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명박 정부의 정연주 KBS 사장 조기사퇴를 위한 흔들기가 본격화된 가운데 구 방송위원회의 방송위원을 비롯해 언론계, 종교계, 학계, 노동계, 문화예술계, 법조계 등 각계 시민사회 원로 151명이 공영방송의 독립성 보장을 촉구하고 나섰다.
시민사회 원로들은 27일 오후 2시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열린 ‘공영방송 독립성 수호 및 공영방송 지키기 각계선언’ 기자회견에서 “임기가 보장된 정연주 KBS 사장의 전방위적 사퇴압력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선언문에서 “방송통신위원장, 일부 친여성향의 KBS 이사, 감사원, 이른바 ‘보수단체’ 등이 합세해 ‘정연주 퇴진’에 나섰다”며 “임기가 보장된 공영방송 사장을 퇴진시키겠다는 시도는 그 자체로 심각한 방송독립성 훼손이며, 초법적인 행위”라고 지적했다.
이어 “2003년 시민사회와 KBS 내부 구성원들은 사장추천위원회를 통해 정연주씨를 KBS 사장에 추천했다”며 “이명박 정부가 끝내 정 사장을 쫓아내고 정권과 코드가 맞는 사람을 사장 자리에 앉힌다면 어렵사리 일궈 놓은 절차적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지난 권위주의 정부 시절, ‘관제방송’이라는 오명을 얻었던 KBS는 시민들의 ‘땡전뉴스’에 저항하는 의미로 수신료 거부운동을 벌였고, 언론노동자들이 정권이 내려 보내는 ‘낙하산 사장’에 거세게 저항했다”며 “오늘날 KBS가 누리고 있는 정치적 독립성은 이런 저항의 결과이자, 우리 사회 민주주의 성장의 한 징표”라고 말했다.
동아투위 해직언론인 정동익씨는 “90년 KBS 민주화 투쟁 때 37일간 낙하산 인사 반대 투쟁으로 여러 명이 구속되고 수십 명이 해직되는 아픔을 겪고, 수신료 거부운동 등 줄기찬 투쟁으로 공영방송을 세웠다”며 “이명박 정권은 권력과 재벌의 확성기 노릇을 하기위해 KBS를 ‘땡전뉴스’로 되돌리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는 “15년 전 교도소 안에서 읽었던 한겨레신문의 정연주 칼럼은 목마른 사람에게 주는 시원한 물과 같은 존재였다”며 “당시 특파원이었던 그가 미국에 오래 살면서도 조국의 민주화에 대한 애환과 대안을 이야기 해 줬다”고 회상했다.
이어 오 대표는 “KBS에서 정 사장이 버티고 있는 게 조마조마하지만 뱃심 두둑하게 제자리를 계속 지켜줬으면 좋겠다”며 “공영방송의 독립성 수호를 위해 시민사회 세력들이 미약하나마 든든한 버팀목이 돼 주겠다”고 밝혔다.
임기란 민가협 고문은 “선거 때만 되면 빨갱이가 나오고, 학생들은 용공분자라고 국민들에게 선전을 했던 전두환·노태우 시대의 방송은 90년 KBS 투쟁으로 겨우 바로 잡았다”며 “그랬던 방송을 이명박 대통령은 나쁜 것만 배워와서 정사장을 옭아매고 쫓아내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일보 논설위원이었던 주종환 동국대 명예교수는 “정사장의 사퇴 압력을 보고 군사정권에 있었던 일이 다시 되풀이 되는 것을 보고 있다”면서 “방송은 각 가정에 직접 전파가 되는 가장 중요한 매체인데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마음대로 바꿔치기 하는 것은 민주사회에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막아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선언에는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이영 민가협 상임대표, 성유보, 이효성, 최민희 등 전 방송위원 6명,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26명, 동아·조선 투위 해직언론인 12명, 도종환 시인 등 각계 원로 151명이 참여했다.
* 다음은 선언문 전문이다.
[선언문] 공영방송과 민주주의를 지키는 일에 함께 나서자
오늘 우리는 이 땅의 민주주의를 더 이상 후퇴시킬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지 이제 석 달. ‘민주화’와 ‘산업화’를 통합해 ‘선진화’로 나아가겠다던 이명박 정부는 구시대적인 리더쉽으로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천박한 ‘돈의 논리’를 사회 모든 영역에 들이대면서 국민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서민들에게 박탈감을 안겨 준 ‘부자 내각’, 여론을 무시한 불도저식 ‘운하 밀어붙이기’, 부자와 재벌을 위한 경제 정책, 공교육을 파탄으로 내모는 학교자율화 조치 등등 잇따른 실정에 더해 국민의 건강권과 검역 주권을 포기한 미국 쇠고기 전면 개방은 거대한 국민적 분노를 일으켰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지지율 폭락을 ‘방송 탓’으로 돌리며 공영방송에 대한 노골적인 압력과 통제를 시도하고 있다. 한미 쇠고기 협상의 문제점과 광우병 위험을 다룬 MBC <PD수첩>에 대해 청와대가 ‘법적 대응’을 검토하겠다고 나서는가 하면, 영국의 광우병 파동을 다룬 EBS <지식채널 e>는 청와대의 전화 한 통에 방송이 일시 중단되기도 했다.
특히 임기가 보장된 KBS 정연주 사장에 대한 전방위적인 사퇴 압박은 이명박 정부의 ‘공영방송 장악’ 시도가 얼마나 집요한지 보여주고 있다. 방송통신위원장, 일부 친여성향의 KBS 이사, 감사원, 이른바 ‘보수단체’ 등이 합세해 ‘정연주 퇴진’에 나섰다.
방송의 독립성을 위해 헌신해야 할 방송통신위원장은 ‘이명박 정부의 지지율 하락이 정연주 사장 때문’이라는 비뚤어진 인식으로 KBS 이사들을 압박하고, 여기에 부화뇌동한 친여 성향의 KBS 이사들은 ‘정연주 사장 사퇴 권고 결의안’ 운운하고 있다. 감사원은 ‘보수단체’들의 감사청구를 받아들여 KBS에 대한 특별감사 결정을 내렸다.
벌써부터 방송계에서는 ‘아무개가 KBS의 사장이 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임기가 보장된 공영방송 사장을 퇴진시키겠다는 시도는 그 자체로 심각한 방송독립성 훼손이며, 초법적인 행위다. 뿐만 아니라 2003년 시민사회와 KBS 내부 구성원들은 사장추천위원회를 통해 정연주 씨를 KBS 사장에 추천했다. 이명박 정부가 끝내 정 사장을 쫓아내고 정권과 코드가 맞는 사람을 사장 자리에 앉힌다면 어렵사리 일궈 놓은 절차적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것이다.
지난 권위주의 정부 시절, KBS는 ‘관제방송’이라는 오명을 얻었다. 시민들은 이른바 ‘땡전뉴스’에 저항하는 의미로 수신료 거부운동까지 벌였고, 언론노동자들은 정권이 내려 보내는 ‘낙하산 사장’에 반대해 거세게 저항하기도 했다. 오늘날 KBS가 누리고 있는 정치적 독립성은 이런 저항의 결과이며, 우리 사회 민주주의 성장의 한 징표라고도 할 수 있다.
정권이 방송을 좌지우지 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우리는 똑똑히 보아 왔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KBS가 정권에 장악된다면 그 파장은 방송계와 언론계 전체로 확산되고, 사회 전반의 민주주의 후퇴로 나타날 것이다.
국민들과 시민사회단체, 제 정당에 호소한다. 공영방송 사장의 임기를 보장하는 것은 방송 독립성의 기초이며, 방송 독립성을 지키는 것은 민주주의를 지키는 일이다. 공영방송과 민주주의를 지키는 일에 함께 나서자.
이명박 정부에 촉구한다. 우리는 이명박 정부의 실패를 바라지 않는다. 국민들이 좌절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지금과 같이 겉으로만 ‘국민과의 소통’을 내세우며 독선적인 국정 운영을 밀어붙인다면 국민과 이명박 정부 모두가 불행해진다. 지금 이명박 정부가 대하고 있는 국민은 일방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리더쉽을 수용할 수 없는 성숙한 민주시민이다. 지금이라도 구시대적 발상을 버리고 새로운 시대에 걸맞게 국정운영 전반을 쇄신해야 한다. 그 가운데 하나가 최시중 씨를 비롯해 공영방송 장악을 시도하고 방송통제에 앞장선 측근들을 척결하는 일이다. 이명박 정부의 현명한 선택을 거듭 촉구한다.
아울러 정연주 사장에게도 당부한다.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 知松柏之後彫). 날씨가 추워진 후에 전나무와 소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안다고 했다. 우리는 정사장이 민주주의와 방송독립성 수호를 위해 꿋꿋하게 나아가 주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