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심의규정, 위헌적 요소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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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언련, ‘방통심의위 이대로 좋은가’ 토론회 개최

“보통의 정권은 교묘하게 속임수를 써서 방송 장악을 기도할텐데, 이명박 정부는 노골적인 ‘안면몰수형’에, 투명하게 광장에서 칼을 휘두르는 ‘백주대낮형’이다. 또 정권을 잡으면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사용하는 게 상식인데, 현 정부는 ‘채찍 난무형’ 방송 장악을 기도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방송 장악 음모는 일반 국민들의 상상력의 범위를 넘어도 한참 넘었다. 그러니 지금보다 더 창의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정청래 전 통합민주당 국회의원

조·중·동 광고 중단 인터넷 게시글 삭제 결정, KBS 〈뉴스9〉에 대한 ‘주의’ 조치, 〈PD수첩〉 심의 등 최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행보가 공정성 논란에 휩싸였다. 방송통신위원회와 함께 ‘방송통제위원회’라는 오명을 입은 방통심의위는 이명박 정권과 조·중·동 보위에 발 벗고 나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때문에 심의위를 심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이런 가운데 ‘방통위·방통심의위 이대로 좋은가’에 대한 토론회가 민주언론시민연합 주최로 15일 오후 3시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열렸다. 참석자들은 “방통위는 정권 연장을 위해 조·중·동에 방송을 넘겨주려 하고, 심의위는 정권 안정을 위해 조·중·동을 보위한다”면서 두 위원회의 파행적 운영을 성토했다.

▲ 민언련이 주최한 ‘방통위·방통심의위 이대로 좋은가’에 대한 토론회가 15일 오후 3시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최영묵 성공회대 교수, 신태섭 전 민언련 공동대표, 정청래 전 통합민주당 의원
대응 방안으로는 관련법 개정, 방통심의위 심의를 위한 국민위원회 신설, 국회 내 방송특별위원회 설치 등이 제시됐다. 방송심의규정의 위헌적 요소를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참석자들은 무엇보다 “국민들만이 희망”이라고 강조하며 ‘촛불’의 외연 확대를 주문했다.

“방송심의규정, 위헌적 요소 있다”

이날 발제를 맡은 최영묵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의 위헌적 요소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방송심의규정은 방송법 제33조에 근거해 심의에 필요한 사항을 명시한 것으로 지난달 18일 제정됐다.

문제는 방송심의규정이 방송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것. 최영묵 교수는 대표적으로 제9조 공정성 심의 조항을 꼽았다. 심의규정 제9조는 방송의 객관성과 공정성, 균형성 등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모법인 방송법 제33조에 명시된 11가지 심의사항 가운데 ‘방송’의 ‘공정성’에 관한 언급은 없다. 9호에 ‘보도·논평의 공정성·공공성에 관한 사항’이 있을 뿐이다.

“방송법 제33조 9호에선 보도와 논평으로 제한하고 있다. 그런데 방송심의규정은 방송 일반으로 의미를 확대했다.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마치 합법적인 것처럼 규제하는 것이다. 상위법이 제정한 범위를 벗어나면 위법이다. 방송심의규정 제9조 공정성 조항은 월권에 의한 잘못된 규정이다. 심의위는 방송의 공정성을 심의해선 안 된다. 그럴 권리가 없다.”

▲ 정청래 전 통합민주당 의원

최 교수는 방통위의 월권적 심의와 과잉규제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그는 “방통심의위는 민간 복장을 한 검열관”이라며 “민간기구가 인터넷 게시글의 삭제 명령을 내리는 것은 거의 행정기관 플러스 사법기관 기능을 행사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방통위와 심의위의 분명한 역할 구분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심의위의 민간기구 성격 강화해야”

“방통위와 방통심의위는 분리되어 있지만, 심의위에는 최종 결정권이 없다. 심의 결정을 따를 경우 방통심의위에서 끝나지만, 이의신청을 하면 방통위에서 청문회를 거쳐 최종결정하게 되어 있다. 많은 보도와 기사가 정치적일 수 있는데 정치 행위를 하는 대통령 직속 기구에서 내용을 규제할 경우 정당성을 가질 수 없다.”

토론자로 나선 양승동 한국PD연합회장도 이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양 회장은 “방통위는 KBS 이사들을 추천할 수 있고, 이사회에서 사장을 교체할 때 영향력을 행사한다. 또 방송사에 대한 재허가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에 심의위로부터 몇 번의 제재 조치를 받을 경우 재허가 문제와 관련되기 때문에 방송사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역시 토론자로 참석한 최민희 전 방송위원회 부위원장은 “통합민주당이 지금이라도 심의위를 방통위에서 떼어내 독립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법 개정에 들어가야 한다. 방통위와의 관계에서 심의위에 최소한의 자율성이 필요하다. 민간기구적 성격을 강화해 독립성을 지켜줘야 심의위가 정권 시녀위원회처럼 되는 것을 그나마 빨리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6대3 의사결정 구조로는 나눠먹기밖에 안돼”

방통심의위의 졸속 심의도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 1일 방통심의위 전체회의를 방청했다고 밝힌 양승동 PD연합회장은 “〈PD수첩〉 제작진의 의견 진술을 들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토론했다. 방송 내용에 대해 심도 있게 얘기하면서 의논해야 할텐데 논의돼야 할 부분들이 생략된 채, 의견진술에 대해서만 한 시간을 토론하더라”고 전하며 미국 사례를 들어 “공정성은 논쟁과 토론의 영역일 뿐, 심의를 법적 잣대로 할 순 없다”고 지적했다.

최영묵 교수도 “심의위를 둔 것은 숙의하고 깊게 토론하라는 의미”라면서 “표결이 어려울 경우 끝까지 협의해야 한다. 심의위는 조사위원회도, 의결 기구도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의사결정상 6대3 구조에 대해서도 “합리성·형평성·논리성이 실종돼 막강한 로비와 타협, 나눠먹기에 따라 의사 결정되는 한계가 있다”며 “치명적 결점”이라고 지적했다.

박성제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위원장은 조·중·동 광고 중단 게시글 삭제 결정에 대해 “정권이 심의위에 명령한 것”이라며 “명령이 아닌 이상 항상 6대 3으로 결과가 나올 수 없다”고 꼬집었다. 박 위원장은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우리 언론의 주장에 대해 일본 정부에서 추천한 6명과 한국 정부에서 추천한 3명이 공정성 여부를 따지는 것만큼이나 말이 안 되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법 개정 필요” “국민 없인 안 된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참석자들의 의견은 크게 입법 차원과 시민운동 차원으로 나뉘었다.

▲ 최민희 전 방송위원회 부위원장
김정진 변호사는 심의위의 조·중·동 광고 불매 게시글 삭제 결정과 검찰 수사에 대해 “법을 가장해서 법을 파괴하는 상황”이라고 비판하며 “심의위의 결정만으로 글이 삭제될 수 있게 하는 근거 조항들을 모두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민희 전 방송위 부위원장은 “여야 합의 하에 방송특별위원회를 만들어 외부 자문단과 함께 토론하고 논의를 만들며 시민들에게 문을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순신 장군은 배 12척으로 130척을 몰살시켰다”면서 “80석을 갖고 연대할 수 있는 모든 세력들과 안팎으로 미친 듯이 싸워야 한다”며 통합민주당의 선전을 주문했다.

반면 정청래 전 통합민주당 의원은 “법 개정보다 운영하는 이들에 대한 감시활동이 더 중요할 수 있다”면서 “결국은 국민들이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방통심의위를 심의하기 위한 국민위원회를 만들어 심의위를 견제·압박·감시하는 게 빠른 해결책”이라고 덧붙였다.

청중으로 참석한 최문순 통합민주당 의원도 “아직 국회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마시라”면서도 “장외투쟁은 여전히 필요하고 유효하다. 그렇지 않으면 문제는 풀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운동의 타깃이 “조·중·동을 향해야 한다”고 밝힌 박성제 MBC본부 위원장 역시 “믿을 것은 국민밖에 없다”며 “국민과 함께 하는 공영방송 사수 운동, 양심언론 지키기 운동, 언론자유 수호 운동 등을 펼쳐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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