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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이사회 해임 건의→정연주 해임→KBS 장악’ 수순밟기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부터 제기됐던 정권 차원의 KBS 장악 시도가 치밀한 시나리오에 따라 하나하나 실현되고 있다는 분석이 언론계와 야권에서 나오고 있다. 특히 정권의 KBS 장악으로 마무리되는 이 각본의 완결성은 정연주 사장 해임 여부에 달려있다는 지적이다.

■ 靑수석 ‘KBS=관영방송’ 주장에 방송장악 각본 드러나= 현 정권의 KBS 장악 논란은 그간 ‘음모’ 수준이었다. 그러나 박재완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이 <신동아> 8월호와의 인터뷰에서 새 정부의 국정철학과 기조를 적극 구현할 의지가 있는 사람이 KBS 사장이 돼야 한다고 발언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정 사장 해임을 발판으로 한 현 정부의 KBS 장악 시도의 일단이 드러났다는 평가다.

박 수석의 발언은 87년 민주화 투쟁이 탄생시킨 공영방송 체제를 뒤엎어 정치권력에 무비판으로 일관하는 관영방송 체제 아래 KBS를 두겠다는 현 정부의 심산을 방증한다는 것이다.

지난 21일 여권의 고위인사를 통해 불거진 정 사장 해임 추진 단계 역시 이와 궤를 같이 한다는 지적이다. 이날 CBS 보도에 따르면 여권의 한 고위관계자는 “KBS 이사회가 조만간 정 사장에 대해 해임건의를 하면 청와대가 이를 수용, 새 사장을 임명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내주 검찰이 세무소송과 관련해 정 사장을 배임 혐의로 불구속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는 가운데, KBS 이사회가 이를 이유로 정 사장에 대한 해임을 건의하고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시중, 이하 방통위)가 국가공무원법을 근거로 정 사장의 직무를 정지시키면, 대통령이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해 이사회가 의결한 해임권고안을 수용, 정 사장을 해임한다는 게 정부 여당의 각본이란 것이다.

여의도 정가에선 지난 주말 당·정·청 관계자들이 모여 이 같은 방안을 논의했으며 이런 과정 끝에 여권 고위 관계자가 해당 시나리오를 언론에 흘렸다는 얘기가 떠돌고 있다. 이에 앞서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이 지난 4일 기자 간담회에서 “대통령에게 KBS 사장 해임권이 있다”고 주장해 물의를 빚은 바 있다.

■ 신태섭 이사 축출, 다음은 정연주 사장?= 방통위가 지난 18일 신태섭 KBS 이사를 전격 해임한 것도 정부 여당의 각본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방통위는 이날 전체회의에서 “신태섭 이사가 재직 중이던 동의대로부터 징계처분을 받아 이사 자격에 대한 결격사유가 발생했다”며 지난 4월 총선 당시 부산 금정에서 한나라당 공천을 신청했던 강성철 부산대 교수를 보궐 이사로 추천했다. 사실상 신 이사를 방통위가 해임해버린 것이다.

그러나 현행 방송법 제46조 등은 방통위의 KBS 이사 추천권만 명시하고 있을 뿐 해임과 관련한 권한을 규정하고 있지 않으며, 대통령에게도 임명권만 부여하고 있다.

이 같은 위법 논란에도 불구하고 방통위로부터 강성철 교수가 보궐 이사로 추천되면서 여야 성향별 이사 비율이 7대 4가 된 KBS 이사회는 당초 이달 30일로 예정돼 있었던 정기이사회를 23일로 앞당겨 개최할 계획이다. 이날 이사회에선 정연주 사장 사퇴 권고안의 상정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KBS 이사회는 지난 5월20일 임시이사회에서도 정 사장 사퇴 권고 결의안 상정을 시도했으나 11명의 이사 중 권혁부·방석호·이춘호·박만·이춘발 이사 등 5명만 동의, 의결에 필요한 재적 과반수 6표 중 1표가 부족해 실패했다.

■류우익·최시중, 정 사장 사퇴 전방위 압박= KBS에서 정연주 사장을 ‘축출’하려는 시도는 이명박 정부 출범 초기부터 직·간접적으로 있어 왔다. 최시중 방통위원장이 취임 다음날인 지난 3월26일과 5월12일 서울 종로의 식당에서 만나 정 사장의 사퇴를 요구한 것은 이미 <PD저널>의 보도로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보도된 내용보다 더 많은 정 사장 퇴진 압박이 직·간접적으로 전개됐었다는 사실이 지난 22일 최문순 민주당 의원의 국회 현안질의에서 밝혀졌다.

최문순 의원이 공개한 바에 따르면 최시중 위원장과 김 이사장의 첫 회동 사실이 보도된 직후 류우익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은 김 이사장에게 당시 현직 국회의원이었던 이모 의원을 특사로 보내 정 사장을 퇴진시킬 것을 요구했다. 이때 이 모 의원은 김 이사장에게 정 사장을 사퇴시키면 자리를 주겠다는 제안을 했다고 한다. 그간의 보도에선 현 정부가 최 위원장을 통한 간접적인 방식으로 정 사장 퇴진 압력을 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미 직접적인 행동이 있었던 것이다.

또한 최시중 위원장은 지난 5월3일 이춘호 KBS 이사 자녀 결혼식이 열린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도 김 이사장에게 정 사장 사퇴 문제에 대해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세 차례나 정 사장 퇴진 압박을 한 것이다.

최문순 의원은 “김 이사장이 이 같은 압력과 제안들을 거부하고 결국 지난 5월21일 KBS 이사장직에서 물러났다”고 밝혔다.

그러나 최시중 위원장은 지난 5월23일 방통위 출입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김 이사장은 50년지기 친구로 여러 얘기를 나눴을 뿐”이라며 “내게 얼마나 미안했으면 사표를 내겠냐.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최 위원장은 또 70~80년대 자신의 기자 경험을 얘기하면서 “나도 지금의 언론자유에 기여한 사람이다. 내가 언론 자유를 훼손하겠냐”며 정 사장에 대한 사퇴 압력의 주체로 지목되는 것에 대해 불쾌감을 표시한 바 있다.

■ 비장해진 민주당 “당운 걸겠다”= 이렇듯 정부 여당의 KBS 장악 시나리오가 현실화 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 제1야당인 민주당의 위기감은 비장한 수준이다. 국회 개원 협상 당시 언론장악과 관련한 국회 차원의 특위 구성에 미적댔던 것과 달라진 모습이다. 공영방송 KBS를 지키지 못하면 MBC를 비롯한 모든 방송은 물론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 모두가 도미노로 쓰러질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지난 21일 국회에서 열린 ‘이명박 정권 언론장악규탄 의원총회’에서 “이명박 정권은 KBS와 국정홍보처를 혼동하고 있는 것 같다”면서 “KBS를 정권의 낙하산으로 만들기 위해 국정홍보처를 폐지한 게 아니냐”고 비판했다.

전병헌 의원은 “지금 이명박 정권의 언론 장악은 ‘민심의 목줄 죄기’와 ‘촛불의 심지 뽑기’라고 할 수 있다”며 “사라졌다고 믿었던 ‘민주 대 반(反)민주’의 대결구도가 부활했다. 투쟁 전선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이날 의총에서 당내 “방송 장악을 막는데 당운을 걸겠다”고 밝히면서 언론장악음모저지본부를 언론장악저지대책위로 격상시키는 동시에 제 시민사회단체와 종교계, 각계 원로가 참여하는 ‘방송장악 네티즌 탄압저지 범국민행동’에 공식 결합키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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