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이송 중에 맞을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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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이송 중에 맞을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인터뷰] 29일 밤 경찰의 무력진압 과정에서 다친 이성규 독립 PD
  • 이기수 기자
  • 승인 2008.06.30 16: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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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규 PD
▲ 이성규 독립PD
촛불집회에 대한 경찰의 강경진압이 진행된 지난 29일 자정. 이성규 독립 PD는 경찰과 시민이 대치한 촛불집회 한 가운데 있었다. 첨예한 대치 속에 한 시민이 부상을 당해 쓰러져 있었고, 이 PD는 그 시민을 업었다. 그리고 전경들에게 방패와 진압용 곤봉으로 한없이 맞았다.

이 PD는 "경찰은 단일 조직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조직이다. 그들이 조직적으로 휘두르는 폭력과 일부 시민이 개별적으로 휘두르는 폭력은 분명 다르다"며 "그 폭력조차도 시민들의 저항권이었다고 본다"며 경찰의 진압과정을 비판했다.

그는 조선, 중앙, 동아일보 보도에 대해서도 문제를 지적했다. “조중동은 각목을 휘두른 시민에 대해서만 보도할 뿐 현장에서 그 시민을 말린 수많은 시민들의 존재는 보도하지 않고 있다”고 성토했다.

이하는 이성규 PD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 지금 몸 상태는 어떤가.
맞을 땐 아프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아프다. 전경에게 그렇게 맞을 줄은 몰랐다. 길 한가운데 사람이 쓰러졌는데 50대 아저씨 혼자서 부축하는 것은 힘들겠다는 생각에 나선 것이다. 환자를 이송하는데도 전경이 때릴 거라는 생각은 정말 생각도 못했다. 시위대를 때리는 전경들을 보면서 오히려 ‘약이 많이 올랐구나’라는 느낌을 받았다. 나를 때린 전경이 더 불쌍하다. 그들을 비난하고 싶지 않다. 오늘도 촛불집회에 나갈 생각이다. 나가서 때리면 또 맞을 것이다.

- 이번 촛불집회에서 보여준 경찰의 모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일부 시민들의 과격, 폭력 시위가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과격’과 ‘폭력’의 시위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서 다른 문제다. 일부 흥분한 시민들이 있었지만 이들은 개별적이다. 그것을 전체 촛불집회 참가자들에게 덧씌우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경찰은 단일 조직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조직이다. 그들이 조직적으로 휘두르는 폭력과 일부 시민이 개별적으로 휘두르는 폭력은 분명 다르다. 그 폭력조차도 시민들의 저항권이었다고 본다. 물론 내 입장은 다르다. 전경이 휘두르면 차라리 맞자는 생각이다. 그것이 이기는 승리의 길이다. 간디는 인도가 영국 식민지로서 대항할 때 영국 군인들에게 얻어맞았다. 그래서 간디는 승리를 얻었다. 폭력을 휘두른 이들을 비판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대중들이 비폭력으로 나설 때 비폭력에 대한 대안이 없다.

- ‘촛불집회’에 대한 언론보도 문제를 짚는다면.
조선, 중앙, 동아일보 보도에 대해 문제를 지적하고 싶다. 전경들이 시민들에게 포위됐을 때 각목을 휘두르는 시민들이 있기도 했지만 그를 말리는 시민들이 훨씬 더 많았다. 그러나 조중동 보도에는 각목을 휘두르는 시민들만 있다.

- 촛불집회에 참석하게 된 이유.
지금 대구에 살고 있는데 서울광장의 ‘촛불집회’ 참석하려고 작정하고 올라갔다. 난 그 동안 광우병 논란에 대해 냉소적이었다. 지나치게 ‘광우병 공포’가 덧씌워졌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향후 사태를 지켜보니까 이 정도면 정부가 시민들이 요구하는 질문에 답을 해야 하는데 시민들이 원하는 답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과연 이것이 민주주의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 가지 이명박 대통령은 민주주의 과정으로 뽑힌 사람이다. 관성과 자기 성찰 없는 것은 심각하다. 기록자로서 프레임을 만들려고 하지 말고 그림 속으로 들어가야 겠다고 생각했다. 현장에서 시민들과 대화하고 토론하고 싶었다.

- 촛불집회에 참석한 소감은.
시민들의 다양한 스펙트럼에 놀랐다. 그들의 발언을 들으며 깜짝 놀랐다. 재기발랄함이 묻어났다. 시민들이 촛불집회에 참여한 것은 단순하다. 그냥 싫은 것이다. 그들에게는 검역 조건이 없다. 위험하다 생각하는 것이 싫은 것이고 미국에게 아양을 떠는 것이 싫은 것이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반발이다. 집회 문화도 낯설었다. 지도부도 없고, 결연하지도 않고, 투쟁적이지도 않았다. 축제같았다. 공동체였지만 다양성이 살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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