 유엔이 나서 각국의 원조를 얻어내면서 한국의 참여를 요구하고 있는데도 정부는 북한에 대한 경계심만을 강조하며 언론의 모금운동을 금지하는 등 국민들의 자발적인 구호운동을 오히려 제한하고 있다. 아무리 국내정세 때문에 정신이 없고 권력재창출이라는 것에 신경이 쓰인다지만, 정부의 태도는 누가 보아도 이해하기 어렵다. 한겨레신문 등 극소수의 언론을 제외한 대다수 언론도 마찬가지다. 언론이 직접 나서는 모금운동은 정부가 막고 있어서 핑계거리가 된다 해도, 북한주민들의 참상과 민간단체의 구호활동을 제대로 보도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문제는 언론사 사주나 편집데스크들에게 과연 그럴 의지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배고픈 동포를 볼모로 북한당국의 항복을 받아내려 하는 정부관계자나, 정부의 눈치나 보며 나몰라라 하는 언론관계자나, 죽어서 좋은 데 가기는 틀린 것 아닐까. 굳이 저승이니 염라대왕이니 하는 따위의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죽어가는 사람은 무조건 살리고 볼 일이다. 사람을 죽인 사형수라 해도 교수형이나 총살을 시킬지언정 굶어 죽이지는 않는다. 대다수의 북한동포들은 무슨 죄를 지은 사람들도 아니지 않는가. 그들이 죄가 있다면 단지 북쪽에 산다는 것, 그리고 굶어 죽을 지경인데도 순한 양들처럼 권력에 저항하지 못한다는 것 뿐이다. 죽은 김일성의 생일잔치에 수많은 외국인들을 불러 수억달러를 써버렸다는 북한의 정신나간 권력자들이 아무리 한심하고 증오스럽더라도, 그 밑에서 말도 못하고 죽어가는 동포들은 우리가 살려내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심각한 상황에서 자꾸 객적은 소리를 하는 것같아 미안하지만, 하는 김에 귀신 이야기도 하나 하자. ‘아귀다툼"이니 할 때 말하는 아귀(餓鬼)라는 것이 ‘굶어 죽은 귀신"을 이르는 것이 아니라, ‘이승에서 너무 욕심을 부리다가 죽어 아귀도(餓鬼道)에 태어나는 귀신"을 말한다고 한다. 권력에 대한 집착도 못된 욕심이요, 그 눈치를 보며 제 한몸 무사하고자 할 일 제대로 안하는 것도 치사한 욕심이다. 욕심많은 인간은 아귀도에 떨어질 직행표를 예약해 놓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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